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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세레

스페셜 서비스



다가올 계절에 맞춰 여름옷을 꺼내던 와중이었다. 샤워기의 물소리가 멈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땀을 좀 흘렸다며 먼저 씻어야겠다던 유환이었다. 저녁으론 뭘 먹자고 할까 고민하며, 의류 보관 케이스를 꺼내 여름 옷들을 골라낸 청연이 깔끔하게 뒷정리를 한 후 거실로 돌아왔다.


"유환, 이것 ... ..."


봐, 라고 말 하기 전에 입이 꾹 다물어졌다. 오래된 트레이닝복을 버릴 지, 한 해 더 입을 지 물어보려 했는데. 바캉스용 선글라스도 꺼내서 씌워보려 했더니. 언제나 그렇듯 계획은 현실에 맞춰서 실행해야 하는 법이지. 

청연은 푸하 웃어버렸다. 그리고 트레이닝복도, 선글라스도 테이블 한 쪽에 조심스럽게 올려둔 후 수건 한 장을 더 들고 소파로 다가갔다.


"아이고 세상에. 이것 보시게, 피곤 해 가지곤."

"청연..."

"가만히 있어 봐."


함께 살게 되는 동안 늘어난 스킬이나 지식이 은근 많다. 샤워기의 수압을 조절하는 법이나, 기름에 물이 닿으면 안된다거나 하는 상식. 침대 시트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법. 그 외에도 세세한 생활 스킬이 있지만, 보다 특별한 스킬도 있었다. 

청연은 머리카락을 대충 말리고 접은 후, 소파에 나른하게 누운 유환을 일으켜 앉혔다. 작게 앓는 목소리가 뒤따랐다. 어지간히 피곤했던 건지 혹은 귀찮았던 건지. 아마 둘 다 겠지.


"대충 말려도 괜찮은데..."

"안 될 소리."


이것 만큼은 양보 못 하겠다며 딱 잘라 말하자 유환은 순순히 포기하며 바르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곧 청연은 유환의 머리카락 끝으로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꼭 쥐어짠 후 수건이 축축해 질 때 까지 요령 좋게 머리카락을 말려나갔다. 


몇 달 전 승급심사를 받은 유환은 이제 C급 마물이 나오는 현장에도 제법 익숙 해 진 모양이었다. 내심 승급 이후 일이주 동안에는 다쳐올까봐 노심초사 했던 청연과 달리, C급 요원이 된 유환은 그림자를 다루는 새로운 재미를 느낀 것 같았다. 

귀동냥으로 얻어 듣자 하니 현장에서는 아주 물 만난 고기처럼 유유자적 여유로움까지 늘었다는데. 나 원 참. 누굴 닮아간담. 사람 마음도 모르고 시시각각 변하는 현장 상황이나 위험 수당 이야기를 하는 걸 보고 있자면,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을 가감 없이 던지는 청연이라 해도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지곤 했다. 


"일이 너무 빡센 여파 아닌가? 대영청 고소 해 줘? 마침 법원도 코앞인데."

"됐어. 나는 즐겁다니깐?"

"일 복이 터졌구만."

"청연도 C급 요원으로 나랑 같이 현장 나가면 좋을텐데..."

"됐네 됐어. 사양 하겠네"


하나 뿐인 연인께서는 가끔 이렇게 사람 마음도 모르고 해맑게 웃기만 할 때가 있었으니, 언짢은 반응을 돌려 줄 수도 없다. 본인과는 달리 청연이 승급 심사에서 현상유지인 D급 판정을 받은 데서 유환은 못내 아쉬운 낌새였다.


등급이 올라갈 수록 돈이야 잘 벌겠지만 그만큼 위험하고 빡센 업무 강도가 올라가서 좋기만 한 건 아닐텐데. 현상유지 판정에 덩실덩실 춤추고 싶었던 것도 유환 때문에 취소였다. 그 대신 청연은 좀 더 바빠진 유환에게 철썩 달라붙겠다며 결심 아닌 결심을 했다. 왜 어중간한 결심이냐면, 이미 진득하게 달라 붙어있기 때문이다.


"... ..."

"뭐라고 했나?"

"편해서 좋다고..."

"특별 서비스인데 기분 좋고 편해야지 그럼."


제 머리카락을 몇번 쓰다듬던 손을 쥐어 작게 키스를 떨어트렸다. 흘리듯 스치는 웃음소리. 귓바퀴 뒤로 넘긴 머리카락이 삐져나오지 않도록 가지런히 정리한 머리카락을 다시금 수건으로 비벼서 빳빳하게 말린다. 서랍장에서 드라이기를 가져오는 동안 유환은 코를 훌쩍이며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몸 식겠네."

"괜찮아. 씻고 나오니까 너무 덥더라."


유환의 머리카락은 처음 만났을 적 보다 더욱 길어져 있었다. 눈, 코, 목과 복부 위를 간지럽히는 게 보통 요사스러운 게 아니라는 청연의 말에 유환이 픽 웃었던 게 벌써 몇년 전이었더라. 머리를 말려 보겠다며 눈을 빛내며 달려든 청연이 처음 머리카락을 말렸을 때와는 딴판이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머리카락을 잡아 당기고, 그것도 모자라 드라이기를 너무 가까이 들이댄 바람에 태울 뻔 했던 옛 기억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시끄러운 드라이기 소리가 한바탕 거실을 울렸다. 머리카락 안 쪽에 너무 닿지 않도록 드라이기를 조금 떨어트린 다음 살살 쓰다듬는 손길이 예전보단 퍽 익숙했다. 순식간에 따끈해진 피부가 기분 좋았는지 유환은 나른한 얼굴과 졸린 눈을 했다. 


"청연이 닿는 곳만 차갑고 시원해서 기분 좋아..."

"머리 엉키겠는데."

"뭐 어때. 금방 다시 기르면 되는 걸. 청연 머리 말리는 실력 많이 늘었구나 정말..."

"다 자네 머리카락으로 연습 한 건데 말이야. 이제야 그 덕을 보는 거지."


젖은 수건을 발치로 떨어트린 유환이 빗질은 되었다며 한사코 사양했기에 청연은 조금 아쉽게 빗을 제자리에 꽂아놓았다. 서비스가 굉장하네. 그렇게 말하는 옆 모습이 사랑스러운거야 어제 오늘 일이던가. 입을 쭉 내밀고 뻔뻔하게 서비스 요금을 요구하는 청연의 볼에 방금 씻어서 촉촉한 손가락이 가볍게 닿았다. 방금 말린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간지러웠다. 드라이기 코드를 돌돌 말던 손이 멈출 정도로 따뜻한 키스가 이어졌다. 서비스 요금은 기대했던 만큼 충분히 호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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