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얼대 그럴 리 없어! 뭇군이라면 항상 마이우봉이잖아?"
"그건 학교에서 단순히 먹는 게 편해서지. 연습이 끝나면 항상 봉지 째 뜯는 게 그녀석이란 거다."
"그래도 가장 많이 먹는 건 마이우봉이잖아. 미도링은 어떻게 마이우봉 말고 다른 게 상상이 가?"
테이코 중학교에서 오 분 거리의 체인형 편의점 패밀리마트에는 평소 이 시간이라면 절대 있을 리 없는 이들이 편의점 내부에서 소란 아닌 소란을 벌이고 있었다. 눈썰미가 좋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라면 과자 매대 앞에서 옥신각신 하고 있는 이 한 쌍의 중학생들이 평소 과자를 쓸어가던 커다란 중학생의 친구였음을 금세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아르바이트생은 바코드를 찍는데 정신이 없었고, 논쟁에 불이 붙은 두 명도 차분히 대화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가격으로 봐도 마이우봉이야 미도링! 콘소메, 치즈하고 라유 토마토랑…아 초코맛도! 봐 이렇게 하나씩만 사도…."
"그러니까 종류를 늘릴 거라면 다른 과자들도 사는 게 낫다는 거다. 어차피 가격 차이도 별로 안 나잖아. 아무리 그녀석이라고 해도 마이우봉만 이렇게 먹을 리가 없잖아. 질리는 게 보통이다."
"미도링, 상대는 뭇군이라니까? 질릴 리가…"
"어이 미도리마, 사츠키. 둘 다 적당히 좀 하고 이제 골라라. 우린 계산 끝났다고!"
뜬금없는 곳에서 역정을 퍼부은 것은 다름 아닌 아오미네였다. 아오미네의 양 손 비닐봉투에는 음료수와 쿨피스, 라무네를 포함한 음료수들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척 보기에도 무거운 짐을 든 채 두 사람을 노려보는 아오미네의 시선은 꽤 흉흉했으나, 상대들이 쉽게 물러날 상대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 쪽은 마이우봉, 한 쪽은 감자칩을 손에 들고 아오미네에게 눈을 빛냈다.
"아오미네군도 뭇군은 마이우봉이라고 생각하지? 저번 만 해도 종이봉투 한가득 전부 마이우봉을 먹고 있었는걸!"
"모모이. 애초에 목적을 잊고 있는 것 같은데, 이래선 과자 파티가 아니라 마이우봉 파티가 되어버린다는 거다."
"아무래도 좋으니까 얼른 고르라고 좀… 너희 내 손에 든 게 안 보이는 거냐…?"
"아오미네군 이 바보! 아무래도 좋다니 그게 뭐야! 태도를 확실하게 하라니깐!"
"제 생각엔 둘 다 적당히 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테츠 군?!"
인내심이 한계에 다한 아오미네와 으르렁거리며 당장이라도 화를 퍼부을 기색이 역력했던 모모이는 화들짝 놀랐다. 뒤를 돌아보자 아니나 다를까, 불쑥 튀어나온 사람은 바로 쿠로코였다. 아오미네가 영수증을 받지 않고 모모이들 쪽으로 휘적휘적 걸어가 버린 탓에 남은 잔돈 계산을 챙기게 된 건 전부 쿠로코 몫이었다. 쿠로코는 계산이 끝났다며 ‘아오미네군, 영수중 잊어버렸어요.’ 라는 말을 넌지시 건넸다.
세 사람의 근처로 다가온 쿠로코의 손에는 아오미네와 마찬가지로 비닐봉투가 들려있었다. 액체류를 들고 있는 아오미네만큼은 아니라도 제법 무게 있어 보이는 봉투 속에는 바나나칩이나 견과류 간식과 사탕 같은 가공 식품이 언뜻 비쳐보였다.
미도리마는 손목시계를 힐끔 바라보곤 말했다.
"쿠로코. 음료랑 사탕 계산하고 얼마나 남았지?"
"마이우봉과 봉지 스넥들을 다 사도 충분할 것 같아요. 잔돈을 남긴다면 남기는 대로 곤란한데다가 이번엔 아카시군이…."
