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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소원을

외식 #09 어떤 저녁 식사






"타카히사. 미안한데 오늘은 돈 줄테니까 밖에 나가 있어."

"? 알았어."

"연락 하면 들어오고. 아, 저녁 식사도 밖에서 해결해라."




방충망이 쳐진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오후의 햇볕이 적당히 따뜻해서 낮잠자기 좋은 오후였다.


유감스럽단 표정으로 내 방에 들어온 형은, 대뜸 내게 집에서 나갈 것을 명령했다. 명색의 '집'에서 편하게 주말을 보내는 사람에게 있어선 날벼락 같은 말이다. 그러나 그 때 까지만 해도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을 뿐, 딱히 이유를 궁금해 하진 않았다. 

형이 두 장의 지폐를 지갑에서 꺼내서 내 손에 쥐여 줄 때 까지만 해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받아 본 지폐는, 확인 해 보니 천 엔 짜리도 아니고 만 엔 짜리가 두 장이다.

…순간, 뒤통수가 차가워졌다. 누군가가 뒷덜미를 잡아 끄는 느낌이 이럴까.




"……."

"백부님에 시라카와 회장님도 오신다는게, 어째 좀 판이 커졌어. 늦게까지 좀 놀다 와라."

"그건 상관 없지. 상관 없는데…."




내 형에게는 한 가지 대단한 능력이 있다.

묘한 카리스마가 있다거나, 저래 보여도 포옹력이 있다거나. 

아니, 하지만 내 뒷덜미를 잡아 끄는 이 묘한 기분은 그런 능력에서 오는 게 아니다.


미안하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은데, 뭔가를 묘하게 즐기고 있다는 저 웃음. 

문득 불길한 예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럼 적당히 만화카페에서 시간이나 죽일테니까, 다 끝나면 문자…."

"무슨 소리야?"

"…."

"모처럼 형이 준 용돈이잖아. '친구들' 불러서 밥이라도 먹고 와야지, 타카히사?"







ㅡ이럴 줄 알았어.

저 망할 형 같으니라곤!












*









이제와서 새삼스레 부정 할 생각은 없다. 다만 밝혀 봤자 좋은 것도 아니고, 아니 밝힐 만한 상대조차 없는 이야기잖아 이런… 먹을 만큼 나이를 먹고 나서도 느껴본 적 없는 '우정' 이나 '친구' 에 관해서ㅡ 하고 싶은 말 따위 없다고 제기랄.


일단 내게 '친구'의 부재에 대해 십 칠년의 인생을 사는 동안 불편함을 느껴왔느냐 물어본다면 그렇지 않거든.


오히려 준 만큼 돌려줘야 하는 타인의 관계에 있어서 그 것 만큼 까다롭고 성가신 것은 없다고 생각한 게 벌써 몇 년 째인지.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덧뺄셈 같은 것이라 결국 무엇도 공짜는 없는 거고, 이해타산적인 관계라면 차라리 시작도 안 하는 게 낫다는 게 지론이다. 


하지만 미리 말 해 두는데 적당히 말을 트고 지내는 사이라는건 라이더부에 들어가기 전에도 있었다. 아무리 주먹 나가고 발이 나가는 걸 간단하게 생각한다 해도 딱히 난 성격 파탄자가 아닌 걸. 그저 거리를 재야 하는 관계란 내겐 여간 피곤 한 게 아니라서, 이해 받는 것을 포기 한 지 오래 되었을 뿐이다.  


ㅡ뭔가 자꾸 주절거리고 있는데 한 마디로 친구가 없어도 사는 데는 지장 없다고! 





"……."





정신이 아득 해 진다.

살면서 손에 잡힌 지폐 두 장이 이렇게 무거웠던 적이 있었던가. 


한 낮의 직사광선은 참 따갑기도 하지. 어딘가로 가고 싶긴 한데, 형에게 내 지갑은 압수 당한 채 등이 떠밀렸다.


