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내게 물었다.
"타카히사. 간만에 한 잔 하자."
"……안주는?"
"꼬치구이."
"데운 술?"
"응. 아버지가 안 오신다네."
"……두 병만 비우자 그럼."
나는 그러마, 라고 답했다.
*
내 형은 술이 들어가면 말이 많아진다.
"…그래서 요즘 친구는 많이 생겼냐."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약간은 들뜬 기분으로 주절주절 말 하는걸 좋아한다고 해야 하나.
취한 건 아닌데, 평소라면 내가 싫어 할 걸 뻔히 아는 질문들을 빈번히 던진다.
"나한테 그런 게 가능 하겠냐."
그리고 나는, 조금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툇마루에 앉아서 달빛이 내리쬐는 정원을 보는 기분은 제법 괜찮다. 술은 따뜻하게 데운 술. 안주는 제법 좋은 재료를 썼는지 육즙이 새어나오는 닭고기와 야채, 곤약과 떡이 사이사이 배치 된 꼬치구이. 유카타 사이로 들어오는 시원한 여름 밤바람. 정원에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
그런 것들은 형과 술을 마시는 동안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그래서 꽤 좋아한다.
형이 술을 마시자고내게 권했을 때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음. 왤까. 너 입도 더럽고 가끔 자기 전에 귀찮다고 머리 안 감는 것만 빼면 나름 괜찮은 앤데."
"죽을래. 꼬박꼬박 씻거든. 그리고 형한테만 그런 거야. 포기 해. 안 바뀐다고 이런 건."
아마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내 형이라면 조금은 더 편하게 이야기를 걸고 나눌 수 있겠지만.
아직도 나에게 있어서 타인과의 관계는 멀기만 하다.
"내가 아무리 평생 너 끼고 살 각오가 됐다고 해도 말야… 친구 하나 쯤은 만들어 두지."
"그 각오는 나한테 안됐다…결혼 안 해?"
"해야지. 이 집안에 들어 올 여자가 있으면."
"그냥 다시 태어나는걸 추천할게."
"고맙다 이 새끼야."
형은 꼬치구이를 입 안으로 우겨 넣는다. 내게 일부러 져주는 모습이 웃겨서 피식 웃다가 잔으로 손을 뻗는다.
형은 따뜻한 물에서 술병을 꺼내더니 내 잔을 채워주었다.
"왜일까."
"……."
"아버지도 나도 어머니도 주변에 툭 터놓는 상대가 많은 건 아니지만 너처럼 외롭진 않을텐데."
"나 별로 안 외로워."
"그야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까 외롭다는 것도 모르지."
"외로운 게 뭔데?"
"혼자 있는 게 싫어지는 일."
"그런 날은 안 와."
잔을 비운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고. 그것 뿐이야."
내 말이 끝나자 형은 자지러지게 웃었다. 한 손을 툇마루에 짚은 채 한 손은 이마를 감싸쥐고 있다. 무엇이 그리 웃긴지 신나게 배를 잡다가, 간신히 진정 되었다 싶으니 이번에는 잔을 들어선 몇 번 빙빙 돌린다. 잔에서는 따뜻한 김이 올라왔다.
"너의 그 흑백논리에는 진짜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칭찬 고마워."
"타카히사."
형은 단번에 잔을 비웠다.
나는 술을 꺼내기 위해 뜨거운 물에 손을 넣었다. 이젠 뜨겁진 않지만 점차 식어가는지 따뜻해진 물이었다.
"세상의 모든 관계가 그럴 순 없어.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그런 흑백논리로 나눌 수 없는 게 있거든."
"…어째서?"
"넌 타인과의 관계가 타산적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까."
"……."
"평생 모은 돈을 학생들의 학비로 기부하는 할머니와 생판 모르는 다른 사람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철로에 뛰어 드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타산적인 이해관계를 위해서 행동 한다고 생각해?"
"…………."
"시야 좀 넓혀라 타카히사."
형과 나는 사이좋게 서로의 잔을 채워주었다. 하지만 대화는 없다.
꼬치구이 막대를 이빨 끝으로 짓이기는 동안 우리의 침묵을 채워 준 것은 풀벌레 소리 뿐이었다.
"모르겠어. 난 아마…."
