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입부 신청서를 쓰는 동안 망설임이 없었던 이유말인데, 사실은 영문 모를 갈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뭐가 뭔지 모를 설명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야기의 화자 치곤 붙임성 없는 놈인걸 나는.
* * *
"학교 가냐."
"보면 몰라 그걸."
형은 삐딱하게 문 기둥에 기댄 채 내 방을 훑어봤다. 아침 여덟시. 지금부터 등교하면 백퍼센트 지각이긴 하지만 뛸 생각도, 차를 탈 생각도 없었다. 그런 동생이 지각이란 걸 알면서도, 넌지시 물어보기만 하는 게 내 형이라는 인간이다. 차분하게 형이 묻는다. 학교 가냐.
"학교 가냐고 물었다."
"…어."
"그러냐. 저녁에 아버지 들어 오신다."
"알아."
"그럼 됐고."
무게 잡으며 개 폼 잡던 게 언제였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린다.
무서울 정도로 아침이 되면 고요해지는 다다미식 저택에서 형의 존재는 이질적이다. 아니. 반대인가.
형의 입장이라면 고등학생이 되기 전 까지 외식 하며 일 년에 몇 번 얼굴 보는 게 고작이었던 동생이다.
내가 이질적으로 느껴지겠지.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형과 나는 서로의 이질감을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밀어내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형제인지 남인지 모를 사이에서 미적지근한 말을 서로에게 던져대는게 전부다.
"학교는 잘 다니고 있냐?"
"…어. 그냥 저냥."
"동아리는?"
"계속 알아 보고 있어."
"그래. 친구 많이 사귀고."
"……."
순간 치밀어오르는 짜증에 눈을 치켜 떴지만 형의 태도는 태연했다. 동생을 걱정하는 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익숙치 않은 탓인가. 낯선 호의란 때론 불쾌하다.
"나 간다."
"형이 용돈 줄까?"
"ㅡ지랄 마라 진짜."
"하하 곱게 가라 임마. 건방지게 지각 주제에 말이 많네."
온갖 짜증을 얼굴로 내고 나서야 형은 만족 했다는 듯 낄낄 거린다.
시라카와 파 삼대의 형제란, 사이는 나쁘지 않지만 상성이 꽤 안좋은 편이다.
"어이쿠, 차 조심 해야지?"
"지랄 하지 말랬다ㅡ!"
꼭 아침에 성질을 한번 씩 긁는다니까.
* * *
요 일 년간 학교를 다니며 깨달은 건데, 사립 아마노가와 학원 고등학교는 제법 자율적이다. 학교의 개성 있는 학생을 지원한다는 명목상의 이유인가. 그게 아니면 단지 규칙에 루즈 할 뿐인가. 알수는 없지만, 규칙을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는 퍽 환영할만한 일이다.
뭐 한마디로 이 학교엔, 진짜 개성 넘치는 학생이라고 치고 싸가지 없는 놈들도 많아서 일 년 내내 주먹이 쉴 날이 없었다. 오죽하면 하고 다니던 반지도 사람 패느라 빼 두는게 일상이 되었으니까.
입학 부터 일년 동안 남의 면상과 주먹으로 대화를 몇 번 하게 되니 동아리는 무슨. 성질 머리 죽이고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다 못죽인 성질이 가끔 폭발하면 쌈박질에 이은 정학은 1+1같은 선물이었다. 2학년에 올라오면 함부로 사람 불러낼 일도 없어졌고, 또 불러내면 이번에야 말로 흠씬 두들겨 패겠다고 마음 먹은 채 새학기가 돌아왔더란다. 뭐 항상 이렇게 살 순 없는 노릇이니 올해야말로 얌전히, 정말 조용히 동아리 활동이란 걸 해보시며 학교를 다녀 볼까 싶었는데.
"저기 동아리 전단지!…어…."
"뭐야."
"……아무 것도 아닙니다."
"뭐가 아무것도 아닌데? 줬던 종이는 또 왜 뺏는데?
"……아뇨 저기……."
"뭐냐고."
"아무 것도 아닙니다!"
ㅡ또냐 이 패턴.
진짜 지긋지긋하다. 동아리 전단지 한 장 받는 거, 이렇게 쉽지 않는 일이었던가 보통? 눈과 눈 사이가 좁아지고 내 미간이 굳어 질 수록 피켓과 팻말을 들이대며 신나게 동아리를 홍보하던 학생들이 뒷걸음 치는 이유가 대체 뭔데. 내가 동아리에 들겠다는데, 왜 내밀던 종이는 황급히 숨기는데?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대? 어?
"복싱부입니다. 신입생 환영이요."
