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장미의 저주
일반인과 발현자가 뒤섞이는 바람에 시끄럽기 짝이 없는 병원에서 곧 작은 기적이 끝났다. 치료했던 사람들과 당사자, 당사자의 연인 정도만 알고 있게 될 기적이었다.
청연의 왼 팔과 다리는 형태부터 복구 되었지만 내부는 중상과 다를 바가 없었다. 본청 병원까지 갈 수가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자, 청연은 현장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급하게 수배한 근처 대형 병원으로 유환과 함께 그대로 들이닥쳤다. 다행스럽게도 병원에는 이미 수배 해 둔 의료팀이 대기중이었다.
의료팀은 순식간에 부서진 뼈를 복원해내고 세포를 재생시켰다. 하지만 그걸론 끝이 아니었다. 더 자세한 상태는 일단 본청의 병원으로 돌아가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말에 대답 대신 끄덕였다. 말마따나, 멀쩡해 진 것처럼 보이는 왼팔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평소 같지 않았다. 청연은 직감적으로 이 팔을 전처럼 멀쩡하게 쓰기 위해서는 재활훈련이 필요 할 것이라 느꼈지만, 유환이 옆에 있었기에 말 하지 않았다.
의료팀은 청연에게 몇가지를 당부 했다. 그리곤 곧장 다른 발현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커튼을 걷어낸 후 사라졌다. 물론 다른 발현자 중에서는 유환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청연의 꽃폭풍은 물론, 마물과의 전투에서 얻은 크고 작은 생채기와 찰과상, 타박상까지. 유환의 몸 또한 성한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유환은 한사코 치료를 거부했다.
달려온 의사들이 보기에도 유환보다는 청연의 부상이 지독했었기 때문에 치료 순서가 뒤로 밀렸을 뿐, 유환도 결코 경상은 아니었다. 이제 괜찮다는 청연의 말에도 유환은 안심하지 못했고 떨어지지 않았다. 치료를 위해 뜯어낸 소매 아래에서 청연의 팔이 멀쩡해진 것을 직접 확인 한 다음, 치료를 마친 청연이 몇 번이나 타이르자 유환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곤 곧바로 의료팀 요원들의 등쌀에 못 이겨, 곁에서 잠시 떨어졌다.
유환이 시야에서 잠시 벗어나자 청연은 곧 감각이 멀쩡한 오른팔을 들어서 몇 번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꿈이 아니다.
무엇도 꿈이 아니었다. 전부 현실이었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불멸의 제안은 분명 실재했다. 청연은 힘없이 오른손을 떨궜다.
그 저택에 직접 발을 들여놓은 건 일주일 전이었다. 다만 혼자서 들여놓지 않았다. 사이코메트리 능력자였던 백영과 함께 장소를 더듬어가며 찾았다. 하지만 저택을 찾았을 때는 아무도 그들을 맞아주지 않았다. 마중은커녕, 저택 문 또한 굳게 닫혀있었다.
백영은 자신의 능력으로 몇 가지 기억들을 읽어냈다. 저택의 문은 분명히 찾아온 자에 따라 때때로 문을 열어줬다. 하지만 너무 복잡한 기억들이 한 대 얽혀 있어 정보를 캐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헛걸음을 했다는 말로 두 사람은 저택을 뒤로했다.
다만 떠나기 직전, 청연은 저택 안쪽의 유리 창가에서 그들을 내려다 보는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차분하게 미소 짓고 있던 독고 윤이었다. 백영은 사람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는 폐가라고 했지만 청연은 그럴 리가 없다며 부정했다. 직접 두 눈으로 보았는데 아무도 없을 리가 없지 않는가. 찜찜함을 버리지 못하고 몇 번이나 저택을 돌아보았지만 그녀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고, 결국 청으로 돌아오는 수 밖에 없었다.
기억이 애매해졌던 건 그때부터였다. 중앙 지영으로 돌아와서 언제나처럼 함께 잠들고 시간을 공유하던 유환이 제일 먼저 청연의 위화감을 깨달은 듯 했지만 그 때마다 청연은 얼버무렸다.
기억의 결락이 있었다. 누이의 수술은 언제였던가. 자신이 백영과 다녀왔던 장소는 어디였었지? 제주도? 대구? 아니 도시였던가, 시골이었던가. 열차를 타고 갔던가? 차를 탔던가 버스를 탔던가. 잘 다녀왔냐는 유환의 말에 드문드문 대답이 막힐 때 마다 청연은 무언가의 이상異狀을 느꼈다. 자신의 팔목에 새긴 적 없는 장미 모양의 문신을 발견 한 것도, 스페치아를 불러 문신을 보여 준 것도 그 다음날이었다.
