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피가 튀는 걸 목격 하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실수했다는 걸.
아주 중요한 사실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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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그는 못 보던 암갈색 상자를 들고 왔다. 언제나처럼 희게 웃는 미소. 저를 혈족으로 만든 자를 석궁으로 쏴 죽이는 와중에도 지금처럼 웃으며보고만 있던 사람이라, 그 미소가 사람 좋단 것과 거리가 멀단 건 안다. 그래도 그는 퍽 다정했고 청연에게 '나쁜 걸' 가르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를 믿고 상자를 받아 들였다.
"열어 봐."
청연은 상자를 열었다. 암갈색 나무 상자 안에는 리볼버 한 정이 들어가 있었다. 날씬하고 얼마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 외에도 딱 한 가지가 달랐다. 은으로 만든 총. 닿기만 해도 치명적으로 살이 문드러지는 치명적인 독.
헌터들이 사용하는 무기에는 언제나 이 독이 발려 있었다. 은화살. 은탄. 하지만 은으로 만든 총은 처음이다.
"이걸 왜?"
"뱀파이어라고 뱀파이어를 죽이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과연. 청연은 한 방에 납득했다. 하지만 같은 질문을 조금 다르게 했다. 이걸, 왜 내게 주는건데?
자신의 질문은 퍽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딱히 누군가를 죽일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존재를 말살 시켜버리겠다고 살의를 품은 적은 이미 오래 전이다. 아주 오래 전. 오백년도 더 전에, 기억하고 싶지 않고 불쾌했던 상대를 석궁으로 쏴죽이고 눈알을 뽑아 버렸던 옛적의.
"너는 평범한 총을 들지 않는게 좋아."
그는 그렇게 말하며 청연의 머리를 쓰다 듬었다. 이해 할 수 없었다. 평범한 총이라니. 총은 총일 뿐이다. 사람을 죽이기 위한 도구이고 무기이며 흉기.
"총은 상대를 반드시 죽게 만들지. 네가 남을 쏘든, 남이 너를 쏘든."
당연한 말을 하는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끄덕였다. 옳은 말에는 긍정 할 수 밖에 없다. 그는 뭔가 설명하기 어렵네, 라고 중얼거리다가 볼을 긁적이고 말했다. 그러니까 말야.
"적을 너무 만들지 말라는 말이지. 수틀린다고 멋대로 쏘고 다니지 말고. '우리는' 이미 아무나 죽일 수 있는 존재잖아."
"응."
"은으로 만들어진 총이라면, 너도 함부로 들고 쏘려 들진 않겠지."
인간과 뱀파이어는 사냥감과 포식자의 관계이다. 압도적이고 명확한 힘의 차이. 종족의 차이. 분명 인간은 언제든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 또한 마찬가지인걸. 그들도 우릴 죽일 수는 있으니까. 너무 적을 많이 만들지는 말라며 그는 이상한 선물을 했다. 뱀파이어를 죽이려던 어느 헌터에게서 전리품처럼 가져왔다는 총이었다. 청연은 쌜쭉거렸지만 곧 받아 들였다. 챙겨주는 건 고마웠다. 어쨌거나 적을 많이 만들지는 말라는 말이잖아.
"조심하도록 해."
"알았어."
명심하겠다고 말했다.
그 때 분명히 그렇게 말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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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피가 튀는 걸 목격 하는 순간 청연은 깨달았다.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명심하겠다고 했는데.
뒤이어 복부를 관통하는 맹렬한 아픔에 몸이 뒤흔들렸다.
총은 상대를 반드시 죽게 만들지.
그러니 조심해서 쏴.
ㅡ실수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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