내가 신입생으로 보이냐. 어이 없어서 한 마디 돌려줄까 싶었지만, 퍽 긴장간 없는 한 마디라 김이 샜다. 누가 마음을 읽기라도 했나. 모세의 바다 마냥 내 얼굴만 보면 뒷걸음질 하던 학생들이 전부 인 줄 알았는데 태연한 목소리로 전단지를 돌리는 학생도 있었나.
걸음을 옮기다가 흘끗 쳐다보았다. 열심히 홍보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사람을 가리면서 홍보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ㅡ복싱이요. 복싱부입니다. 빈 말로도 좋은 인상 아닌 상대에게도 전단지를 쥐어주는 학생이라.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며 다른 학생에게도 전단지를 돌리는 상대가 퍽 신경 쓰여서 고개를 돌렸는데, 이미 지나 가 버린 상대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노랗게 물들인 금발머리가 보이는 전부다. 적어도 여자는 아니고. 체격은 나랑 엇비슷한 것 같은데.
"…활동일이라도 좀 물어봐 둘 걸 그랬나."
그 이후 교문 앞에서 교실에 들어 갈 때 까지 내 손에는 복싱부의 광고지가 들려 있었다. 내가 광고지를 거절하지 않는 단 걸 깨달은 몇 몇 용기있는 학생들은, 거의 던져주다 시피 광고지를 내놓은 덕분에 교실에 들어 갈 때 즈음에는 수많은 동아리 중 선택을 한다는게 가능 해 졌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예닐곱 되는 동아리 광고지 중 교실 쓰레기통 행을 면한건 복싱부와 천문부 광고지 뿐이었다.
* * *
갈증이란 건 제법 오랫동안 사람을 괴롭힌다. 웃긴 건 그 상태에서도 살 수는 있다는 거다. 눈 앞이 깜깜 해 지고 목이 찢어질 것 같은 상황에서 물을 원하는데도 사람 목숨은 멀쩡히 붙어있다. 그리고 어느 날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서 말라 죽는 것이다. 지구에서 유일무이한 포유류의 종 치곤 식물처럼 죽어갈 수 있는 게 웃기는 점이기도 하다.
더 웃긴 점은, 그런 갈증으로 정말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겠지.
사람이 죽지 않기 위해 필요한 요건. 수분. 산소. 그리고,
"또 뭐지?"
자연스레 학교 벤치에서 몸을 일으키게 만든 건, 점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도 아니고 시비 거는 놈들도 아닌 맹렬한 햇살이다. 이미 이건 햇살 수준을 넘어서서 사람을 공격하는 더위인데.
하복을 입었는데도 더운 날씨라니 지긋지긋하다.
교실에 있어도 서른 가까이 되는 학생과 우글우글 몰려있느라 숨이 막히는데 밖에서도 이러면 대체 어딜 가라는 거지.
"……갖고 싶다. 에어컨."
날로 발전한다는 과학기술이 진짜라면 가지고 다니는 휴대용 에어컨 같은 걸 만들 순 없는 건가. 냉각 시트로도 버틸 수가 없는 더위라는게 있는 법이잖아. 운 좋게 그늘가의 벤치를 차지한다고 쳐도 공기가 덥고 바람마저 뜨겁다면 버티는 것도 한계다.
그게 아니면 마법처럼 피부에 장착 할 수 있는 에어컨이라도 좋아. 하복을 입었는데도 차오르는 열에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개소리를 줄줄 늘어놓으며, 어쨌든 진짜로 장마철이 되기 전까지는 어디든 입부를 해야한다고 나 자신에게 알려준다. 지금이야 덥다 덥다 하면서 안간힘을 써서 버텨라도 보겠지만, 장마철에는 선택지 따윈 없다. 아무렴 벤치에서 하루종일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교실로 돌아가는 것도 싫거든.
하지만 어디로 가면 되는데. 에어컨이 있다던가, 적당히 사람이 없다던가. 그런 조건들을 일일히 나열 해 봤자 끝이 없다는 건 안다. 알고 있는데도 좀처럼 그 많은 동아리 신청서를 앞에 두고 한 장도 완성 시키지 못했다.
갈증이 난다.
잘나신 인류께서 천천히 말라 죽어가는 순간이다.
수분과 산소가 있는데도 말이지.
대체 뭐가 부족해서?
* * *
빈말로도 성실하게 수업을 듣진 않지만 나름의 룰은 있다. 조례와 종례는 들을 것. 학생이 바글거리는게 싫어서 일찍 등교 하다 보니 조례는 듣게 되지만, 꼭 삼교시 쯤이 끝나면 도저히 수업을 들을 엄두가 안난다. 엉덩이 붙이고 있는 놈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재주도 좋으셔. 적당히 점심을 때우고 교실로 돌아갈 때도 있지만, 학교나 그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시간이 더 많다.
