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 않기 위해 창문을 열어 두었더니 고양이들이 하나둘 스토브 앞에 모여 앉았다. 어제부로 일곱마리를 돌파한 사무실의 길고양이들은 이제 내쫓을 기력도 없다. 게다가 한 마리는 책상 위, 한 마리는 무릎 위로 올라와서 골골대고 있으니 내가 아무리 냉정하다고 해도 무릎 위에 올라오는 고양이들에게 미친놈마냥 빗자루를 휘두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니 말도 못하는 동물한테 그런 놈이 있으면 허리를 백 번은 꺾어버려도 시원찮지. 하여간 양모 방석 위에서 마우스를 딸깍이자 느긋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평소라면 이런 노래 따위 자장가 같다면서 꺼버렸을텐데 생각보다 마음에 든다. 노래가 올드해서 그런가. 그렇다고 하품이 안 나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다녀왔습니다. 퇴근 시켜주세요."
"...왔냐."
사무실 문이 열리고 찬 공기가 훅 몰려온 바람에 고양이들이 야옹거리잖아. 오자마자 퇴근이라고 말하는게 그 입이냐. 어쩌면 저렇게 뻔뻔 할 수가 있을까.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긴 하지만. 몇 마리가 문이 열리자 곧장 밖으로 나가버렸지만 카즈노리는 몇 번 흘끔거린게 전부였다. 머플러를 풀어 소파에 적당히 펼쳐 둔 카즈노리는 곧 스토브에 손을 녹였다.
"입금 확인 했어요?"
"어. 알림 문자 왔다. 고생했다."
"제가 너무 유능해서 고생을 합니다. 퇴근이나 시켜 주세요. 벌써 6시잖아요."
"...이틀 동안 발로 뛰면서 찾은 건 나였잖아."
실종된 치매 환자 찾기라는 간단하지만 험난한 의뢰에 밤낮으로 뛰어다닌 결과 몸이 녹초였다. 게다가 잃어버렸단 사람이 노인도 아니고 중년 남성이라, 술 취한 사람으로 취급당한 모양이다. 경찰에 신고를 해도 제보 연락 하나 안 들어온다며 의뢰인이 기어오듯 울며불며 사무실로 들이닥쳤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전단지를 오백장은 붙였다며 툴툴대는 나를 깔끔하게 무시한 카즈노리가 곧 책상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곧바로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빤히 바라보고 말했다.
"무슨 책이에요?"
"뭐가."
"뭐긴 뭐에요. 웬일이래."
눈 앞의 인물께선 내가 얼마나 학창시절에 '책'과 담을 쌓은 인간이었는지 아주 잘 알고 계시니 더 잡아 뗄 순 없다. 나는 순순히 책을 들어 표지를 내비쳤다. 피노키오. 거짓말을 할 수록 코가 늘어나는 인형의 이야기. 당연히 내 돈 주고 샀을 리는 없고, 도서관에서 빌려왔지만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충격적이었나보다. 하기사 도서관 회원증을 만들어서 책을 찾아 빌려오는 일련의 과정을 상상 해본다면 놀랄만도 하지만.
"...그냥. 몰랐는데. 이 노래가 피노키오에서 나온 곡이라길래."
"무슨 곡 인데요."
"When you... ...몰라 뒤는 못 읽겠어. 그냥, 심심해서 빌려봤다."
내 변명을 듣고 그래요? 하고 반문한 카즈노리는 책상 뒤로 빙 돌아와 모니터 안을 바라보았다. 화면 안에는 음악 재생 플레이어가 자막으로 재생중인 노래 제목을 띄워 놓고 있었다. 영어와 담을 쌓은 나와는 다르게, 학생회장까지 하셨던 놈이니 못 읽을린 없겠지.
"When you wish upon a star."
"..."
"...별에 소원을."
아주 잠깐 우리 둘 사이에는 대화가 사라졌다. 눈 오는 크리스마스에 사이 좋은 남매끼리 손이라도 잡고 들을 캐롤송 같은 곡. 노래가 좋아서 듣고 있는 것도 맞지만, 어쩐지 아련한 기분이 되어서 좀처럼 정지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아마 우리는 비슷한 시절을 잠깐 떠올렸을 수도 있겠다.
재생바가 끝까지 도달하자 나는 스페이스바로 노래를 멈췄다.
"퇴근해라. 고생했다."
"가봅니다."
아쉬운 기색 하나 없네. 곧장 퇴근하겠다며 카즈노리는 걸음을 돌렸다. 코트의 단추를 잠그더니, 제 책상에서 서류 봉투를 가져와서 관리인에게 전하는 걸 잊지 말라는 신신당부가 잇따랐다.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바보냐 눈 앞에 있는 서류까지 깜빡하게.