그런 청연이 어딘지 모르게 걱정스러웠는지, 유환은 자진해서 함께 현장으로 나왔던 것이다. 같은 알파팀이니 돌려보내진 않을 거잖아. 그런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몇 시간 전 함께 출동한 장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아무도 몰랐다. 이번 달, 아니 이번 분기에 있어서 가장 크고 위험한 출동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던 것이다. 본인들은 물론, 청의 거의 모든 요원들이 긴급하게 투입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마물이었다. 그러나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난 가스 폭발과 대형 화재 때문에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기세로 번져나간 화염과 그 여파로 부풀어 오르는 불안감으로 인해 마물은 사람들의 사념을 먹고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일 미터 조금 못되는 몸체가 점점 커지더니 곧 건물을 뭉개버리고, 전투와 화재의 여파로 건물이 무너졌다. 청연을 비롯한 몇몇 요원들은 그대로 깔려 죽을 뻔 했다. 상황은 시시각각 긴급하게 흘렀다. 마물을 대치하는 동안 화재 진압과 민간인 보호, 요원 투입과 주변 통제까지. 한두팀으로 해결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 소란스러움이 청연에게는 퍽 다행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발현자가 기절함에 따라 당연히 사라져야 할 꽃폭풍이었다. 설마 같은 요원들에게, 그것도 유환에게 이 능력이 닿을 날이 오게 될 줄이야. 허탈함과 함께 짧은 분노가 몰려왔다.
아마 계속 발현된건 이것 때문이었겠지. 청연은 멍하니 왼팔을 들어올렸다. 기름칠을 하지 않은 기계팔마냥 삐걱거리는 감각이 뒤따랐지만 분명 보기에는 멀쩡했다. 팔에는 한층 더 흐릿해졌지만 아직도 장미모양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최악의 상상을 멈추기 어렵다. 만약 네가 없었더라면, 아무도 내 곁으로 다가오지 못했겠지.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나.
쇠해질 대로 쇠해진 기력, 고막과 망막, 뇌까지 미치는 능력폭주의 여파. 부서진 사지와 꽃폭풍 때문에 의료팀의 그 누구도 자신에게 다가오지 못했을테고, 중상이 아닌 게 없는 몸으로 빈사의 지경에 내몰려 그대로 죽었겠지. 냉정하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이 ‘현실’ 에서도, 그리고 ‘장미의 저택’ 에서도 청연을 구해낸 생명의 은인은 유환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기뻐 할 수 없었다. 유환이 돌아왔을 때, 꽃폭풍이 훑는 동안 생긴 상처가 사라졌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돌아온 유환은 청연이 누워있는 침대에 바딱 붙어 앉았다. 두사람 다 괜찮냐는 서로의 질문에 끄덕이거나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두사람 다 괜찮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핏물 맺힌 상처자국이 선명했던 유환의 목덜미와 볼을 청연은 아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제 분노를 미처 삼키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었고, 유환은 괜찮다는 말과 함께 오히려 네가ㅡ 하고 말을 꺼내려던 것을 멈췄다. 청연은 유환이 감정에 북받혀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다.
둘은 짧게나마 대화를 했다. 많이 다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유환의 말은 찢어진 두루마기 때문에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구해줘서 고맙다는 청연의 말에 유환은 조금 슬프게 웃었다. 내가 발현자라서 다행이야. 그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오래오래 기억 해 두고 싶었다.
짧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계속 병원으로 이송 되어왔고, 그 중에는 요원들도 있는 것 같았다. 의료팀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걸음소리 때문에 잠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청연은 습관적인 너스레는 관뒀다. 이대로 이 병원에 입원 할 생각은 없었다. 둘은 곧장 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부축을 받긴 했지만 스트레쳐에 눕혀져서 병원으로 이송 됐을 때와는 달리, 제 발로 걸어나가고 있는 게 기적이었다. 유환은 몇번이고 다행이라고 말했고, 청연은 되돌려 줄 말이 궁해진 끝에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능력차이의 문제가 아니었다. 감정적인 부채였다. 유환을 이렇게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았었다. 택시를 타고 청으로 돌아가는 내내 입이 썼다. 서서히 풀려가는 마취 때문에 통증이 엄습해왔지만 얼굴을 찌푸릴 뿐 내색하지 않으려 애를 써야만 했다. 하지만 마취가 풀린 팔이 떨리는 것 까지는 숨길 수 없었고, 결국 청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다시 병원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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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예감은 그대로 들어맞는 편이었다. 검사를 하거나 CT를 찍어 볼 필요도 없네. 그렇게 말한 의료반 의사는 발현능력으로 한 번에 청연의 상태를 진찰해냈고, 깔끔하게 2개월의 재활훈련을 명령했다. 다리는 나흘이면 충분했지만 팔의 상태가 최악이었다. 끝내 함께 결과를 듣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유환은 입술을 깨물며 청연의 왼팔을 붙들었다. 정말 여러가지 의미로 최악인건 확실했다.
