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세레 (18) 썸네일형 리스트형 순백의 분노와 무너진 남자 1월에 열리는 결혼식에 사람이 얼마나 올까 싶었다. 예상대로 결혼식장 분위기는 떠들썩하기보다는 차분했다. 단아한 신부는 새 출발의 기쁨을 가득 안은 채였지만 결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신랑 또한 예식 이후에는 정신이 없을 것 같다며 미리 주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사하러 다니기 바쁜 모습이었다. 이런 상황을 원해서 한겨울에 결혼을 하는 걸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매형이 될 사람은 물론 누이의 속을 청연이 알 수는 없었다. 까만 구두코를 닦자마자 택시에서 내렸던 청연이 가장 먼저 들이닥쳤던 곳은 신부 대기실이었다. 2층 신부 대기실 안에서 가만 앉아있는 드레스 차림의 누이는 정말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골랐던 드레스를 그대로 입은 채, 깔끔하게 넘기고 화장.. 82 내일도 당신은 저를 사랑할 건가요? 내일도 당신은 저를 사랑할 건가요? -- 자존심이 세다는 말은 익숙했다. 특이하다는 말도 제법 들었고, 그 다음으론 자존심이 세고 콧대가 높다는 말도 들어 본 것 같다. 아, 물론 제일 많이 들은 말은 잘생겼단 말이지.마음과 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관심도 흥미도 주목도 모두 내 것. 마땅히 받아야 했던걸 못 받은 시절만큼. 오욕의 시절 받아야 했던 몫까지. 아무도 기억해선 안될 그 시절, 자두나무 꽃을 보자 신경질을 내던 조부에게 뺨을 맞은 다음 찾은 장소는 으슥한 마당 구석이 아니었다. 소쿠리를 말리던 사랑방 옆 광에는 볕이 잘 들었다. 가장 밝은 낮, 둥둥 떠다니던 먼지까지 일일히 눈동자에 담아냈던 광 안에서 청연은 부풀어오르는 뺨을 감싼 채 가만 앉아 생각했다. 나는 찬란한 자.. 질 나쁜 문제 어디까지나 내 문제다. 철저하게, 개인적인. -- 유리파편이 한바탕 쓸고 지나간 탓에 영물들은 모두 인간체로 변할 수 밖에 없었다. 자칫하면 발바닥을 다칠수도 있었으니까. 상황은 대부분 정리 되어 있었다. 청연은 태도를 갈무리했지만, 직감적으로 이 태도를 다시 쓰기 위해선 과학반의 힘이 필요 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연이은 전투로 검날이 상한데다 겨울철 날씨 때문에 보관이 쉽지 않아 뵈었다. 최근 2주간을 간단히 표현하자면 아수라장이었다. 대영청 설립 이후 처음으로 수능연기라는 사태에 직면하자, 모두가 한 마음으로 졸도하고 싶었지만 그보다 먼저 마물의 습격이 끊이질 않았다. 1년 중 가장 마물 발생률이 높아지는 시기에 지진이라니. 심지어 수능이 연기되자 수험생의 연이은 스트레스로 엿같은 연장근무가 무려.. 무인양품과 금수저 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의 환승구간이란 점에서 교대역은 언제나 사람으로 붐볐다. 그런 교대역에서 출퇴근 시간에 맞춰 지하철을 이용하는건 정말 사양이었다. 예전이었다면 강남역 부근에서 여성에게서 오는 열혈한 시선을 기꺼이 막지 않고 세심한 아이컨택으로 카카오톡 아이디 정도는 가볍게 교환했을 자청연이었지만, 요즈음은 또 사정이 달라졌다는게 그의 말이었다. 그런 청연을 비웃는 백영또한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때때로 스치는 것 만으로 남의 기억과 흔적을 읽는 능력자로서는 잠깐 동안에도 수백명의 사람들과 함께 콩나물시루마냥 섞여있어야 하는 대중교통은 지옥이었다. 평소라면 당연히 택시를 잡았었겠지만, 민방위훈련과 함께 저녁 시간의 강남대로 교통사고가 겹친 덕분에 교통상황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20분에 2만.. 칠월의 장마 차라리 열대지방에서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 주였다. 