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제 소원을 말할게요. 제 소원은 타카히사 선배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조디아츠' 만큼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첫 번째 소원이에요."
잠깐의 간격. 그 사이의 침묵. 한참 있다가 내 입에서 나온 '뭐?' 라는 반응은 실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올시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너무 충격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단어가 그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오렌지 쥬스 하나를 놓고 녀석과 마주보고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은 남의 마음도 모르고 부산스럽다. 방학 중이니 나 같은 학생들도 많은 편이고, 심야도 아닌 한낮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 원래라면 이런 곳을 이 시간에, 그것도 사내놈과 단 둘이 마주 앉아 있는 일은 없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황당하다는 듯 눈썹을 치켜뜬 이유는 꽤 간단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뜬금없이 슈지가 '용건'을 앞세우며 나를 불러냈기 때문이다.
용건이라고 하는 게 뭔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으니 별 수 있나. 일단은 지갑에 핸드폰 하나 들고 집을 나섰지만 오는 내내 어딘가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일련의 돌발적인 사건 이후 나는 이 녀석에게 거리를 두었다, 라고 표현해도 틀린 건 아니다. 사실 그 거리는 지금도 여전하다. 나뿐만이 아니라 녀석도 겉돌기 시작했으니까.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 하나 없는 내가 타인과의 거리를 잰 다음 파악하는 날이 오다니. 형이 안다면 놀랄 노자겠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아. 어쨌거나 슈지의 기습적인 행동은 날 당황시키기 충분하니까.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거리'가 생긴 후 이렇게 둘이서 얼굴을 마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 입에서 나온 말은 날 당황시켰다. ㅡ전화는 물론이고, 이렇게 대면하고 있어도 사람을 들었다 놓고 앉았다.
"조디아츠가 안 됐으면 좋겠다고? …너 그게 진짜 소원이야?"
"…네."
차라리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빈다면 덜 어이없었겠지. 순간이지만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처럼 밀려왔지만, 그런 건 전부 다 치워놓고ㅡ 아까부터 내내 거슬리던 걸 제일 먼저 입 밖에 냈다.
"내 눈 똑바로 보고 다시 말해 너."
"…선배는 같은 말을 두 번 하는 걸 싫어 하셨을 텐데요."
"내가 하는 게 싫은 거지. 말대답은 꼬박이다 너. 정말로 그게 네 소원이라고?"
"ㅡ그래요.."
가만히 음료 담긴 잔을 쥔 채 시선을 내리 깔았던 것이 거짓말 같다. 약을 먹으면 '멍'해진다던 녀석과 동일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찌르는 듯한 눈빛이 정면으로 내리꽂혔다. 애초에 시시한 농담을 하는 녀석이 아니니까 이런 데서 헛소리를 하진 않을 거란 사실쯤은 알고 있어. 다만, 그래서 더더욱 힘이 빠졌다.
"사람을 불러놓고 무슨 소릴 하나 했더니…."
솟구칠 뻔한 화를 퍼부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지만, 꽤 기적같이 참아 낸 것 같다. 다혈질인 나 치고는 상당히 잘한 짓인 거겠지.
확신 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거나 어색해진 후배에게 대뜸 화부터 내는 것도 좀 그러니까.
깊은 한숨. 그리고 뒤늦게 다시 몰려오는 짜증을 억누르며, 나는 볼멘 목소리를 냈다.
"너 진짜 가끔 보면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너무 잘 해서 문제야."
"어처구니없는 소리인가요? 타카히사 선배도 아시잖아요. 호시노 부장이 조디아츠ㅡ"
"관 둬. 그거하고 이건 다르잖아! 애초에 조디아츠니 뭐니, 되고 싶다고 해서 맘대로 될 수 있는 거라 생각 하냐!"
아. 결국 화내버린다. 울컥하고 밀려온 감정은 이 얌전한 후배 녀석이 눈을 똑바로 뜨고 뭐라 더 말하려 들었기 때문이니 어쩔 수 없어. 자신을 설득함과 동시에 몰려오는 작은 혐오감에 이마를 부여잡았다.
평소라면 어디 할 말 다 해보라고 내버려 뒀을 텐데, 단숨에 말을 잘라버린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해졌나.
"의외로 간단할지도 몰라요. 조디아츠가 되는 법."
"까고 앉았다. 너 말이야. 안 그래도 요즘 병든 닭 같이 굴고 있길래 신경 쓰였는데 하는 말이 고작…하."
"병든 닭……신경 써 주고 계셨나요?"
"그럼 무시하고 있겠냐."
볼 때 마다 흙빛으로 변해가는 안색을 보면 누구나 신경 쓰게 될 걸. 단합여행 이후에 얼굴 좀 안 본 사이에 뭔가 더 눈 밑이 새까매진 건 기분 탓이 아닌 것 같고. 왜 이런 데서는 그 좋은 눈치를 발휘 못하는 거지.