딱히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으니 수업을 빠지는 건 그렇다고 해도, 학교란 건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라 내 예상을 벗어 날 때가 많다. 도서관에서 그룹 활동 하는 애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작년 까지는 안 쓰던 교실이 이제는 비품창고가 되어서 자물쇠가 잠겨져 있거나, 순찰중인 경찰이 학생이 학교는 어쩌고 밖을 나돌아다니냐는 말을 들으면 난감하기 짝이 없거든.
특히나 후자는 최악이다. 부모에게 연락이 갈 경우 초유의 사태로 연결된다. 학교 교문을 가득 메운 검은 방탄 차량과 내 성질을 긁어주기 위해 최대한 정중하게 차려입은 형이 칼자국을 새기신 깍두기를 데리고 교문에서부터 학생 주임실로 걸어 들어가겠지. 상상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진다.
교정에서 사람이 슬슬 없어질 때 즈음엔 턱 끝까지 차오르던 열기가 사라져서 조금은 숨통이 트인다. 복싱부의 신청서는 써뒀지만 부실에 아무도 없어서 결국 못 내고 빈 손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완전히 날이 어두워 질 때 까지 교실 바깥에서 어슬렁거려야 되나. 지갑이 아슬아슬한 상황이라 사이다도 오코노미야키도 기대 하기 힘들고.
한 시간은 가만히 주머니에 손을 넣고 벤치에서 라디오를 들었다. 아직도 집으로 돌아갈 엄두는 안 난다. 내가 마음 편하게 있을만한 '집'이 못되니까 거긴. 게다가.
"진짜 봤다니깐ㅡ"
"야. 너네. 거기 좀 서 봐."
"?!"
"네? 네??"
"뭣 좀 물어보자."
어둑어둑 해 질 무렵 덩치 큰 녀석이 불러 세웠으니 두셋 쯤 되는 인원이라도 얼굴 안색을 굳히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가. 앞다투어 말하던게 언제였냐는 듯, 걸음과 함께 하던 말도 싹 멈춘 녀석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애초에 교우관계가 넓지도 않으니 내가 아는 얼굴은 당연히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쫄 건 없잖냐.
"여기에서 밤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는 부가 어디냐?"
아마노가와 학원에서는 유독 별이 잘 보인다.
별이 보일 시간까지 학교에 있는 건 나쁘지 않으니까.
집이 불편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딱히 할 일이 없어도 학교에 눌러 붙게 된다.
멍청한 질문은 아마 그 때문이었겠지.
* * *
-천문부? 아니면 가면라이더부…근데 거기 별로 좋은 소문 안돌던데.
-사람은 많아요. 근데 뭐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늦게까진 남아있긴 한데 거긴 좀….
-아뇨 그냥. 좀 그래요 그 부는. 제가 보기엔 별로던데.
-뭐 이상한 거 봤다는 애들도 있고 그래요.
새끼들이 한 마디씩만 할 것이지. 슬그머니 눈치 살피던 것들이 나중에는 지들끼리 떠드느라 난리가 나서 썩 쫓아내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어렵잖게 입부서는 찾았고 쓰는 것도 끝냈는데 이것 참.
설명회 같은 것도 안 듣고 애매한 시기에 동아리에 가입하자니 무슨 면상을 하고 가야할지 모르겠다. 처음 와보는 동아리 건물 앞에서 목 언저리를 쓸며 답잖은 망설임에 걸음을 멈췄다. '이상한 동아리.' 가면라이더부.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 치고는 어쩐지 꺼림직한 평판이다. 게다가 내가 '봉사'부라고?
너털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이런 저런 생각이 귀찮아져서 아무 생각 없이 평소처럼 문을 열었는데, 어랍쇼. 무진장 가벼운 문이네. 생각치도 못하게 엄청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꺄!...가 아니라 누겨?!"
"2학년 하뉴 타카히사다. 입부 신청 하러 왔는데."
뭐냐 이 계집애같은 반응.
눈깔이 고르게 작동하고 있다면 바닥에 있는 에어매트 쯤으로 보이는 물체 위에서 뒹구는 이상한 사내놈이 하나 있는데. 설마 어이없는 비명소리의 주인이 저 놈이었던 건 아니겠지.
대놓고 미심쩍은 시선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에어매트에서 몸을 떼낼 생각은 없어보인다. 이것 봐. 아무리 그래도 일단은 신입 부원 희망자라는데 좀 더 멀쩡한 꼴을 보일 생각은 없냐고.
