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 곁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 했을 적에, 딱히 할 필요가 없던 말이 있었다.
‘너를 좋아한다. 까미유.’
목울대가 움직이며 하는 말은 오직 너를 위한 말이다. 까미유. 나는 너를 좋아한다. 내뱉으면 별 것 아닌 말에 지나지 않는데도 누군가에게는 그 말이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나는 너를 좋아해. 데샹.
‘그래.’
그리고 너는 여느 때처럼 웃기만 한다. 몇 번 문지르면 그대로 말라비틀어질 것처럼 엷은 웃음이다. 금세 깨지고 흔적도 없어질 엷은 웃음을 내세우곤 너는 나의 감정을 흘려보낸다. 너는 나의 제일가는 친구야. 그렇게 말하던 시절의 웃음과 참 닮은 모습이었다.
‘네가 무서워.’
저도 모르게 말라오는 입으로 침을 삼겼다. 너는 다정하고 영리하고 착했다. 푸른빛을 내며 상처 부위를 뒤덮던 초록벌레들 사이에 서 있던 모습이 가장 아름다워 보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거짓말처럼 너의 이면이 무서웠다.
‘그래.’
또다시 엷은 웃음. 네 반응은 그게 끝이었다.
‘널 이해 할 수 없어.’
하지만 너를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야. 그러니 말 해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그 실험으로 네가 원했던 건 무엇이었지? 어그러진 관계의 시발점에는 언제나 너와 내가 함께 서 있다.
사실은 너를 무서워했던 내가 잘못이었던 건가, 그런 생각들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와중에도 너의 눈치를 살폈다. 누군가를 죽게 만든 실험에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던 그 눈을 들여다본다. 그럼에도 네 대답은, 네 눈빛은.
‘그래.’
여전히 아무 것도 읽을 수 없는 눈이었다. 너를 좋아하고, 네가 무섭고, 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친구를 향해 계속 웃고 있는 얼굴을 보며 이젠 알겠다. 결국 너에게 내 감정 따위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네가 미워.’
읊조리는 목소리조차 허탈감에 잠겼다. 너와 내게 있었던 일을 제쳐두고서라도 이제는 이탈리아의 뒷골목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던 시절과는 너무 멀어져 버렸다. 관계의 단절. ‘파탄’을 인정하는 말이었다. 심장을 부여잡고 끓는 피와 함께 불멸의 육체를 가진 지금조차 무엇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는 너이건만. 나는 조금도 흔들지 못하는구나. 네가 나의 무엇 이길래. 나는 네 무엇 이길래, 이제는 네가 밉기까지 한지.
‘안타까워 히카르도. 정말 미안해. 모든 잘못은 내게 있어.’
마냥 긍정하던 대답 대신 돌아온 말은 안타까움을 담은 상냥한 어조였다.
마치 공들인 유리세공을 조심스레 내비치듯, 눈치를 살피며. 하지만 그 시선이 살피는 곳조차 내 앞이 아니었다. 네 눈에는 이미 내가 닿아있지 않았다.
네 앞에 놓여있는 존재란 어둠 속에서 가장 고요하게 빛나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도 나는 없었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염동력의 능력자와 식물을 자라나게 하는 아름다운 생명력의 능력을 지닌 이들을 향해 너는 보여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언제든지 내게 연락 해 줘. 너의 용서를 구할게.’
무엇을 사죄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조차도 모르니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를 보고 있지 않은 데샹의 나를 위한 척하는 아무 의미 없는 그 말이란, 끝까지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네가 나를 찾은 적은 한 번도 없었잖아.
“이젠 너를 증오해. 데샹.”
네가 가장 좋아하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중얼거리는 혼잣말이었다. 대답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혼자가 되었다. 네가 곁에 있던 것이 거짓말 같이 느껴질 정도의 고요함 속에서 벌레 날개짓 소리만이 귓가에 남았을 뿐이었다.
결국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네가 처음부터 내 곁에 없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