갑자기 있는 힘껏 능력을 쓴 건 청연 뿐만이 아니었다. 유환 또한 보이지 않은 내상이 있다며 의료반에게 붙잡히자마자 진찰실 행이었다. 따라 들어가려 했지만 한사코 거부하는 유환이 부리는 고집에는 청연이 한 풀 꺾일 수 밖에 없었다. 유환은 때때로 자신보다 제멋대로였고 어쩔때는 벽창호처럼 굴기도 했다. 워낙 걱정을 시켰다보니 여기선 원하는대로 놔둬야겠지만 역시 못마땅했다.
사이좋게 병원행이 된게 얼마만이지. 새삼 3년 전에 겪었던 일이 생각난다. 청연은 멍하니 복도 벽에 기대 앉았다.
돌아온 유환이 눈높이를 맞춘 것도, 청연의 왼쪽 팔목을 단단히 붙잡아 쓴 것도 그로부터 십분이 지났을 때였다.
“청연. 제대로 설명 해 줘. 이건 뭐야?”
그것 보다는 자네의 상태부터 알려줬으면 하는데, 라는 대답에 유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것 만큼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말이 뒤따랐다. 확실히 그랬다. 기억들은 이제 하나 둘씩 차분히 정리되었고 돌아오고 있었지만 유환에게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었다. 백영과 함께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말한 이후, 아무 것도 말 하지 않았고 그 결과로 이렇게 된 거니까. 유환에게는 물어볼 권리가 있었고, 청연에게는 대답할 책임이 있었다. 앞으로를 약속한 상대였기에 그랬다.
청연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잘 설명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과 함께, 아마 자네가 이해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개이치않고 유환이 끄덕이자 청연은 두서없이 대답 해 버렸다.
“...표식이야.”
과연 너에게 설명 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천천히 설명하면 네가 전부 이해 해 줄까. 누군가를 이해 시킬 수 있는 문제인가 이건. 그녀와, 그 저택이 내 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기회였고 함정이었다는걸.
한때는 청연이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라 여겼던 불멸을 향한 욕망은 저주처럼 남았다.
유환이 부르지 않았다면 아마 그 저주 속에 남겨졌겠지. 다가온 기회를 뿌리치지 못하고 그녀의 손을 잡아서 왼 다리를, 왼 팔을, 왼 눈을 바치고 선택 했을 것이다. 매 해 여름이 시작 될 때 깨어나 끝날 때 잠드는 저주. 수백 년 동안 그 집안에 갇힌 채 안구 뒷편까지 코를 찌르는 장미 향기에 취해 몽롱하게 잠들다 일어나길 반복 했을 것이다. 그런 삶이라도 괜찮았으니까, 선택 했겠지.
사람으로서 겪은 것들이 싫었기에 쫓아온 외도外道의 욕망. 어차피 환멸을 뿌리칠 수 없었던 사람의 삶 아니었던가. 인간을 벗어나는 방식을 찾아 헤맨 15년. 참으로 길고 긴 시간이었다. 욕망이 집착으로 변하기엔 충분한 시간. 더 나이를 먹고 추하게 살 바에야 그런 삶이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때, 사람의 삶을 벗어나는 방식을 찾겠다고 솟을 대문을 뒤로하고 걸어 나온 후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돌고 돌아 길을 걷다 내가 어디에 서 있게 됐는지 잊게 될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이 장미 모양 문신은 길을 잃은 남자에게 찍힌 표시와도 같다.
“무슨 표식인데?”
“내가... ...불멸의 삶을 포기하겠다는 표식.”
그녀는 이 표식을 저주라고 했다. 다만 청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저주의 표식이라기보다는 낙인에 가까웠다. 십오년 간 쫓아왔던 모든걸 걸 포기한다는 낙인.
