전체 글 (109) 썸네일형 리스트형 무인양품과 금수저 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의 환승구간이란 점에서 교대역은 언제나 사람으로 붐볐다. 그런 교대역에서 출퇴근 시간에 맞춰 지하철을 이용하는건 정말 사양이었다. 예전이었다면 강남역 부근에서 여성에게서 오는 열혈한 시선을 기꺼이 막지 않고 세심한 아이컨택으로 카카오톡 아이디 정도는 가볍게 교환했을 자청연이었지만, 요즈음은 또 사정이 달라졌다는게 그의 말이었다. 그런 청연을 비웃는 백영또한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때때로 스치는 것 만으로 남의 기억과 흔적을 읽는 능력자로서는 잠깐 동안에도 수백명의 사람들과 함께 콩나물시루마냥 섞여있어야 하는 대중교통은 지옥이었다. 평소라면 당연히 택시를 잡았었겠지만, 민방위훈련과 함께 저녁 시간의 강남대로 교통사고가 겹친 덕분에 교통상황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20분에 2만.. 칠월의 장마 차라리 열대지방에서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 주였다. 장마철을 맞이한 날씨는 갈수록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듯 습하고 더워졌다. 서있기만 해도 짜증이 절로 일어나는 걸 증명하듯, 호우주의보와 폭염주의보가 동시에 떨어졌다. 하늘에는 언제나 먹구름이 가득했고 잊을 만 하면 천둥과 번개를 동반했다. 하나만 하라고 버럭 화를 내도 이상 할 건 없었다. 덕분에 대영청은 일복이 터진 상태였다. 날씨는 생각보다 사람의 기분을 크게 좌우한다. 부정적인 사념은 에피타이저. 습도 높은 환경이 메인디쉬랍시고 짜증을 얹어 준 덕분에 장마철의 마물 출현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자청연은 그야말로 한탄을 했다. 제주도와는 상황이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장마철이면 아예 밖에 나오지 않는 섬 사람들의 생활과 수도권 시민들의 생활.. 장미의 저주 ∞ 후기자캐 커뮤니티 T2nd의 러닝 캐릭터 자청연의 개인 엔딩글입니다. 첫 문장을 쓰고 난 이후 5주 동안 공백 포함 약 43000자 정도 되는 분량의 중편으로 무사히 완결까지 마쳤네요. 2015년 하뉴 타카히사의 개인지 The letter 이후로 상당히 오랜만에 '완성한' 중편 입니다. (가온아 미안하다... Only you도 내가 진짜...) START처음 이 글을 구상하게 된 시기는 커뮤니티의 엔딩 부근 즈음이었던거 같습니다. 한참 방탈출 전후로 다른 분들이 캐릭터 엔딩을 어떻게 낼지 고민하시던 시기였던걸로 기억해요. 청연이는 생각보다 커뮤 러닝기간이 길어진데다, 좋아하는 캐릭터가 생기면서 서사가 늘어졌습니다. 그만큼 애정이 생겼고 결말을 어떻게 낼지 고민하게 만든 캐릭터였습니다. 오너의 멘탈 대핀치.. 장미의 저주 04 完 #04. 장미의 저주 일반인과 발현자가 뒤섞이는 바람에 시끄럽기 짝이 없는 병원에서 곧 작은 기적이 끝났다. 치료했던 사람들과 당사자, 당사자의 연인 정도만 알고 있게 될 기적이었다. 청연의 왼 팔과 다리는 형태부터 복구 되었지만 내부는 중상과 다를 바가 없었다. 본청 병원까지 갈 수가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자, 청연은 현장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급하게 수배한 근처 대형 병원으로 유환과 함께 그대로 들이닥쳤다. 다행스럽게도 병원에는 이미 수배 해 둔 의료팀이 대기중이었다. 의료팀은 순식간에 부서진 뼈를 복원해내고 세포를 재생시켰다. 하지만 그걸론 끝이 아니었다. 더 자세한 상태는 일단 본청의 병원으로 돌아가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말에 대답 대신 끄덕였다. 말마따나, 멀쩡해 진 것처럼 보이는 왼팔에서 느껴지는 .. 장미의 저주 03 #03. 흑단나무 문 저편 “자. 저 문이야.” 이젠 더 이상 올라 갈 곳이 없는 장소였다. 저택의 삼층에는 오로지 하나의 문만이 있었다. 까만 문. 흑단나무 문은 기분 나쁠 정도로 새까맸다. 더 이상은 말 하지 않아도 알겠지. 