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우리는 전국대회를 우승했다.
하늘과 땅이 방향을 바꿔버렸다던가, 내게 내리 눌려진 중력이 갑자기 사라진 게 아니었다.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난 게 아니라, 단지 그 해 우리는 전국대회를 우승했을 뿐 이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농구부 연습에 참여하지 않았다.
농구공을 쥔 손은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농구공의 감촉도 다를 게 없었다. 처음에는 미끄럽기만 한 가죽의 감촉은 이미 닳아져서 고등학생을 앞둔 내 손안에 전부 들어 올 정도였다.
그랬다. 농구공은 이내 내 손에 전부 들어왔다. 더 이상의 노력이 없어도 아주 간단하게 손에 잡혔다.
전부 손에 들어 와 버린 것이다.
농구는 마치 어느 순간 가지고 놀다가 질려버린 인형 같았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기에 버린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간은 옥상에 누워 있건, 벤치에 앉아 있건 드리블을 하던 때와 똑같이 흘렀다. 지루해서 참을 수가 없었고 불현듯 아무 이유 없이 화가 났다. 어릴 적 실밥이 다 뜯어져도 정든 인형을 버리지 못했던 사츠키처럼 나도 농구를 놓지 못할 거란 걸 알자 화는 더욱 커졌다. 아마 농구공이 아니라 내 손에 못질을 해도 난 농구를 버리지 못 할 것이다. 중학교 3학년 여름. 그렇게 지겨운 시간이 시작되었다. 전국대회의 우승이 내 지루함의 시작이 된 순간이었다.
"전국 대회에서 볼 수 있겠네."
다음 해 봄 나는 겨우 웃을 수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웃으며 겨룰 수 없는 호적수가 가득인 팀을 빠져 나왔다. 막 올라온 고등학교의 새로운 환경은 안중에도 없었다. 전국 대회. 그나마 맞붙을 만한 놈들이 나온다. 나는 아카시의 마지막 인사를 듣고 졸업식에서 처음 웃었다. 누구든 좋았다. 지루함을 달래 주는 라이벌이 생긴다면 팀이 변하건 학교가 변하건 상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시간은 계속 되기만 했다.
토오의 첫 번째 부 활동이 끝난 후 돌아오는 길에 모모이의 머리카락에 붙은 벚꽃잎을 발견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머리카락을 털며 툴툴거리는 목소리는 중학교 때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걸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나도 변한 게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그때와 변한 점이 있다면 딱 하나. 제멋대로 흔들리는 그 꽃을 떼어주던 사람의 부재다.
내가 아니다. 그 꽃잎을 떼어주던 누군가.
- "모모이씨. 머리에 꽃잎 붙었습니다."
- "엑? 고마워 테츠 군! 아오미네군도 봤으면 좀 떼어줘!"
- "아 미안. 딴 생각 하고 있었어."
- "…키세 군에게 한 방 먹었던 걸 생각 하고 있었죠? 오늘 1 on 1 아슬아슬 했어요."
- "시꺼."
팔랑이며 사츠키의 머리카락에서 벚꽃잎이 떨어져나간다. 사츠키는 즐겁다는 듯이 웃는다. 그리고 너도 웃었었다.
지금 아무도 웃지 않는 이 시간이 마치 거짓말 같아지는 순간이었다. 과거의 파트너에 대한 상념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테츠. 너는 아직도 농구가 즐겁다고 할까?
답은 들려올 턱이 없었다.
그 때, 우리는 중학생이었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서 무엇하나 남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었다. 도전 해 오는 상대. 신뢰 할 수 있는 파트너. 엄하지만 유능한 매니저. 손 꼽히게 강한 팀. 아마 농구선수가 가지기를 바랄 만한 모든 환경이 내 곁에 있었다.
그러나 너무 강한 불꽃은 모조리 태우고 사그라들고 만다. 그 사실을 진즉 알았다면 좋았을 테다. 이토록 뭐든지 재미 없어진 건 한 가지에 파고드는 성격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 불꽃이 싫어져 내 발로 심지를 짓밟은지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다.
불꽃이 순간순간 타오를 뻔 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다시 점화되는 일은 없었다. 앞으로 영원히 이럴 거란 생각이 들 때마다 평생 잠이나 자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랬건만.
'아오미네 군보다 대단한 사람이 곧ㅡ'
하하. 웃기지도 않아.
'그러니까 포기하는 것 만큼은 죽어도 싫어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나타났다. 네가 데려왔다. 심지에 불을 붙일 사람. 나보다도 훨씬 큰 그림자를 가진 빛을 데려왔다.
어떠한 전조도 없이, 패배라는 이름으로 나의 전국대회가 그렇게 끝장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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