유환은 조금 놀란 것 같았다. 그럴 수 밖에 없나. 너는 내 열망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걸 포기하라고 말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내가 포기를 입에 담는다니. 놀라지 않는게 이상 할 수도 있겠다.
“괜찮은 거야?”
“... ...”
청연은 대답 할 수 없었다.
괜찮지 않았다.
전혀.
아무 것도 괜찮지 않았다. 괜찮을 리가 없다. 빈 말로도 괜찮을 수가 없다.
청연은 스스로의 손으로 유년시절의 막을 내릴 수가 없었다. 꿈을 쉽게 가질 수 없었던 지저분한 마무리. 어떤 동창과는 달리, 지저분하고 구질구질한 결말을 맞이하며 청년시절을 적선받았다. 꿈의 내용이 어찌 되었건 간에, 간신히 가진 꿈은 쉽게 포기 하고 싶지 않았다. 도통 포기 할 수 없었기에 지지부진하게 끌어온 15년이었다. 괜찮냐고? 글쎄, 어떻게 괜찮을 수 있을까. 유환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괜찮지 않다.
이제와서 너에게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해를 구할 생각은 없다.
네가 아닌 누구에게도 이해는 구하지 않을 것이다.
일어나 버린 일들은 이미 바꿀 수 없는 사실이고 진실. 내게는 복숭아꽃 때문에 뺨을 후려친 조부가 있었다. 무능하고 한심한 가족이 있었다.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한편으로 벗어나고 싶은 모순이 있었고, 모순을 생각치도 못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과거가 있었다. 끝내 현재에 남은 것은 세상에게 적선 받은 자유와, 파탄난 성정. 둘 중 어느 것도 내가 원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인생은 선택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아주 잘 알고 있어. 하지만 그게 싫었던 십오년이다. 체념하기 싫었다. 속절없이 살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발버둥 쳐주고 싶었다. 마물이든 영물이든, 사람을 벗어나 비웃어주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미래, 갈구하는 소망을 이룬다면 그 때야말로 말할 수 있을 테니까. ㅡ내가 겪은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모든게 아무 가치가 없었다고.
인생을 선택 할 수 없는 사람이었을 시절에 겪었던,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삶에 애착따윈 진즉부터 없었으니까. 간단하게 집어 치우고, 사람을 벗어나는 길을 택해서 그간의 인생을 조소하고 짓밟으면 그만이지. 사람으로서 겪은 일이라는 틀에 가두어두고, 버리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 후에는 남은 삶을 살아가면 되었거든. 불멸의 삶이든, 찰나의 삶이든.
그렇게 지금까지의 인생을 버리기만 하면 됐는데.
그럴 수 있는 기회였는데. 어째서ㅡ 이런 내 곁에 네가 있는 걸까.
“유환.”
“응.”
“... ...”
인생은 실망의 연속이다. 커자란 액자 틀에 채워야 하는 무수한 퍼즐을 스스로 찾는 수 밖에 없다. 그런 주제에 완성될 그림은 언제나 미지수. 청연에겐 퍽 맥빠지는 일이었다. 퍼즐 조각을 찾아 낼 의욕도, 원하는 그림을 완성해 낼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우연찮게 발견한 퍼즐 조각들을 틈틈히 맞추자 그곳에 네가 있었다.
그것만으로 기뻐져서. 아무것도 집어 던지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언젠가 네가 나를 떠나면 어떡할까. 그 때는 정말로 이 선택을 후회하게 될텐데, 사랑은 한없이 사람을 어리석게 만든다. 청연은 안도했다. 부름에 답해주는 사람이 눈 앞에 있었으니까. 제멋대로지만, 부른 후 한참 입을 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간신히, 한 마디를 내뱉었다.
“자네는 절대, 나 버리면 안 돼.”
“내가 그럴 리 없잖아. 청연 곁에 있을 거야.”
단호하게 돌아오는 유환의 대답은 마치 준비해둔 모범 답안 같았다. 갑자기 왜, 하고 되묻질 않는다. 맥락 없는 말을 끊지 않고, 그저 그곳에 있어주는 존재.
나는 마른 웃음을 터트렸다. 너는 그런 사람이지. 신기 할 정도로 내게 와박히는 말을 골라온다.
그런 너였기에, 흑단나무 문 저편에서 발견한 사람. 내가 결코 잃을 수 없는 것.
청연은 조용히 유환의 손으로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하나 뿐인 연인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금방, 전부 설명하겠다고.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네가 믿건 믿지 못하건 전부 말하겠다고 몇번이나 중얼거렸다.
네게 안겨서 울고 싶을 만큼 지독한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