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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소원을

샤를로트를 위하여







매 년마다 이상기온이니 뭐니 시끄럽게 떠들던게 무색하지 않는 계절이 찾아왔다. 바야흐로 겨울. 점점 추워지겠거니 생각했던 날씨는 아니나 다를까 금새 급변했다. 


며칠 전 만 해도 은행잎이 떨어지긴 멀었겠거니 싶었던 나무들은 앙상하게 마른 가지만을 자랑하며 가을을 떠나보냈다. 덕분에 생각보다 이르게 겨울 옷을 꺼내야만 했고, 슬슬 장농 한구석에 있는 장갑이 그립다. 주머니로 손을 쑤셔넣는 걸로 어떻게든 해결한다는 수준이 아니라서, 며칠 전에는 드디어 사람이라곤 둘 밖에 없는 사무소의 하나밖에 없는 직원의 동의 아래에 난방기구를 덜컥 사버리는 일까지 저질러버렸다. 


그래. 말이 나와서지만 정해진 예산은 한정적인데 돈 나갈 곳은 세상 온 천지에서 문어발처럼 뻗어 있는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죽을 맛이다. 장난이 아니라고. 사무실 월세는 자동이체지만 전기세 수도세 건강보험을 기본으로 법인세와 주민세, 사업세, 소급 세득, 인지세….




"장난 아니네 진짜. 몇장이야 이게. 고지서 다 찢어버릴까. 미친 거 아냐 빌어먹을."

"웬일로 우는 소리네요. 찢으실거면 세금은 다 내고 찢으세요 하뉴."




다 찢었을 때 공단에 전화해서 계좌번호 알아내야 하는건 접니다. 라는 짤막한 태클이 걸어왔지만 성질 낼 기운도 없다. 내도 내도 끝이 없이 밀려드는 고지세가 진짜 밉다. 그렇다고 사무소 간판을 내리자니 당장 형에게 빌린 돈부터 저번달에 새로 산 구두값까지 온갖 영수증이 빠르게 숫자로 변해서 머릿속을 스친다. 고지서를 붙들고 답잖게 우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게 드물긴 했는지 카즈가 커피를 가져다주기까지 한다. 

그래. 솔직히 나답지 않지만 어쩔 수 없잖냐. 이번달은 지방세까지 내느라 진짜 휘청할뻔했다고. 피를 한움쿰 토하는 심정으로 머리를 긁다가 커피를 한모금 마셨더니.




"푸웃, 켁...! 커피맛이 왜 이래?!"



지방세를 낼 때도 토하지 않았던 피를 토할 맛의 커피에 순간이지만 추위도 잊었다. 황급히 휴지로 입가에서 튄 커피를 닦아냈지만 솔직히 좀 더러웠을듯 하다. 

아니 근데 도저히 뱉어내지 않곤 견딜 수 없는 맛이다. 쓴맛조차 없는 커피라니 어떤 의미론 신기하기까지 한데. 범인은 한 놈 뿐이라 카즈를 노려봤더니, 벌써 1면은 다 봤는지 태연하게 2면으로 신문을 넘기는 녀석이다.




"프림이랑 설탕을 물어봤더니 아무거나 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소금을 넣는 놈이 어딨어-?!!"

"째째한걸 가지고 따지지 마세요."

"너 어제 킹오파 진 걸 가지고 아직도 꽁해져 있냐?! 나잇값 좀 해라, 지가 못한걸 가지고."

"구석에 몰아넣고 하단 발차기만 넣은 하뉴가 제게 할 말은 아니네요. 일 없으면 얼른 퇴근 시켜주시죠."

"아직 출근한지 15분밖에 안 됐다 이 자식아-!"



그래. 이상기온이라고 강산과 세월은 물론이고 기후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게 있기 마련이지. 도대체 커피믹스, 설탕, 프림밖에 없는 정수기 옆 어디에서 소금을 만들어서 쳐넣은건진 모르겠지만 아침부터 사무실을 한바탕 뒤집어넣어야 성에 차는 모양이지. 동창이자 친구이자 웬수같은 인간과 아침부터 한판 하고 나니 이 세상에 있는 적이 세금만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일의 능률적 문제입니다. 저는 퇴근해야 일이 더 잘 된다구요. 어차피 일거리도 없으면서."

"일거리가 없으면 네 월급도 간당간당 할거라는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냐. 사무소의 직원으로서 일말의 책임감이라던가, 그런거. 어? 못 느껴? 회사의 위기와 사장의 위기는 네 위기이기도 하거든? 말이 나온 김에 같은 고통을 느껴야지. 커피 이리 내. 너도 똑같이 마셔봐."

"...! 제 모닝 커피에 이상한 짓 하지 마십쇼. 아침의 여유를 방해하다니 야만적인 행동이지 않습니까!"

"그 이상한 짓거릴 내 커피에 해댄 놈이 할 소리냐-!"



나는 문답무용으로 소금통을 찾아들었다. 뚜껑 위에는 꼼꼼하게도 '소금' 이라 적혀있었다. 아마도 카즈의 글씨다. 한스푼 듬뿍 퍼서 수저를 들었더니 나름대로 필사적으로 방어를 한다고 하고 있는데 키가 커도 내가 더 크다고 이 자식아! 사내놈 둘이서 아침부터 커피잔에 소금을 넣으려고 하고 막으려고 하는 꼴은 솔직히 좀 웃기긴 하겠지만 지방세로 상처입은 내 심장에 소금을 끼얹은 놈에게 자비란 없다.



"저기요…."

"순순히 포기하고 소금커피나 마시지 그래...!"

"아…저기…."

"나잇값좀 하십쇼 하뉴…!"

"진짜 그 말 너한텐 듣기 싫거든!!"

"실례합니다……!!! 타카히사 흥신 사무소를 찾아왔습니다!!"




아마 이 추운 겨울날 햇빛이 들다 마는 미묘한 조명권에 위치한 아홉평 남짓의 더럽게 추운 사무실에 손님이 들어 왔을때 소금을 하얀 눈싸라기처럼 뿌려대는 성인 남자 둘의 모습은 첫인상으로서 바람직하진 않을 것이다.


 


"사장님은 계신가요?"

"……제가 사장입니다. 앉으시죠."

 


그런 눈으로 보진 마라. 나도 좀 쪽팔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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