내가 좋아 할 수 있는 사람들.
내가 싫어 하는 사람들.
그리고 형이 언젠간 생길 거라 단언하는 '그렇게 나눌 수 없는' 사람들.
생각 할 수록 머릿 속이 미궁에 빠진다.
"난 나를 이해 해 주는 사람만을 사랑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술을 목으로 넘겼다. 목 끝에 남는 청아한 끝 맛이 평소보다 쓰게 느껴졌다.
잔을 내려놓고 힐끔 바라보자 형은 약간 벙찐 표정이었다.
"타카히사. 타카히사. 너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면 피곤하게 사는 거다."
"알아. 나도 안다니까. 근데 어쩔 수 없잖아. 내가 인상이 좋은 것 도 아니고…"
"형 말 들어."
지구상에서 내 입을 가장 빠르게 막을 수 있는 상대 앞에서는, 제아무리 주절거리려고 용을 써봐도 헛수고다.
"몰이해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시작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데? 나를 이해 못 하고 내가 이해 못 하는 사람과 앞으로 뭘 어떻게 하라고?"
"그런 상대와 어떤 관계를 쌓고 싶은지 생각한 다음 노력하라고."
하. 진짜 간단하게 말하네.
"불가능해 형."
"그러니까 너한테 친구가 안 생기는거야."
형은 쓰게 웃는다. 잔을 입에 가져다 댄 채 홀짝이는 모습을 뚱하니 바라보고 있자, 내 시선을 느꼈는지 형도 웃는다.
"알아. 힘들다는 거. 사실 나도 친구라고 해봤자 한 명 뿐이고."
"형을 이해 해 주는 사람인거야?"
"아니. 그냥 받아 들여주는 사람."
관계를 정립하는 방법은 어렵다. 좋다 싫다로 나눌 수 없는 상대를 만났을 때는 더더욱.
"흑백 논리로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냥 아무리 이해가 안 되도 받아 들이는거야. 그리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 상대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사실 의미라는 건 나중에 찾아도 충분 하거든."
장난하냐.
"다만 사람이 네 곁에 있다는 건 결코 손해가 아니니까."
"……."
"형은 네가 혼자서는 안 살면 좋겠다."
나보다 7년 더 살았던 것 뿐이면서. 진짜 애늙은이같은 말투야. 툴툴거리면서 이번에는 내 손으로 잔을 채웠다.
아. 슬슬 졸려온다.
"타카히사. 넌 앞으로도 변할테고, 그래야만 해."
"……."
"흑백 논리로 판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나타난다면 절대 놓치지 마."
나는 술병을 들어올렸다. 남은 술은 딱 한장 분량이었기에 형의 잔을 채워주고. 툇마루에 몸을 뉘였다.
시원한 나무바닥의 냉기가 조금은 기분 좋게 술기운을 억눌렀다.
"약속 못 하겠어. 그런 건. 그래도…."
"…?"
"……노력 해 볼게. 형 말이니까."
노력하는 방법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화 내지 않아 볼께. 인상 쓰지 않아 볼게. 주먹도, 발도 그렇게 모든 걸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할게. 그걸로 되는 거라면, 그게 형이 말하는 방법이라면 그렇게 해볼게.
"아냐. 그런 건 의미가 없다니까."
"……."
"조금 더 나은 관계가 되도록 노력 하겠다고 약속 하기만 하면 돼. 너를 죽일 필요는 없어."
"뭐야 그거."
"자기 전에 귀찮다고 머리 안 감는 것만 빼면 괜찮은 동생이거든. 내 동생."
"아 글쎄 감는다니깐."
형은 마구 웃었다. 그리곤 '으쌰' 라는 소리를 입으로 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담요를 가지고 온다.
"별로 안 추운데."
"베개로 쓰라고."
"…고마워."
덕분에 목 관절은 조금 편해진 느낌이다.
"타카히사."
"왜."
"친구 많이 사귀어라. 친구만 있으면, 형은 너에 대해 아무 걱정할 게 없어."
형은 남은 술을 혼자 비우기 시작했다. 나는입을 앙다문 채 계속 정원만을 바라 보았다.
하지만 곧 쌜쭉 내민 입으로 형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응' 이라고 대답 한 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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