지폐 두 장 만이 손에 쥐여진 채 집밖으로 내 쫓긴 정신이란 빈 말로도 빠릿하지 않다. 멍하니 편의점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하염없이 바닥만을 보고 앉았는데… 뾰족한 수가 나올 리 없지. 나와바리 미친개라 불린 형의 말을 무시 할 수도 없지만, 친구란 걸 쪄올 수도 없는 노릇이거든


당장 급한대로 주머니에 있는 동전 몇 개로 산 아이스크림이 주르륵 녹아서 바닥으로 떨어진다. 손에 남는 찐득한 감촉은 어느새 턱 끝으로 차오르려 하고 있는 더위와 함께 끝내주는 불쾌감을 선물한다.  편의점 화장실에서 손이나 씻고 가긴 가야겠는데, 문제는 대체 어디로 가란 말이냐고.


꼭 '친구와 함께' 쓰라며 건네받은 지폐를 함부로 깨서 쓰기엔, 저녁에 돌아가서 뭘 했는지 말 해보라는 형의 추궁이 꽤나 두렵다. 인정하긴 싫지만 형은 내게 있어서 꽤 절대적이랄까…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인간니까.


상하관계까지 들먹이고 싶진 않지만 까라면 까야 되는거고, '친구랑' 돈을 쓰고 오라고 하는거면 친구를 쪄오는 한이 있어도 만들어와서 '같이' 돈을 써야된다. 정말로. 중요한건 형이 강조한 '친구'와 '같이' 니까 말이야.


그래. 형의 말을 개무시를 하고 펑펑 돈을 쓰고 들어갔다간, 이쪽의 사정이 개무시 되서 쳐 맞을 게 뻔하다고. 

아무렴 턱주가리가 시큰해 질 만큼 얻어터질 일은 참아야 하지 않겠어?





"응? 타카히사 아냐?"

"…쿠로야나기?"





아니 잠깐만. 


있잖아?

쪄오지 않아도 일단은 '친구' 처럼 구는 녀석이.









*








쿠로야나기 쥰이치라는 녀석에 대해서 간략하게 평가 해 볼까. 검은 머리. 신장은 고만고만, 이라고 하면 화내려나? 어쨌든 키 자체는 평범. 다만 남자 치고는 꽤 피부가 하얀 편이라는 느낌도 들고. 호리호리한 체격 같은 걸 보고 있으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문과 계열' 이다. 부실에서 볼 때마다 거의 빠짐 없이 책을 들고 있었던 것 같은데. 핸드폰이나 보고 있는 요즘 학생들 답지 않달까. 아마 책벌레겠지. 뭐 이런 말 하면 엄청 늙은이 같이 느껴지긴 하는데 솔직한 감상인걸. 아 그치만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이거다.


ㅡ묘하게 허물 없는 태도가 인상적인 녀석.





"헤에. 너 꽤 형한테 약하구나."

"."

"휘둘리는 입장에선 난처하겠네. 확실히."





그러니까 뭘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같이 쪼그려 앉고 있는 건데. 

편의점으로 들어가려는 길이었으면 냉큼 들어가라고. 


쿠로야나기는 '허어' 라느니 '헤에' 라느니, 뭔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아이스크림 막대를 들고 있는 내 옆에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더워서 뭐라 대꾸하거나 태클 걸 힘도 없다만, 진짜 알다가도 모를 녀석일세.


왜 그렇게 부랑자 같이 편의점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냐느니, 남들이 쫄아서 들어가기 힘들잖아ㅡ 라는 대단히 편파적이고도 주관적이지만 진솔한 한 마디가 유독 뼈 아프게 들려온다. 독설까진 아니라도 빙빙 돌려말하는 타입은 아니라서 그런거 겠지. 그래도 몇 번 대화 해 봤다고, 이 녀석이 말을 빙빙 돌리는 타입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어쩌다가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어설픈 대답을 하자 오히려 웃긴다는 표정으로 던지는 시선이 자외선 만큼이나 따갑다. 그래서 솔직하게 털어놓았는데, 돌아온 반응이 '수고한다' 라….


별난 자식이야. 진짜로.