"지금...은 나 뿐이군! 일단 그 테이블 위에 올려두면... 으음 부장이나 부부장한테 주는게 분실의 위험이 없나? 으음...어떻게 생각해?"
알게 뭐야 임마. 아무래도 상관 없어 신청서에 문제만 없다면.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지 말라고. 일단은 가입 하는게 먼저니까.
"그럼 부장이나 부부장한테 주는게 안전하지 않을까? 뭐 도둑 같은 건 없을테니까. 그냥 귀찮으면 테이블 위에 올려둬~"
부장이야 이름을 안다 쳐도, 부부장은 사투리를 쓴다는 정보 뿐이다. 부원 받을 생각은 있는 걸까.
에어매트에서 움직이질 않는 상대를 가만 바라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까무잡잡한 피부가 도드라지는 눈 앞의 인물은 머리띠가 헝클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을 굴러댄다. 작작 하라니까.
대충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책임 소재는 네가 지는거냐 따지니, 책임은 못 진다면서 또 그놈의 부장과 부부장 타령이다. 뭐야 정말. 징그럽게 사내새끼가 윙크에 혀까지 내밀지 마!
"고문 선생...님이 있지 않아? 빨리 내고 싶은데."
"아……아아. 지금은 양호실로 가야 되려나…. 임시 고문이 양호선생님이거든."
"뭐야 그거. 더럽게 귀찮잖아."
호시노 우사기라는 이름은 신청서에 있지만 사투리 쓰는 부부장이라니. 애초에 요즘 세상에 사투리를 쓰는 녀석이 있단 건가…. 오묘한 표정을 하고 있자니 열심히 신청서를 내려는 모습으로 비춰졌나보다. 오히려 내 쪽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새롭다.
"그나저나 엄청 귀찮아 하는구나. 타카히사...! 그런 것 치곤 열심히 내려고 하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할까."
"…사람마다 부에 가입할만한 나름의 이유는 있는거니까. 어쨌든 알았다. 알려줘서 땡큐."
그나저나 잠깐만. 이놈 방금 날 '타카히사' 라고 부르지 않았나? 초면에 그렇게 막 불러도 되는거야? ㅡ어느 쪽이냐 하며, 나는 아무래도 좋지만. 무슨 생각인가 싶어서 입을 다물어버리자 이름도 모를 상대는 혼자서 뭘 그리 납득했는지 진짜 안되겠으면 일단은 선배니까 자기한테 넘기란다.
아니, 잠깐만. 뭐라고?
"3학년이라고 너-?!"
"푸하하하하 빠르기도 하지!! 3학년 이토 타치바나야. 예상했던 그대로의 반응이라 뭐라 반박할수가 없잖아! 자주 듣는 소리긴 하지만."
위엄이라곤 쥐뿔도 찾아보긴 힘든 상대에게 허를 찔리자 잠깐 할 말이 사라졌다. 3학년이라고 위엄을 보이란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좁은 교우관계에서는 '선배'란 어쩐지 조금 의지가 되는 느낌이었지만 그런건 기대하기 힘들 듯 하다. 마음 놓고 반말을 쓴 배짱은 거기서 나온건가. 전혀 선배처럼 느껴지지 않잖아. 미션 달성을 응원한다며 입부 신청서를 도로 집어넣는 나를 보고 속 편하게 손이나 흔들고 있다. 이거 진짜. 그래 확실히. 틀린 평가는 아니로군.
"아하하…안녕하세요? 입부 신청서가 참 멋지시네요."
"…저, 신입으로 오셨소? 신청서가 참으로 달필이시구려!"
조심스럽게 이 쪽의 안색을 살피는 갈색 눈동자. 그리고 조금은 특이한 말투의 단정한 교복차림이 눈에 띄는 상대가 눈 앞을 가로막는다. 아니 정말로. 묘한 녀석들 투성이라니까.
이 가면라이더 부, 여러 의미로 이상하긴 하네.
"2학년 하뉴 타카히사. 복싱부 겸업 활동이다."
"1학년 시게타 아유무라고 합니다."
"먼저 통명성을 드렸어야 했을진대, 실례하였소. 가면라이더 부의 1학년…펜싱부도 겸하고 있는 스기타 유메미라 하오."
그리고 '이상하다'는 반드시 네거티브한 의미일 필요는 없다.
적어도 붙임성 없이 덩치 큰 신입 부원에게 겁없이 말을 건다 이거잖아.
정말 좋은 의미로 별난 녀석들의 소굴이다. 무심코 웃음이 나올 정도로.
