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06/01 업로드 날짜 기준으로 한국에는 아직 개봉하지 않은 유희왕 극장판의 네타가 있습니다.
디바는 사랑하는 누이의 손을 잡고 사막을 걸었다. 두 사람을 먹어치울 것 만 같은 어두운 사막이었다. 보이는 지평선마다 모래로 가득 찬 어두운 사막에서 두 사람은 금세 길을 잃고 말았다. 그래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디로든 향해야만 했다.
*
- 디바, 어쩔 생각이야?
- …….
디바는 어색하게 도미노 고등학교의 가쿠란 옷깃을 두어 번 매만졌다. 그 행동이 대답을 대신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멋쩍어서 하고 있는 행동인건 분명했다. 그러나 세라의 시선은 그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 세라.
- 그래선 안 돼.
- 세라. 괜찮을 거야. 신님의 말씀을 잊은 적은 없어.
그 말이 거짓말인 건 플라나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플라나의 집합의지는 모두와 마음을 동조한다. 디바의 마음이 어떤 파동을 가지고 모두의 마음을 울리고 있는 지 세라는 알고 있었다. ‘이래선 안 돼.’ ‘하지만 잊을 순 없어.’ ‘용서 할 수 없어.’ ‘녀석은 거기에 있어.’ ‘내가 가겠어.’ ‘우리가 함께 할 거야.’ ‘가선 안 돼.’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어.’ ‘잊어야 해.’ ‘잊지 않아.’ ‘증오해선 안 돼.’ ‘하지만ㅡ잊을 수가 없어.’
마음이 울리는 동안 세라와 디바는 서로를 응시했다. 세라는 디바의 눈동자에서 슬픔을 읽었다. 두 사람은 분명 같은 슬픔을 겪었지만 어디서부터 혈육의 증오가 깊어지고 말았는지 도저히 알 방도가 없었다. 그의 슬픔과 증오의 연쇄를 끊고 싶었지만 세라가 다가 갈수록 디바는 조용히 웃기만 할 뿐 증오의 칼날을 더 깊이 숨겼다. 칼날 끝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를 막을 힘이 세라에겐 없었다.
- 다녀올게 세라.
- 오빠!
눈을 한 번 깜빡이기도 전에 디바의 모습은 흐릿한 잔영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디바와 뜻을 함께하는 영혼들이 사라졌다. 도미노 시티, 그가 가장 증오하는 인물이 살아있는 장소로 의식이 집결된다. 곧 마음의 파동이 커져갔다. 먼 곳에서 울려오는 소리다.
‘찾았어.’ ‘여기 있어.’ ‘살아있어.’ ‘놓치지 않을 거야.’ ‘잊지 않을거야.’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반드시 찾아낼 거야.’ ‘네가 잊더라도.’ ‘먼 날의 기억을 잊었더라도.’ ‘너를 잊지 않아.’
‘네가 한 짓을 잊을 순 없어.’
커져가는 파동의 소리를 들으며 세라는 입을 앙다물었다.
오누이는 너무 먼 곳에 와 있었다. 그리고 디바는 어릴 적의 오빠가 아니었다. 배고프고 지친 몸으로도 세상을 미워할줄 모르던 오빠가 아니다. 다시는 증오와 망설임, 두려움을 모르던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세라는 그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불안함이 차오르는 마음을 어찌 할 바 모르다가 세라는 조용히 기도했다.
부디 오빠를 인도해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샤디님.
*
밤하늘에서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들이 두 사람을 감싸주었던 밤에 디바는 증오와 망설임, 두려움을 알았다. 얄궂게도 그들에게 가장 소중해질 사람이 찾아왔던 날과 똑같은 밤이었다.
천년링을 걸고 잔인하게 웃으며 떠나간 소년을 떠올릴 때 마다 이집트의 밤하늘은 잔인할 정도로 밝고 별들이 가득했다. 별들의 숫자를 세며 우울함과 절망감도 잊었던 예전과는 달랐다. 이제 디바는 아무것도 잊을 수 없었다. 그 웃음소리도, 악몽처럼 잔인한 밤에 일어났던 구원자의 최후도 잊지 않을 것이다.
세상 온 하늘의 별을 끌어 모은 것 같은 찬란한 밤이 있었다. 한 때는 상냥했던 밤이었다.
샤디님은 저 별에서 저 별을 걸으시는군요? 차원을 이동해서, 우릴 인도 해 주실 거죠? 자상한 눈빛과 조용한 긍정이 마냥 기뻤다. 세라와, 마니와, 모든 플라나와 함께 그렸던 미래. 신님이 함께 있기에 두려울 것도 증오스러웠던 것도 없던 빛나던 미래는, 이제 가루가 되어 저 밤 하늘에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별처럼 흩뿌려졌을 뿐이다. 그 것이 주린 배를 부여잡고 힘없는 발걸음을 이어가던 날보다도 절망스러웠다. 너무 많은 별이, 너무 많은 절망이 그를 비참하게 했다.
디바는 간신히 눈물을 참았다. 울고 싶은 마음은 같았지만 그에게는 누이가 있었다. 신님을 잃은 채 어찌 할 바 모르는 사랑하는 동생이. 자신까지 울 수는 없었다. 신님의 말씀을 잊어서도 안된다. 그러니 이 절망은 숨겨두자. 하지만 잊지는 못할 테지. 디바는 세라의 손을 결코 놓지 않도록 꼭 쥔 채 그저 걷고 또 걸었다. 밝은 밤만이 두 사람의 발밑을 살펴주었다. 디바에게는 앞으로도 수 백 번은 참고 견뎌야 할 잔인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