그녀는 그런 눈으로 청연을 응시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편백나무 문 저편에서는 앞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을 보았다. 삼나무 문 저편에서는 지금껏 가졌던 것을 보았지. 그러면 저 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 ... ... ... 또다시 목소리가 들린다. 멀어지다가도 가까워지고, 근처에 있는 것 같다가도 영원히 닿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 그래서인가. 나는 대답 할 수가 없어. 왜 부르는 이의 목소리가 전부 들리지 않는 거지. 누구의 목소리인 지 알 수가 없는데? 여기로.. 장미의 저주 02 #02. 삼나무 문 저편 한 낮에도 저택 안은 어두웠다. 조명을 켜지 않는 이유를 묻자, 충분히 밝다는 대답이 돌아온 게 기가 찰 정도였다. 밝다니, 이게? 어이가 없지만 숙녀에게 대놓고 핀잔은 주고 싶지 않았기에 입을 다물었을 뿐이다. 독고 아가씨는 그나마 계단을 천천히 올라 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놓친다면 금세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 같았다. 긴 아치형 계단을 따라서 올라가는 동안, 청연은 다시금 주변을 살폈다. 기분 나쁠 정도로 깨끗한 저택 안에서 천장에 매달린 유리등이 창문 바깥의 햇빛을 받아서 잠깐이지만 반짝였다. 저택의 뒷 편.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어서 식별하긴 어려웠지만 햇빛을 받아 반사하는 색ㅡ 하얀색, 혹은 크림색인가. 창문 너머로 저택 뒷편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장미들이 피어있는 정원.. 장미의 저주 01 #01. 편백나무 문 저편 멀리에서 부르는 목소리가 난다. 그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누가 부른 건지, 어디서 들려온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몽롱한 의식 끝에서 청연은 흑장미를 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금 부르는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대답 할 뻔 했다. ㅡ청연을 끌어낸 건 또다른 목소리였다. 차갑게 가시가 돋힌 목소리. “뭐 하고 있어? 들어오지 않고.” 그제서야 정신이 확실하게 돌아왔다. 청연의 시야는 급속도로 맑아졌고 곧 눈앞의 여인을 볼 수 있었다. 아. 이것이었나.끔뻑이기를 몇 번. 깊게 잠들고 난 다음 날 기상하는 경우와 비슷했다. 몸이 조금 무겁긴 했지만 정신은 맑다. 초여름이라지만 날이 너무 더웠다. 아마 현기증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잠깐이라곤 해도 땅으로 꺼질 것처.. 장미의 저주 00 #00. Intro 초여름이라기엔 일찍부터 더운 날씨였다. 아직 매미만 울지 않았지, 기온으로만 따지면 벌써 여름이다. 택시로는 들어 올 수 없는 좁은 골목길을 걸어 올라오는 동안 점점 여름 장미의 아찔한 향기는 짙어졌다. 이내 남자의 걸음이 근원지 앞에서 멈췄다. 그는 손수건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한 번 닦았다. 한 숨 돌리고 나서야 붉은 장미가 피어있는 저택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는 서서 저택을 살폈다. 코앞에 걸린 명패에는 그토록 찾아 헤맨 글자가 적혀있었다. 시간의 흔적이 제법 남은 낡은 명패 위에는 '독고' 라는 성이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오직 글자만이 음각으로 파여 있는 심플함. 구식 명패다.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은, 이제는 너무 옛것이 된 낡은 동화 속에서나 나올 저택.낮은 담장을 타고 자.. 이전 1 2 3 4 5 ···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