"인사나 하고 다니자고."
* * *
"신청서는 잘 냈냐? 아니, 어째 졸려보인다 너?"
"……."
고개를 까딱인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눈치 없는 녀석은 아니니까 복싱부 소파에 늘어져있는 내 꼴을 보고 의아하게 여길만도 하지.
나는 주머니에서 고이 신청서를 꺼내보였다. 아직도 못 낸거냐는 말과 함께 눈을 땡그랗게 뜨는데, 일일히 설명하기도 귀찮아.
"있다가 양호실 근처에 가보고 없으면 고문 선생 다시 부실로 내러 갈 거야."
"그래라 그럼. 참나 웃긴 놈이 따로 없네. 그냥 놓고 오던가. 하긴 복싱부에 와서 가면라이더부 신청서 내놓으라 할 때부터 알아보긴 했다만."
"내놓은 놈한테 듣기 싫어."
"아 그러세요. 병든 닭이 따로 없네. 잠 못잤냐?"
고개를 까딱거렸다. 천천히 이 쪽을 응시하는 게 이야기를 들어주마, 같은 느낌이라 졸음에 잠긴 목으로 조금 주절거려보자면… 그러니까, 어제 가면라이더부 부실을 나온 다음 마찬가지로 밤 늦게까지 활동한다는 천문부의 활동을 견학하러 다녀왔는데, 과연 우주개발에 일가견 있다는 고등학교의 천문분 답게 어찌나 빠릿하게 부활동을 하시던지.
활동 일지와 망원경을 비롯한 온갖 기자재를 천천히 둘러보고 활동일과 월별 활동내역을 소개 받고 나오는 길에 다짐했다. 어쨌든 천문부는 안 들어가겠다고.
복싱부 쓰레기통에서 발견한 구겨진 천문부 광고지를 보며 녀석이 어째 신나게 웃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란?
ㅡ하여간 대뜸 밤 늦게까지 활동 하는 동아리 찾아다닐 때 부터 알아보긴 했는데.
"말로 해야 할 때와 행동 해야 할 때가 다르다는 것 쯤은 알아 두지 그러냐."
그래 뭐. 그 점에 대해선 돌려줄 말이 없군.
말마따나, 앞으로는 의욕만 가득 차서 답잖은 천문부를 기웃거리는건 그만두기로 했다.
별을 보는 건 요 앞 벤치에서도 할 수 있는 거니까. 1인 천문부로 별 보기. 딱 좋은 취미로 삼지 뭐.
"야. 그래서 너 복싱부 들어오는 거 맞냐?"
"엉. 잘 부탁한다."
뭐가 그리 웃긴지 녀석은 또 자지러지게 웃는다.
그러고보면 너도 가면라이더부지. 새삼 별나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일이다.
"남 말하지 마라. 너'도' 오늘부터 가면라이더부니까."
"이상하다는 소리 들어도 불만 가지지 말란 소리냐 그거."
피식 웃으며 소파에 들어누웠다. 어깨를 으쓱거리며 아침부터 링 위로 올라가는 녀석을 내버려두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몸을 전부 감쌀 만큼 큰 소파는 아니라 다리가 삐져나오는 건 어쩔수 없는데도, 이상한 안정감이 있다.
어디서 오는 안정감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묘하게 웃음이 나오네. 한 번 끌어안아봐도 되냐는 이상한 질문을 하는 녀석들까지, 아니 정말. 유쾌하고 이상한 스트레인저의 퍼레이드.
적어도 불편한 '집'을 대신해서 시간을 죽일 때 이용하긴 딱 좋은 봉사부잖아.
게다가 퍼레이드란 건 원래 많은 사람끼리 떠들썩 해야 재미있는 거니까.
* * *
그래 뭐.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다.
잘 설명을 못 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지. 화자로선 적절하지 못하다니까 나는.
나 조차도 영문을 모를 이야기다. 가면라이더부. 복싱부. 이름 앞에 따라오는 것이 조금 늘었을 뿐인데.
묘한 소속감의 정체를 잘 설명할수 없다.
그래도 더 이상 갈증은 느껴지지 않는다.
말라 죽을 일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끝이다.
'별에소원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녕 #05 사랑했던 날들 (1) | 2014.06.08 |
---|---|
더위 #04 내 더위 사가세요 (1) | 2014.06.08 |
절벽 #03 고해 (1) | 2014.06.05 |
울음 #02 잠 못 이루는 밤 (1) | 2014.06.01 |
전철 #00 변하지 않는 것과 새끼 손가락의 반지 (1) | 2014.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