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D

늦은 인사






"모쿠바는 그 녀석이 밉지도 않아?"



노아의 볼멘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원래라면 형과 동갑인 노아이지만 지금처럼 당장이라도 불만을 쏟아 낼 것 같은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가끔 모쿠바 마저도 자신과 동갑이 아닐까- 하고 착각 할 정도였다.


이름은 말 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그 녀석, 이라는 건 오직 한 사람을 의미한다. 노아에게는 가끔씩 정강이를 걷어차주고 싶은 상대이자, 모쿠바에겐 그걸 말릴 수 밖에 없는 상대이다. 



"오늘도 하루 종일 혼자 내버려 뒀잖아. 이제 곧 자정이 지나는데."



잠시 흘끗 바라본 시계는 분명 노아 말 대로 열한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칠월 칠일, 생일을 맞이하기가 무섭게 쏟아진 친구들의 문자나 카이바 코퍼레이션의 축하 인사는 셀 수 없이 많았고 그 중 가장 굉장한 일을 저지른 사람이 바로 노아였다. 끝을 모르게 실려오는 산더미 같은 선물 공세에 한바탕 진땀을 흘리며 일일히 열어보고 감상을 전해주지 않으면 걱정하거나 토라질 모습이 눈에 선했기에 모쿠바는 노아의 옆에 딱 붙어서 거의 하루 종일 함께 놀았다. 

분명 곤란함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생일 내내 하루종일 함께 지내며 자신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노아가 준비 해 온 걸 지켜보는건 모쿠바에게도 행복한 일이었다. 물론 거의 하루종일 모쿠바를 독차지하다 시피 해서인지 평소보다 노아의 기분 또한 좋아보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전혀 꺼내지도 않았던 카이바를 언급하다니. 변덕 하나는 아마 카이바 형제중 최고인 게 분명했다.




"밉지 않아. 형님은 바쁘잖아."

"너무 괜찮은 척 할 필욘 없는데."

"괜찮은 척이 아니야. 정말인걸."



모쿠바는 카이바 세토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알고 있다. 그렇다곤 해도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세토와는 다르다. 자신의 기분을 절제하지 않고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알기에 방금 한 말이 진심인 걸 노아는 알고 있었다. 모쿠바는 사실 섭섭하지만 그걸 감추고 있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섭섭하지 않고 괜찮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 열받는단 말야. 노아는 시선을 훽 돌리며 툴툴댔다.



"하여간 모쿠바는 세토한테 너무 약하다니까."




*




카이바가 돌아온 시각은 예상대로 새벽 세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어제는 아마도 미국이었고, 그 다음은 홍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시차차이를 빌미로 눈을 붙이지 않았을 건 뻔했기에 모쿠바는 카이바를 맞이하기가 무섭게 형님을 욕실로 밀어넣었다. 

목욕가운 차림으로 나온 카이바는 남들은 몰라 보더라도 모쿠바에게는 조금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늘도 고생했어 형님. 남은 일은 나중에 해도 괜찮잖아? 이제 좀 쉬라구."

"그러마."



의외로 순순히 끄덕이는 형님을 보고 모쿠바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모쿠바는 하려고 했던 보고를 나중으로 미루고 카이바의 짐에서 서류를 찾은 후 비서에게 건냈다. 잘자라구 형님. 내일 봐. 가벼운 인사와 함께 내일을 약속하는 인사를 입에 올렸다.



"모쿠바."

"응 형님."

"늦어졌지만 생일 축하한다."



자정은 이미 넘은 시각. 칠월 팔일, 다른 날짜가 되어버렸다. 늦은 생일 축하에 조금은 머뭇거릴만도 했지만 카이바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모쿠바에게만은 조금은 누그러진 상냥한 목소리였다. 끓어 넘치지도 않고 차갑게 내리 깐 것도 아닌 카이바의 목소리와 작은 미소를 띄운 채 가만히 응시하는 시선 끝에서 모쿠바는 노아의 볼멘 목소리를 기억해냈다. 모쿠바는 그 녀석이 밉지도 않아?



"고마워 형님. 그 말만으로도 기쁘다니깐!"



미울 리가 없어. 

날짜가 지나고, 선물 같은 게 없어도 괜찮아. 서로를 위할 수 있는 마음 하나만으로 언제나 충분했다. 그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야. 

언제나 아주 작은 한 마디 만으로도 충분했다. 활짝 웃는 것 만으로도 형님이 안심한다면 언제까지든 웃을 수 있을 거야. 나도 그러니까. 


모쿠바는 멋쩍은 감사인사를 듣자마자 피식 웃으며 자신의 머리를 흐트러트리는 카이바의 손길을 막느라 한참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사고 싶은 게 있다면 뭐든 사도 좋다던가, 뭣하면 회사를 사도 된다는 지극히 사장다운 말도 있었다. 그게 뭐야- 라고 웃어버리기도 전에 이번엔 노아가 또 멋대로 이것저것 사와서 귀찮을텐데 죄다 버려 버리라는 심술궂은 말들이 쏟아져 내렸다. 아주 짧은 순간, 채 오분도 안되는 시간이지만 여타의 형제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광경을 직접 본 건 아마도 이소노 정도 일 것이다.


작은 소란은 금새 끝났다.  모쿠바는 카이바를 침대에 밀어넣고 방의 불을 껐다. 잘자 형님. 그래.


아마도 형은 눕지 않고 또다시 전자기기를 만지다가 잠이 들겠지. 하지만 모쿠바는 모른 척 해주자고 마음 먹었다. 세토에겐 너무 약하다며 투덜거리던 노아가 생각했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카이바와 모쿠바를 관찰하고 있는 노아니까, 어쩌면 노아의 판단이 맞을 지도 모른다. 모쿠바는 키득키득 웃으며 카이바의 방을 뒤로 했다. 


카이바의 방문이 닫히며 찰칵 하는 소리가 났고, 모쿠바는 그제서야 길었던 자신의 생일이 정말로 끝난 것 같단 기분이 들었다.





'2D'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