"카즈노리."
"뭡니까."
"...아냐. 들어가라."
"여전히 실없게 군다니깐."
냅둬라. 돈 보태준 거 있냐- 라고 투덜거리는 걸 중간에 끊어버린 녀석은 보기좋게 웃으며 퇴장 해 버렸다. 저러니까 내가 매년 연봉 협상때마다 질질 끌려다니는 거라고. 이래서야 누가 사장인지 모를 지경이잖아. 한숨을 내쉬자 어쩐지 고양이가 놀라서 도망쳐버렸다. 허전해진 무릎 위 고양이 털을 두어번 털고 창문을 닫았다. 눈도 비도 없이 오직 까만 겨울밤이었다. 창을 잠그고 의자에 더 깊게 눌러앉은 다음, 다시 스페이스 바.
When you wish upon a star, Makes no difference who you are
당신이 별에게 소원을 빌 때, 당신이 누구인지는 상관없어요
하려다가 말았던 말은, 너무 예전에 나눴던 대화라 이제는 나도 가물가물 하거든. 어쩌면 카즈노리는 잊었겠다. 의심과 불안으로 가득 차있었던 우리의 시간. 그때 네가 물은 적이 있었다. 유우토의 부탁으로 빨간눈을 찾던 때,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냐고. 별에 대고 소원을 빌어보는 건 어떻냐며.
Anything your heart desires will come to you
당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이루어질테니까요
우주에 꿈을. 별에 소원을.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며 주워졌던 기회. 아스트로 스위치. 가면라이더부와 스타더스트. 조디아츠.
느릿느릿 하모니가 겹치고 하프소리와 현울림이 스피커에서 흘러 나온다. 그리고 내게 화성으로 떠날 기횔 주었던 사람도 생각났다. 그리운 얼굴들이 차례차례 떠오르다가 사라진다. 차가운 겨울밤에 소리 없이 쌓인 눈처럼 그렇게 떨어지면서.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별에게 빌어보는게 어떻냐는 말에, 나는 내가 했던 대답을 기억한다.
별에게 소원 같은 거 부탁하지 마. 걔들은 자기 몸 태우면서 지구별까지 빛 보내느라 바쁜 녀석들이니까.
"소원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누구의 손을 잡든지 이루고 싶은 꿈이 있더라도.
"ㅡ자기 힘으로 이루라고."
자기 힘으로 이루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거지. 그때의 나는 참 치기어렸지만, 지금이랑 많이 달라졌냐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니다. 여전히 같은 대답을 할 거다.
담배가 늘었고 머리카락은 더 길었지만, 앞 뒤 재지 않고 달려드는 불 같은 성질이 좀 가라앉은 것 뿐 여전해.
아직도 이루고 싶은 소원 하나 발견하지 못한 반푼어치. 요령 없는 고집쟁이.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살아가기로 결심했잖아. 내 곁에 친구로서, 동창으로서, 인연으로서 스치고 간 사람들을 보며 유일하게 결심 한 일. 비록 나는 요령도 없고 이루고 싶은 것 하나 없는 사람이지만ㅡ 더 이상 현실을 사는 일에서 도망치지 않겠다고. 내 힘으로, 외돌토리가 되더라도 끝까지 살아보겠다고 마음 먹었더란다. 그게 내 학창시절. 나의 길 위로 별빛이 가장 많이 쏟아지던 시절.
If your heart is in your dream no request is too extreme
당신의 꿈속에 마음을 담으면 어떤 요구도 지나치지 않아요
여전히 별에 빌 소원은 없어.
하지만 빌고 싶어질 소원이 생길 때까지 아등바등 살 거야.
그리고 소원을 발견하면 그 때부터라도 달려나갈 것이다.
결코 떨어지지 않도록, 흘러 넘치지 않도록 가슴 안에 소중하게 품고서.
내게 소원과 열망이 생길 날을 누구보다 간절하게 원해왔노라 말하며.
겨울밤을 녹이는 노랫소리와 함께 나는 더욱 깊이 의자 안으로 몸을 구겨넣었다. 관리인이 온다고 한 건 일곱 시. 고양이 한마리가 책상 위로 올라와 마우스줄을 툭툭 건드린다. 캔이야 아까 실컷 줬잖아.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턱을 긁어주는 동안 몰려오는 졸음. 이 졸음을 오늘은 순순히 받아들일까 싶다. 적막한 밤은 서서히 차올랐다. 따뜻한 스토브의 열기와, 고양이 발걸음. 그리고 자장가 같은 노래를 들으며 짧은 잠을 청하는 내 숨소리가 조용히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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