꽤 냈거든요, 라는 말을 하려 했지만 쿠로코는 왠지 말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입을 다물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쿠로코의 뒷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모모이와 미도리마는 끄덕이며 각자의 바구니에 과자를 덥석 덥석 집어넣기 시작했다. 가장 무거운 짐을 들고 서 있게 된 아오미네의 화도 그제야 조금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모모이의 투덜거림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가장 아래 칸의 마이우봉을 꺼내며 모모이가 볼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중에 뭇군에게 물어 볼 거야. 분명 마이우봉이 제일 좋다고 할 걸…."
"애초에 그 녀석이 과자를 가릴 리가 없잖아."
"너도 참 끈질기단 거다."
"…다들 그렇게 싸움만 하고 있다간 곧 점심시간 끝나버려요."
모모이를 감싸듯 지적한 쿠로코의 말에 드물게도 미도리마가 동요했다. 후다닥 소리가 날 정도로 재빨리 마이우봉을 종류별로 넣은 모모이가 먼저 계산대로 향했고, 종류별로 과자를 쓸어 담은 미도리마가 그 뒤를 이었다. 졸지에 바빠진 편의점 점원이 또다시 부리나케 비닐 봉투를 꺼내는 소리가 들렸다.
보통이라면 낮잠을 먹고 쉬고 있을 황금 같은 점심시간에 이 멤버가 학교 밖, 그것도 뜬금없이 과자를 사러 편의점에 온 건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오늘은 10월 9일. 매번 농구가 싫다고 투덜거리고 쿠로코를 비롯한 기적의 세대 멤버를 애먹인다고 해도 친구인 무라사키바 아츠시의 생일이다.
손에 손잡고 둘러 앉아 정겹게 노는 친구 사이까진 아니지만 긴 설명은 필요 없었다. 평소 모델 일로 심심찮게 학교를 결석하던 키세는 군말 없이 이 과자 파티인지 생일 파티인지 구별 안 가는 깜짝 파티를 위해 학교에 등교했다. 모모이를 비롯한 다른 멤버들이 입을 모아 의견을 내자 아카시마저 안 쓰는 체육관 라커실을 청소하고 꾸미겠다는데 동참했으니 더 이상 말도 필요 없다. 점심시간이 되자 도시락도 먹는 둥 마는 둥 넘긴 네 사람은 당당하게 편의점으로 나섰다. 교내에 남아있는 아카시와 키세는 지금 아침에 청소를 끝낸 라커룸을 꾸미는데 여념이 없을 테다.
어제 오후, 여섯 명 모두 무라사키바라의 생일 선물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랐지만, 과자를 중심으로 꾸민다는 데는 만장일치로 의견이 맞아 떨어졌다. 미리 여섯이서 모은 돈으로 음료수를 비롯한 각종 과자들을 사서 라커에 놓고, 아카시와 키세를 도와 풍선을 붙이는 걸 도우면 대강의 일은 끝난다. 과자들은 무라사키바라가 방과 후 연습에 도착하기 전에만 세팅을 끝내면 이 깜짝 파티는 대성공이다.
"잠깐…금액이 조금 오버했어. 기다려라, 일단 이걸 빼고 처음부터 다시 골라 오겠다."
"어느 세월에?! 안 돼 미도리마! 점심시간 15분 남았어!"
"아, 괜찮아요. 미도리마 군, 여기 잔돈 남아 있어요. 제가 낼게요."
미도리마가 눈썹을 찌푸리며 계산대에서 벗어나려 하자 아오미네가 비명을 질렀다. 안 그래도 자기 혼자서만 무거운 걸 잔뜩 들어서 허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쿠로코는 아오미네를 힐끗 바라보다가 지갑을 들어보였다. 미도리마는 다시 카운터에 바구니를 올려놓고 안경을 고쳐 썼다. 편의점 봉투 속은 금세 과자들로 가득 찼다.
마지막 바코드를 찍어보자, 아니나 다를까 미도리마의 예상대로 지갑 안의 돈이 조금 부족했다. 미도리마는 신중하게 지폐와 동전을 센 후 점원에게 돈을 건넸고 부족한 금액을 내기 위해 쿠로코가 계산대 앞에서 동전지갑을 열었다. 그 순간이었다.
