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의 순간이 다가오네.
아. 그대 너무 아쉬워 하지 않기를.
운명은 물처럼 흐르는 것이니까.
우리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나는 가방을 챙기네.
언젠간 떠날 사람이었기에 늘리지 않으려 애썼는데도 애정만큼이나 짐이 쌓였어.
몇 개의 택배를 부치고 텅빈 방을 둘러보는 우리의 눈동자에 아쉬움이 스쳐.
내가 처음 이 곳에 왔을 땐 어땠더라.
몇 년 전의 날을 돌이키며 닳아버린 말을 꺼내 놓는다.
사람은 끝을 맞이 하기 전 시작을 되살려보는 존재.
우리의 처음을 기억 해보네.
서로의 기억을 짜맞춰 오류가 없는지 확인하고 네가 이랬다, 아니다 따지는 시간.
그 시간까지 즐겁네.
기억은 편리하게도 좋았던 순간만을 남겨 놓아,
당신과 내가 마지막 순간까지 웃을 수 있게 해주었다.
아. 다시 스치우는구나.
찰나의 침묵 속 어찌 할 수 없는 헤어짐과 안타까움이 우리를 훑는다.
당신이 내게 하는 질문은 하나 같이 대답을 생각 해 둔 말인데,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그댄 나와 함께 해서 행복했는지. 즐거웠는지.
나는 그렇다고 대답 할 거야. 다정한 시간과 자상한 그대.
나는 어리광을 피우는 아이처럼 속절 없이 함께 시간을 보냈지.
눈처럼 쌓인 시간들이 발 밑에서 얼어 붙었네.
그래서 봄이 오면, 좀 더 따뜻한 날이 오면 떠나겠다 생각하고 시일을 미뤘지.
내내 미뤘던 만큼 오늘은 날이 참 따뜻해.
어디로도 떠나기 좋은 날씨야.
나는 당신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화조풍월이 때를 알려주었지.
오늘은 달이 밝아 먼 길을 떠나기 좋은 밤.
붉은 꽃이 만발한 곳에서 새들이 떠난 하늘을 보네. 스친 바람이 앞 길을 알고 있어.
운명이 물처럼 흐르는구나.
위에서 아래로, 위에서 아래로.
그 방향을 어떻게 거스를 수 있겠나.
결코 거역하지 못하고 흘러가고 말아.
나의 운명은 물과 같아, 말라 비틀어져 버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고여있질 못하고 끝내 강으로 바다로 향하네.
환멸을 쫓아 낼 진리를 기원하며.
결코 거역하지 못하고 물길을 따라 흐르듯 운명이 움직이네.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역리의 삶.
제아무리 외롭고 끝내 미쳐버린다 해도 지금은 그 것 만이 내게 남은 것이니.
흐르고 흐르고 흘러, 찾고 찾으며 찾아야지.
헤어짐의 시간이 끝내 와버렸구나.
이제 내가 흘러가야 할 시간이야.
안녕히. 사랑하는 그대.
부디 나를 잊지 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