장마철을 맞이한 날씨는 갈수록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듯 습하고 더워졌다. 서있기만 해도 짜증이 절로 일어나는 걸 증명하듯, 호우주의보와 폭염주의보가 동시에 떨어졌다. 하늘에는 언제나 먹구름이 가득했고 잊을 만 하면 천둥과 번개를 동반했다. 하나만 하라고 버럭 화를 내도 이상 할 건 없었다. 덕분에 대영청은 일복이 터진 상태였다. 날씨는 생각보다 사람의 기분을 크게 좌우한다. 부정적인 사념은 에피타이저. 습도 높은 환경이 메인디쉬랍시고 짜증을 얹어 준 덕분에 장마철의 마물 출현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자청연은 그야말로 한탄을 했다. 제주도와는 상황이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장마철이면 아예 밖에 나오지 않는 섬 사람들의 생활과 수도권 시민들의 생활.. 스페셜 서비스 다가올 계절에 맞춰 여름옷을 꺼내던 와중이었다. 샤워기의 물소리가 멈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땀을 좀 흘렸다며 먼저 씻어야겠다던 유환이었다. 저녁으론 뭘 먹자고 할까 고민하며, 의류 보관 케이스를 꺼내 여름 옷들을 골라낸 청연이 깔끔하게 뒷정리를 한 후 거실로 돌아왔다. "유환, 이것 ... ..." 봐, 라고 말 하기 전에 입이 꾹 다물어졌다. 오래된 트레이닝복을 버릴 지, 한 해 더 입을 지 물어보려 했는데. 바캉스용 선글라스도 꺼내서 씌워보려 했더니. 언제나 그렇듯 계획은 현실에 맞춰서 실행해야 하는 법이지. 청연은 푸하 웃어버렸다. 그리고 트레이닝복도, 선글라스도 테이블 한 쪽에 조심스럽게 올려둔 후 수건 한 장을 더 들고 소파로 다가갔다. "아이고 세상에. 이것 보시게, .. Love is like a movie 몇 가지 예감이 들었다. 곧 너와 함께 잠들고 일어나는 걸 좋아하게 될 거란 예감.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얼마나 밝은지를 보면 대강 알 수 있다. 최소 아침 여덟시다. 이렇게까지 몸이 가볍다면 족히 여덟시간은 잔게 분명하다. 그야 그렇겠지 네가 있으니까. 청연은 조심스럽게 잠들어있는 유환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았다. 새삼 긴 머리카락이었다. 채도 옅은 새벽빛의 연보라색. 어두운 새벽밤을 몰아내고 아침을 찾아오게 하는 색. 분명 처음 만났을 때는 몰랐다. 네가 나의 어두운 새벽을 몰아낼 사람이 될 거라곤. 자기 전 까지만 해도 나른했던 몸이 제법 가벼웠다. 이 정도로 컨디션이 좋은 날은 일어나기 무섭게 곧장 트레이닝 룸으로 직행하곤 했다. 재밌는 건 트레이닝 룸으로 가는 길에 불러 낼 사람이 .. [AU] 괜찮지 않더라도 쾅!!!! 처음에는 무언가가 산산히 부서지는 소리. 그 다음에는 유리가 깨지며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비명 소리가 연달아 들렸고, 곧 소란이 일어나며 사람들이 모였다.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시 한복판에서 들릴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오렌지가 데구르르 굴러간다. 플라스틱 통에 담긴 우유가 떨어졌다. 종이팩으로 된 걸 사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랬다면 분명 터졌겠지. 골목 바깥에서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모이는걸 보며 황급히 살기를 갈무리 했다. 뒤, 그 다음에는 양 옆과 머리 위. 떨어진 물건을 줍기보다 먼저 재빨리 주변을 훑는다. 핸드폰은 바지 뒤 호주머니. 나이프는 발목에. 아쉽게도 아일랜드의 건물들은 은폐물이 많지 않다. 도망보다는 차라리 한 낮일 때 버티는 게ㅡ "ㅡ와, 깜짝이야.""... ..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