편의점 문에서 기계음으로 된 새 소리가 들렸다.
"……응?"
"무…라사키바라?!"
"어라. 미네칭 안녕. 어라라. 다들 모여 있네?"
태연하게 인사를 건넨 상대에게 제대로 인사를 못 한 건 순수하게 놀랐기 때문이었다. 편의점 내부를 훑어본 무라사키바라는 평소와 다름없는 졸린 눈으로 손을 흔들었다. 모모이를 비롯한 모두가 잠깐 동안 패닉에 빠진 사이, 비교적 표정을 흐트러트리지 않은 쿠로코가 인사했다.
"…무라사키바라군. 여긴 웬 일이에요?"
"과자가 먹고 싶어서 잠깐 빠져 나왔어. 아침에 사간 건 다 먹었거든."
하기사 이 시간에 무라사키바라가 편의점을 들릴 이유라곤 그 것 밖엔 없었다. 쿠로코는 조용히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라사키바라는 커다란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평범한 걸음걸이인데도 커다란 체격 탓에 절로 위압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감추는 일이 있어서 그런지, 아오미네와 모모이는 물론이요 미도리마조차 인사를 건넨 게 고작이었다. 잠시 동안이지만 숨 막히는 침묵을 느끼며 넷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매대 앞으로 다가간 무라사키바라는 느린 동작으로 가장 아래쪽의 과자를 집어 올렸다. 패밀리마트 한정 특가상품이라고 판넬이 붙여져 있는 과자였다.
무라사키바라가 그림자만으로 쿠로코를 전부 가리며 주머니의 동전으로 계산을 마칠 때 까지, 넷은 숨 막히게 불편한 공기 속에서 어찌 할 줄을 모르고 시선만을 교환했다. 계산이 끝나자마자 과자 봉투가 터졌다. 부지런히 입으로 과자를 옮기며 와삭이는 소리가 무섭게, 무라사키바라가 드디어 네 사람의 손에 들린 봉투를 봐 버리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후 차분한 건지 졸린 건지 구별 할 수 없는 목소리가 넌지시 물어왔다.
"그러고 보니 쿠로칭들이야말로 웬 일이야? 지금 점심시간인데…무거워 보이네. 그거 전부 과자?"
"그게… 그러니까…."
역시 비밀을 함구해야 할 의무를 가지게 되자 쿠로코의 침착함도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무라사키바라가 눈을 굴리며 똑바로 시선을 던진 탓도 있었지만, 제일 큰 이유는 무라사키바라의 등 뒤에서 아오미네와 미도리마가 제각각 손을 움직이며 다른 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인도 춤 마냥 묘한 몸짓이 된 아오미네와 미도리마의 모습은 의미 전달이 안 되는 통에 집중하기가 힘들었고, 무시하기엔 너무 기괴했다.
그 때였다. 쿠로코의 앞으로 나서며 모모이가 무라사키바라를 직시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 뭇군, 이건, 그러니까… 이번에… 아니 오늘 말이지, 아오미네군이랑 미도링 반에서 오후에 유치원 봉사 활동이 있대!"
"봉사 활동?"
"응. 그래서 두 사람이 과자 담당이래서… 무겁대서 우리가 드는 걸 도와주러 온 거야."
급조한 변명이니 어쩔 순 없지만 퍽 조약하고 지리멸렬한 말이었다. 중학생이 유치원 봉사 활동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다. 게다가 유치원 봉사 활동에 이 정도로 산더미 같은 과자가 필요할 리가 있나. 이마에 손을 얹는 미도리마와 아오미네는 만사가 다 끝장났다는 얼굴로 모모이를 노려보았다. 심지어 쿠로코조차 들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듯 스쳐 지나갔을 정도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사람은 운 좋게도 속이는 상대가 무라사키바라임을 새삼 깨달았다.
"…그랬구나. 미네칭네 반에선 봉사 활동 같은 것도 한대?"
"반 마다 다르대! 뭇군네 반에서도 할지도 몰라."
"그건 좀 싫은데… 귀찮아 그런 거."