"…넌 뭐 하고 있었는데."

"응? 아 이 주변에 은근히 괜찮은 고서점이 몰려 있거든. 산책도 겸해서 돌았었지."




보란듯이 내 쪽을 향해 들어보인 낡은 종이 봉투에는 처음 보는 서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고서점 순례라. 뭐 주말이니까 뭘 하든 자유겠지만 정말 어울리게 노는고만. 옆구리에 책을 끼고 다니는게 장식은 아니겠지만 황금같은 주말에도 책이라니. 




"너 도서부였던가…."

"아니 문예부인데? 도서관을 많이 가긴 하지만, 문예부랑 도서부는 근본이 다르지."

"어느 쪽이든 얼굴에 어울리게 논다."

"칭찬인거야 뭐야."




어이 없다는 표정이지만, 악의 없는 내 말을 오해한 것 같진 않다. 아마 내가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말을 들었더라면 이 녀석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 순 없었을 거다.

가면라이더부에 별난 녀석들이 많은 거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곤 해도 쿠로야나기 쥰이치라는 녀석은, 내가 처음 자기 소개를 했을 때 부터 '타카히사' 라고 부르던 녀석이다. 무바라키도 '탓군' 인가 뭔가, 하여간 어처구니 없는 이름으로 부르긴 했지만. 


이름이란 건 부르기 위해서 지어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친한 척 부르던 녀석과의 결과가 좋게 끝났던 기억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닥 친하게 지내지 않는 녀석이 이름을 부르면 저도 모르게 눈썹을 치켜 뜨게 된다. 

다만 이 녀석은, 어쩐지 예외의 분류에 들어간다. 

…왜 그런거지?




"그래서 타카히사 넌 쪄올 생각이냐? 그 친구란 거?"




그렇게 말하며 피식피식 웃는 얼굴이 묘하게 빈정거림보다는 즐거움에 차 있어보여서, 나는 머리를 몇 번 긁다가 혀를 찼다. 

윽. 손가락 찐득거려. 





"바보냐. 쪄올 수 있는게 친구였으면 만두 찌듯 쪄서 일열로 나열 해 놨겠지."

"친구란게 그렇게 어려운 거였나."




이래서 친구 있는 놈들이란.

띠껍다는 내 표정을 오히려 이해 안 간다는 듯이 보는데, 이걸 확 한 대 때릴 수도 없고. 

관두자 관 둬. 내 힘만 빠진다.


쿠로야나기는 잠깐 내 얼굴을 가만 바라보았다. 

시선이란 신기하게도 사람의 그릇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쿠로야나기의 보랏빛 눈동자 안에서는 어떠한 빈정거리는 기색이나 도 없었다. 그저 빤히 이 쪽을 주시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고 있었다. 친구 하나 없이, 어찌 할 바 모르고 그냥 가만히 쪼그려 앉아있는 그런 꼴사나운 하뉴 타카히사를 말이야.


잠깐 기다려봐. 그 말과 함께 녀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드디어 편의점 안으로 발을 옮긴다. 목을 틀어서 녀석의 뒷모습을 볼 기운도 없다.

'친구와' 함께 쓰라는 이 돈은 결국 없는 거나 마찬가지고, 지갑도 없으니 갈 곳도 없다. 저녁까지 시간을 어떻게 죽여야 하나 싶어서 새삼 앞길이 막막해진다. 그나저나 '연회' 라고 하면 역시 그거겠지. 얼마 전에 큰집에서 나왔다는 조직원을 환영한다는….




"뭔 생각 하고 있냐?"

"!!?!…그냥. 뭔데 이거."

"음료수잖아. 마시라고. 탈수증 걸린다 그러고 있으면."




갑자기 목덜미에 차가운 감촉이 닿았다. 깜짝 놀라 몸을 반쯤 일으키자 쿠로야나기는 '받아.' 라는 말과 함께 내게 포카리를 내밀었다. 하다못해 그늘가에서 쪼그려 앉으라는 타박은 덤 같은 것이었지만, 타박보다도 눈 앞에 내밀어진 포카리가 꽤 어색하다. 잠깐 고민하긴 했지만, 이내 받아들였다.