슈지는 눈을 끔뻑거리고 있었다. 와 정말 열 받게 하는 놈이네. 합숙 때도, 방 안에나 처박혀 있을 것 같길래 일부러 이곳저곳 데리고 가고 놀아줬더니만 하는 소리가 '신경 써 주고 계셨나요?' 확 뭍어버려야 정신을 차리려나. 머쓱하게 웃고 있는 걸 보니 더 화내기는 민망하니까, 진짜 내가 열 받지만 참아준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차오르는 와중에 또 하나 불쑥 든 의문이 스쳤다.
"게다가 나머지 소원은 문자 전송이라니 뭐야 그거. 내 얼굴 안 보고 살 생각이고?"
"그런 의미는 아니에요."
묘하게 철두철미하다는 점이 이 녀석답다면 다운 점이지만 어쨌거나 지금 같은 경우에는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는 말이 적합하지 않을까.
뭐 원론적으로 따지고 들어간다면 소원이라도 들어줄까, 그렇게 말 했던 내 잘못이 되지만 그래도 조디아츠라니. 밑도 끝도 없잖아. 진짜 요상한 녀석 같으니.
실컷 투덜거린 다음 음료를 단번에 비웠다. 타박 주는 내 태도가 고쳐지지 않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지만 오늘은 유독 심해지는 것 같은데, 그건 사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어색함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러는 걸지도 모른다. 한심해졌구나 하뉴 타카히사ㅡ 그렇게 자조하던 것도 잠시였다.
"그래서 대답은요?"
"…대답까지 필요 한 거냐 그런 게?"
"저에게는 중요한 거 에요 타카히사 선배."
그렇겠지. 그러니까 이 서먹한 분위기와 타이밍을 전부 감수하고 사람을 불러 낸 걸 테고.
조금 답답한 심정이 목까지 치밀어 올랐다가 빠져나간다. 그런 실없는 소리를 할 시간에 좀 더 신경 써야 할 게 있지 않냐는 말을 하려 했는데…. 사내놈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가는 손목, 눈 밑의 다크서클과 침침한 안색이 눈에 띈다.
"그런 대답 뻔한 걸 굳이 대답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면?"
"선배는 '그래'라고만 대답 해 주시면 되요."
"이 놈 봐라."
"그렇게 말해주세요."
지는 소리는 하나도 안하고 말대답은 꼬박. 거기에 대답까지 정해놓고 고집부리는 꼴이라니. 별로 오래 사귄 사이는 아니라지만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조디아츠와 관련된 기억이 지워졌던 호시노에 대한 의문이나, 영문 모르게 라이더부를 공격 해 오는 이형의 괴물에 대한 흥미. 그런 것에 남다르게 반응하며 파고들었던 녀석이다. 내가 모르는 걸 알 수도 있는 거고, 뭐…나쁜 의도로 신경 쓰는 건 아닐 테다. 뭔가 길게 이야기를 더 끌어가기엔, 내 부족한 대화실력을 새삼 통감하고 말았기에 나는 못내 끄덕였다.
"네 말대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다가…스위치라는 이 물건, 나로서는 영 신뢰가 안가니까 네 소원 쯤이야 어렵잖게 이뤄줄 수 있어. 조디아츠 같은 거, 코앞에서 스위치를 내밀어줘도 던지고 말지. 될 생각 따위 추호도 없어."
"그런가요.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다만, 슈지."
조금은 네가 가깝게 느껴지다가도 언제나 우리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나’ 이외의 사람은 모두가 다른 사람. 그러니까 언제든 헤어지는 것이 당연할 그런 관계.
어쩌다가 이상한 소원을 들고 왔지만 나야 이루어달라고 하는 것을 들어주면 그걸로 끝.
조금 특이한 후배. 내게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얽힐 일이 없다면 뒤 돌아서서 제 갈 길을 걸어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타인과의 올바른 관계라고.
그렇게 생각해버린 어떤 여름날의 웃어버릴 생각을 나는 언젠가 깊이 후회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조디아츠니 뭐니 그런 거에 신경 쓸 시간에 좀 더…."
"「남이 걱정하지 않을만한 방식으로」 신경 쓰란거죠? …선배가 걱정 하실만한 일은 없을 거에요."
"…그래. 그렇겠지."
ㅡ후회 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슈지의 웃는 얼굴을 보고 나는 감흥 없는 표정으로 끄덕인 후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불길한 예감 따위는 들 이유도 없는 것이고, 후회 할 것 같다는 예감은 틀릴 것이 분명하다며. 그렇게 웃어버릴 생각들을 해버리고 만 여름방학의 어떤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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