노골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라사키바라가 입안 한 가득 과자를 씹으며 투덜거렸다.
평소에는 단점이라 생각했던 무라사키바라의 산만한 태도가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은 몰랐기에 네 사람은 거의 동시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상대가 눈치는 있어도 겸손은 부족한 키세라던가 키세였다면 여기선 혀를 쏙 내밀며 깜짝 파티 계획을 다 알겠다는 식으로 오히려 네 사람을 놀려 댔겠지. 아니 애초에 키세라면 이런 깜짝 파티를 열어 줄 리가 없나.
여하튼 키세와는 달리 무라사키바라는 기본적으로 남을 의심하진 않으니까. 머리를 굴리는 일도 농구가 아니면 드물어서, 이렇게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두면 쓸 때 없는 걸 묻거나 하진 않는다. 예상대로 무라사키바라는 과자에는 계속 눈을 돌렸지만, 설마 자기 몫일 거라곤 생각 못 했는지 힐끔거리는데 그쳤다.
"좋겠다. 나도 먹고 싶은데."
"…남으면 오늘 방과 후에 하나 가져다주겠다는 거다."
"아, 정말?"
금새 표정을 달리 하고 미도리마 쪽을 바라보던 무라사키바라가 눈을 빛냈다. 농구 외에는 어지간히도 귀찮다는 말을 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무라사키바라지만, 먼 길을 돌아가거나 편의점을 순회 할 정도로 열의를 아끼지 않는 소재 중 하나가 바로 과자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미도리마는 무라사키바라의 시선이 북극곰이 먹이를 기대하는 눈빛과 비슷하다고 생각 했다. 사실은 이게 다 네 몫이라는 말은 알려 준다면 어떤 얼굴을 할까.
"우선 돌아가죠. 곧 예비종도 칠거에요. 저흰…아니 아오미네군 다 샀거든요."
"그러자! 가자 뭇군. 사실 아까 미도링이랑 뭇군 이야기도 했어."
"내 이야기?"
"응. 있잖아, 미도링이 뭇군은 과자라면 뭐든 상관 없다 잖아? 난 뭇군이라면 분명 마이우봉을 제일 좋아 할 거라고 말했더니 미도링이 화를 내는 거 있지!"
"화낸 게 아냐. 당연한 사실을 알려준 거다."
"아! 이것 봐. 뭇군, 여기선 당사자가 말해줘. 마이우봉인지 스넥인지!"
"음……어려운 걸."
모모이가 무라사키바라를 데리고 앞장서는 동안 미도리마는 무라사키바라의 등 뒤에서 힐끔 손목시계를 훔쳐보았다.
예상외의 조우가 일어나버린 바람에 남은 점심시간은 10분이 고작이었다. 편의점에서 학교는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깝지만 이렇게 된 이상 라커룸 꾸미기는 포기하고 과자만이라도 가져다 두는데 만족해야겠지. 그래도 중요한 계획은 들키지는 않았으니 괜찮겠거니 싶어 한숨을 쓸어내렸다. 살짝 눈이 마주친 쿠로코도 끄덕였으며 아오미네는 작게 엄지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모모이가 문을 열기도 전에, 안쪽으로 누군가가 문을 열며 들어왔다.
조화인지 생화인지 모를 꽃부터 생일 축하 고깔까지. 생일 축하에 쓸 만한 이벤트 용품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두루두루 품에 안고 있는 키세였다. 여자애들 여럿을 비명 지르게 하는 잘 생긴 외모가 오늘따라 불만 가득 차 있었다. 함께 들리는 편의점 문에서 들리는 기계음의 새소리, 그리고 듀오를 이루는 억울함에 가득 찬 목소리는 지금껏 네 사람이 이룬 노력을 산산이 부쉈다.
"────아 진짜! 네 사람 다 여기서 뭐해요! 너무함다! 난 아카싯치 명령으로 점심 내내 이벤트 용품에 금박까지 사느라 한참 뛰어다녔는데! 게으름 피지 말아요! 이래선 모처럼 무라사키밧치의 깜짝 파티가 소용없게 되잖…아…요……?"