"나중에 갚는다."

"푸하하."

"왜 웃는데?"

"아니 진짜. 그러게. 왜 웃음이 나오지. 네가 웃겨서 그런가."

"시비 거냐?"

"그런 거 아냐. 그런 게 아니라." 




급히 손을 내젓자 갈색 종이봉투가 함께 흔들린다. 변명을 할 생각인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뭘까. 쿠로야나기는 새삼 나를 퍽 신선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알다가도 모르겠어 넌. 제멋대로 행동하다가도 형 말이라면 꼬박 듣고, 신세 진 건 재깍 갚고. 이런 음료수 하나에도 너무 철저하잖아. 조금 쯤은 신세 지면 뭐 어떻다고 그러냐. 사람은 혼자서 못 살잖아."

"살려고 마음 먹으면 살 수는 있지."

"살 수는 있지. 하지만 만약에."




녀석은 내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참 신기한 게, 남을 훑어보는 눈은 대부분 기분 나쁘기만 해는데 왜 지금은 그렇지 않은걸까. 잘 모르겠다. 악의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는 설명 되지 않지만. 이녀석에게서, 나는 가끔 한참 어른스러운 인상을 받곤 한다. 지금처럼 말이다.




"ㅡ만약에 네가 정말로 인생을 혼자 살 수 있다고 믿는거라면, 넌 외로움이 얼마나 지독하고 무서운 지 모르는 거야."

"…."




시원한 이온 음료를 목으로 넘겼는데도 머리가 뜨겁다. 햇빛 때문은 아닐 거야. 포카리를 든 채 편의점 앞에 주저 앉은 녀석과 나의 결정적인 차이를 느낀 결과겠지.


학교는 작은 사회를 담아 둔 모형상자 같은 것이다. 십 년이 넘는 시간동안, 나는 그 작은 사회에서 발을 붙이거나 편하게 앉아 있을 만한 곳을 발견 하지 못했다. 유일한 예외가 이 녀석과 만난 가면라이더부다. 하나같이 시끄럽고 이상한 녀석들이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아. 뭐. 괜찮다 그 말이야.


인생을 살기 위해 혼자서 걷는 길을 나아가자니, 어느 날 볼록 튀어나온 돌부리처럼 가면라이더부가 내 발치에 걸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불쑥불쑥 튀어 나올 그 돌부리를 내가 꾸준히 무시 할 수 있을지는 살아봐야 아는 일이다. 다만.


다만.

녀석에게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을 지적당하자, 그 돌부리가 유독 크게 보인다. 

심지어 돌부리 주제에 말 까지 걸고 있잖아. 


'정말로 혼자서 살 수 있을 것 같냐.' 라고.



쿠로야나기는 말이 없다.

이 쪽을 바라보던 시선을 어느 새 거두고 포카리를 비우는데 열중하고 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지만 우리 둘 중 누구 한 명이 자리를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알고 있어. 그런 건."




사람이 혼자서 살 수 있을까. 근본적인 물음을 따지면 당연히 불가능하지. 당장 자웅동체처럼 종족의 번식 조차 혼자서 해결 할 수도 없는 사회적인 동물이니까. 


그런데 말이지, 언제부턴가 깨달은 사실이지만 나는 소외된 인간은 아니지만 도태 될 인간이다. 그래서 외로움이 얼마나 지독하고 무서운지를 인정 할 수 없는 거야. 인정 하는 순간, 나는 그것들과 싸워야 할 테니까. 어찌 보면 누구보다도 비겁하게 싸움을 포기하고 내 자신을 몰아가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게는 그 방법 밖에 없으니까. 살갑게 마주하며 친구가 되는 법 보다는 혼자서 자신의 방식을 개척 하고 관철 해 나가는 게 간단했다. 그 외의 방법은 모르고, 모르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다.




"미안."

"…뭐야. 갑자기 왠 사과야?"

