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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

귀천




“세상 모든 것들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어.”



불이 붙은 부적은 조용히 타올랐다. 희뿌연 연기와 함께 검은 재들이 허공을 날렸다. 



“심지어 사람이 아닌 작은 미물조차 언젠가는 그 곳으로 한 줌의 미련도 없이 사라져. 구천을 떠도는 경우도 거의 없어. 모두 하늘을 통해서 제 갈 길을 가지. 그러니까….”



이젠 괜찮을 거야, 그렇게 말 하려 했건만. 평소와 다름없이 무정한 시선으로 이쪽을 응시하는 티엔을 보고 왠지 모를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잡귀에 가까운 지박령을 없애달라는 임무 따위 원래라면 받아들이지도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여기서 부적을 태운 건 그가 나를 시험해보고자 하는 의미가 있단 걸 알아서다. 

언짢음을 일부러 내비치며 ‘더 이상 이딴 일엔 날 끌어들이지 마.’ 라고 짧게 내뱉었다. 뭐 티엔이라면 알아서 들었겠지. 뭐라고 더 주절거리는 것도 성격에 영 안 맞는다. 뒤통수를 몇 번 긁적이고 습관적으로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대화는 끝이다.


정수리를 스치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아항. 이놈들. 자기 땅에서 쫓아냈다고 원망 할 줄 알았더니 웬걸. 간만에 맛본 자유로움이 퍽 마음에 들었나보다. 사람한테 장난을 치다니 겁도 없는 놈들이다. 곧 제 갈 길을 갈 혼이라 이렇게 간 덩어리가 부은 건가. 


짜증내던 게 언제였냐는 듯 혼자 히죽거리는 내가 퍽 이상했나보지. 티엔은 묘하다는 눈초리로 사람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금세 정색했지만, 곧 머리카락과 정수리를 훑고 지나가는 ‘지박령이었던 것’들의 손길에 다시 웃어버렸다.



“운도 좋은 놈들이야.”

“뭐가 말이냐.”

“저 놈들. 사람보다 낫잖아? 제 몸 하나 돌아 갈 곳이 있다는 게. 나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



잠깐이나마 내 머릿속에서 작은 신당과 초가집이 떠올랐다. 

그 곳을 떠나던 날 나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마중하던 아버지에게 일부러 짧게 끊어 대답했지만 잊을 리 없다. 오히려 기억에는 계속 남아있다. 하지만 그 곳은 이제 내가 돌아갈 곳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힘을 손에 넣으면, 나는 어떻게 하고 싶었지?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을 리는 없다.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나를 인정하는 곳. 알아주는 사람이 있는 곳이어야겠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게 있을 리 없지. 

티엔의 입이 떨어진 건 그때였다.



“내게로 와라.”

“…….”



하랑, 하랑아. 그렇게 이름을 부르던 크고 작은 령들은 내게 오거나 사라져버렸다. 모두 각자가 있어야 할 자리로 사라졌다. 하지만 기괴한 영 말고도 내게 다가온 사람도 있었다. 

티엔 정. 이름 속에 하늘을 담아 놓은 자. 



“싫어.”

“…….”

“말 했잖아. 하늘은 그냥 통하는 길 일 뿐이라고. 돌아 갈 곳은 아니야.”

“그렇다면 어디로 가려고?”

“모르지. 그건 나도 몰라. 하지만 뒤로 가진 않을 거야.”



초가집과 낡은 신당을 뒤로 하자 난생 처음인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번뜩이는 태도와 하늘을 휘젓는 돌풍, 아름다운 반딧불과 그림자와 한 몸이 된 박쥐들. 수많은 능력자들이 만든 그림 액자 속 세계에서 걸음을 누비고 있으면, 폭풍우를 만난 선박이 된 기분이었다. 

가고 싶은 곳,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에든 널려있다. 그러니 예전으론 돌아갈 수 없겠지. 남은 건 앞 길 뿐이다.



“앞에서 널 기다리마. 언제든.”

“…마음 넓은 척 하지 마. 사실은 티엔이 가장 날 개인적으로 이용 할 생각이면서.”

“부정은 하지 않으마. 하지만 네가 원하는 힘을 반드시 주마.”

“당신이 줘봤자 의미가 없어. 내가 찾아야 하는 거니까.”



시시껄렁한 이야기나 하게 되는 걸 보니 일진이 영 사나운 모양이다. 팥…은 구하기 힘들 텐데. 소금이나 한바탕 뿌려야 하나. 제법 성큼성큼 걸었는데도 넌지시 던져진 티엔의 말에 다시금 발이 멈춘다.



“하랑. 내게는 언제든 돌아 오거라.”

“……당신 진짜, 사람 짜증나게 한다니까.”



절대 안 가. 다짐에 가까운 말은 혹여 입 밖으로 냈다가 지키지 못하게 될까 싶어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티엔에게 돌아가라고? 자기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내 능력을 찾아주겠다고 결심한 사람에게 돌아가서 내가 얻는게 뭔데? 

나는 티엔과 함께 찾아온 길을 이젠 혼자 걷기 시작했다. 다행인지 뒤따라오는 발걸음은 없었기에 맘껏 코웃음을 칠 수 있었다. 어차피 당신이 내게 쏟는 성의란 결국 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증거처럼 느껴졌으니까. 돌아오라는 말을 그렇게 속 편하게 내뱉지 마.



“…미운 정 든다고.”



마틴이라도 있었다면 내가 퍽 부루퉁한 표정이라고 넌지시 알려주었겠지. 그런 점에선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삼십분 후. 그랑플람 재단 본부 앞에서 나보다 먼저 도착한 티엔을 발견 했을 땐, 역시 나라도 할 말이 없었다. 태연하게 늦었다는 소리나 지껄이는 게 저 멀끔한 얼굴이냔 말이지.



“늦었구나. 역시 혼자서는 제 앞길 찾기도 힘들겠지.”

“아니거든! 잘 찾아서 왔거든!”

“어딜 가고 말 것도 없이, 객사 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사람 말 좀 들어라!!!”

“갈 길이 멀구나. 오늘은 수련이다. 가부좌부터 시작하지.”

“악! 사부! 제발!”


새된 비명에도 불구하고 인정사정 없는 티엔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건 절대 쉬운일이 아니었다. 퍽 무심하기 짝이 없는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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