머잖아 키세가 얼이 바진 얼굴로 시선을 들었다. 말도 안 되게 커다란 체격으로 테이코 중학교에서 활보 하는 사람은 키세가 아는 한 딱 한명 밖에 없었다.
"…소용없게 해줘서 고맙다 키세."
이윽고 차가운 목소리로 아오미네가 말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한동안 차가운 침묵이 몰아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아츠시."
"……."
"아츠시."
여전히 잠에 취한 상태였지만, 겨우 무라사키바라는 눈을 떴다. 깜박이는 동안에도 뭔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눈을 뜨긴 했지만 아직 정신이 완벽하게 돌아온건 아니었다. 엎드렸던 상태에서 한참을 꾸물거리다가,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겨우 등을 세우고 앉았다.
제대로 정신을 못 차렸다는 증거마냥, 무라사키바라는 곧바로 히무로를 향해 영문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역시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건 어려워 삿칭."
"응?"
"아니 잠깐… 무로칭이구나."
"아츠시… 많이 졸렸나봐? 한참 찾았어."
중학교 때는 누구도 무라사키바라를 아츠시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무라사키바라는 겨우 잠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꿈도, 테이코 중학교도, 도쿄도 아니다. 아키타의 요센 고등학교 제 3 예배실.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고 보니 연습 도중에 예기치 않게 긴 쉬는 시간이 생겨버렸지.
농구부의 사회봉사활동 문제로 잠깐 이야기해야 한다며, 주장과 감독이 사이좋게 휴식시간을 내리곤 사라져버렸다. 평소라면 트레이닝이라도 명령 하고 가버렸을 텐데, 요센에서 의무화 되어 있는 봉사활동을 미룬 부원들도 함께 데려 가버려서 무라사키바라는 금세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렸다. 30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연습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리고는 잠이나 자겠다며 예배실로 굴러 들어왔었더란다.
긴 의자에 누워도 발이 빠져 나오길래 엎드려 있는 다는 게 그대로 잠이 들었다. 천천히 얼마 전 상황을 떠올리기 시작한 무라사키바라에게 그를 아츠시라고 부르는 유일한 상대, 히무로 타츠야가 보기 좋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좋은 꿈 꿨어?"
예배실 간다고 알려준 적도 없었는데 잘도 여기까지 찾아왔네. 무라사키바라는 하품을 하며 머리를 정돈했다. 딱히 히무로의 말에 대답 할 기색은 없어보였다.
그러나 한참 후 속삭이듯이 '모르겠어.' 하고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히무로는 놓치지 않았다.
"…중학교 때 꿈 이었어."
"무슨 꿈이었는데?"
"마이우봉이랑 스넥 중에 어느 쪽이 더 맛있는지 고민하는 꿈."
"…좀 특이한 꿈이네. 누가 고민 한 건데?"
"내가. 삿칭이 물어봤거든.
정작 삿칭이 누구인지 알 리가 없는 히무로는 전혀 배려하지 않는 대화 방식이었다. 자기 좋을 대로만 이야기하고 다시 입을 닫아버리는 무라사키바라를 보며 히무로는 못 말리겠다는 듯 흘겨보곤 더 이상 묻진 않았다. 무라사키바라를 슬슬 데려갈 시간이 됐다 싶어 히무로는 예배실의 시계를 확인 한 후 물었다.
"그래서 어느 쪽이 더 맛있는지 고민은 끝낸 거야?"
"맨 입으론 몰라."
안 먹어보곤 알 리가 있냐는 듯, 무라사키바라는 씩 웃으며 몇 년 전 삿칭에게 하려 했던 대답을 말하곤 예배실을 나갔다.
천천히 걸어 나가는 무라사키바라를 보며 히무로는 이 예상외의 대답에 볼을 긁적였다. 그렇게 나온다면 오카무라가 준비한 마이우봉과 마사코 감독이 준비 해 준 케이크를 먹이면 답이 나온다는 의미인가. 주머니를 뒤져도 가지고 있던 과자는 다 먹었는지 부루퉁한 얼굴로 과자껍질을 버리는 무라사키바라가 연습 따위 귀찮아 죽겠다고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부실로 돌아갔을 때의 무라사키바라의 반응이 궁금해져서, 히무로는 무라사키바라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곤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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