"아니. 네 표정이 너무 심각하길래."




쿠로야나기는 갑자기 사과했다 원래부터 더러운 인상인 건 어쩔 수 없는데 말이야. 그렇게 표정이 굳어 있었나.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벅벅 긁었는데, 햇밑에 머리카락이 다 익어버리기라도 했나. 무진장 뜨겁다.




"뭔가 설교를 해버린 느낌이네. 뭐 나도 잘난 척 할 입장은 아니지…기분 상했냐?"

"됐어. 딱히 화 난것도 아니고."

"그럼 다행이네. 그나저나 진짜 슬슬 일어나자. 더워 죽겠어."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애도 아니니 썬크림 같은 걸 바르고 다닐 리 만무하고, 이러다가 피부가 쫄딱 다 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며 종이 봉투를 다시 고쳐쥔다. 




"가냐?"

"응. 당장은 누나들 때문에 좀 그렇고 더 돌아다니다가 선선해지면 들어 가야지."

"그래."




이온 음료의 힘인가. 아까까지만 해도 눈 앞이 캄캄했었는데. 지금은 컨디션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한 낮의 태양을 직사광선으로 쬔 것 치곤 견딜만 하네. 

시간을 확인하는 녀석 옆에서, 나는 오른손의 악력만으로 캔을 구부려트렸다. 곧 포카리 캔은 작은 포물선을 그리며 쓰레기통으로 쏙 들어간다. 녀석은 실력이 꽤 괜찮다는 말과 함께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곤 나와 달리 얌전히 쓰레기통 안으로 빈 캔을 집어넣은 후 손을 흔들었다.




"그럼 다음주에 부실에서 보자고."

"어 그래."




그런데 말이야. 


말 했잖아. 난 딱히 성격 파탄자가 아니라고.

이해타산적인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실망 하게 될 상대를 믿고 싶지 않은 것 뿐이지.




"쿠로야나기."

"?"

"……저녁이나 먹고 가라 너."




그러니까 딱히 실망 할 것도 없을 것 같은 녀석이랑, 가끔 밥을 먹는 정도야 가능 한 거야.

녀석은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걸음을 돌려 내 쪽으로 다가왔다.









*







"나 왔어."

"들어 왔냐. 미안하다 너무 늦게 끝나서."

"됐어."

"재밌게 놀다 왔냐?"

"알 거 없거든."




뭐 하고 지냈어? 그렇게 물어보고 싶은 건지 형은 눈을 빛낸다. 

내 손에 들린 건 게임 센터에서 뽑은 경품. 

그리고 조금 어울리진 않지만 오래된 고서점에서 산 잡지. 


하지만 형에겐 알려 주지 않을 거다.





"형."

"왜?"

"오늘 쓰고 남은 잔돈 내가 가진다."




푸하하핫, 하고 웃어버리는 형이 그렇게 하라고 낄낄거리는 동안 나는 민망함을 감추며 얼른 내 방에 들어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형은 내가 밖에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다만 어렴풋이 혼자서 지낸 건 아닌 모양이라며 눈치를 챈 듯 하다.




타인과의 관계가 이해타산적일 수 밖에 없다는 마인드는 쉽게 변하지 않겠지만, 주고 받는 사이란건 결코 나쁜 게 아니다.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친구는 아니더라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상호의 기초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호의적인 관계거든. 그걸 유지 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니깐?


ㅡ물론 본인이 그런걸 이해 하고 있을진 모른다. 다만 내게는 그것 만으로 충분하니까.


가끔은 이해 못할 템포로 진솔하다 못해 진지하고 직설적인 말을 던지는 녀석과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관계.

그건 내게 있어서 '친구'는 아니더라도 꽤 괜찮은 관계에 속한다. 

쿠로야나기 쥰이치가 독특 한 만큼, 독특한 관계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잘 자라 타카히사."

"…형도."




긴 주말의 끝을 알리는 인사를 마주하며, 나는 조용히 미닫이 문을 닫았다. 아무도 없지만, 외롭지는 않은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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