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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소원을

선향 #13 혼자와 모두의 경계선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선향 불꽃은 매년 내가 하던 연례행사 같은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혼자 할 것. 


사소하지만, 매년 지켜진 조건이었다. 오늘까지는 그랬다. 혼자서 해변가에서 조용히 태울 생각이었는데, 왜 타인의 앞에서 라이터를 꺼내고 만 건지. '그러고 싶었으니까.' 라는 이유로 내 자신에게 대답을 들려줬지만 실은 알고 있어. 생각보다 나 답지 않은 대답이라 모를 리가 없어.



언제였던가. 형과 함께 불꽃놀이를 보러 간 약속이 당일 캔슬 된 날이었을 거다. 유카타 차림으로 돌아오는 길에 건물 사이사이로 보인 잘려나간 형태의 불꽃들을 참 볼품 없었다. 그 날 이후 누군가와 함께 불꽃놀이를 본다, 라는 걸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다만 선향 불꽃만은 달랐다. 선향 불꽃 하나를 들고 정원에 앉아있으면 형은 가끔씩 훌쩍 내 옆에 들러서 함께 불꽃을 태웠다. 형이 다가와준다는 건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나만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남이 다가 오면 불편함을 느끼는 주제에 여름날이 되면 때때로 선향 불꽃을 하나씩 사서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혼자 새긴 여름의 추억들. 


마루에 앉아서 풍경소리를 듣거나, 유카타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거나, 목으로 넘어가는 술의 깔끔한 뒷맛을 음미. 그리고 가만히 타서 사라지는 선향 불꽃을 혼자 지켜보던 추억들이 내 안에 아주 깊게 새겨져서 더 이상 그 이상의 자국을 남기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신기하기도 하지.




- 와서 즐겁게 보냈어?




인정하는 게 싫어서 대답을 망설였다. 이 순간을 즐겁다고 인정하는 순간 소중해 지겠지. 여태까지 내가 다뤄본 적 없어서 곤란해질, 뜨거운 감자처럼 몇 번이나 손에서 굴려야 할 그럴 무언가가 될 거야. 그래서 인정할 여유는 아직 없었다. 작고 초라하며 생각 많은 인간의 얕은 바닥이 보이는 순간이다. 즐거웠어.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은 너무 낯설고 낯간지러워서, 멋쩍은 만큼 멀게 느끼고 만다. 


'단계란 단어는 '계단'과 문자배열이 하나 바뀌었을 뿐이니까 실은 꽤나 밀접한 관계이다. 하뉴 타카히사에게 있어서 '혼자만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단계'란 어쩌면 '여태까지의 자신과는 헤어지는 계단'을 의미한다.

나는 아직 계단을 오를 준비가 되지 않았어. 그러니까 대답 할 수 없어.




- 그럼 오길 잘했네.




하지만 남에게 하는 말 속에서 답은 나와버렸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순간이었다.


선향 불꽃을 모두 나누어주고 빈손이 되자 깨달았다.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여름이 추억에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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