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발간
GARO 코우카오 배포본
<행복의 모양>
“지금이라면 그 반지 다시 줘도 되는데.”
“…?”
저녁 식사가 끝난 후 따스하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불쑥 카오루가 말했다. 책을 앞에 두고 집중하고 있었던 코우가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한 번도 무시 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더더욱 의아했다.
잠시 동안 이었지만 잘못 들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 거릴 정도였다.
“무슨 소리야?”
“코우가도 기억 하지?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자르바가 반지를…음…만들어 줬잖아.”
미간을 찌푸리며 곰곰이 생각하던 것도 잠시, 코우가는 기억났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르바의 몸의 일부로 만들어졌던 그 반지는 여러 번 호라에게 쫓기거나 사냥당할 뻔 했던 카오루를 지켜주었다.
문제는 자르바가 반지를 만들 때 보여준 매스꺼운 모습 탓인지, 카오루는 그 반지를 진심으로 싫어했었다. 한 번 낀 이후 마음대로 뺄 수 없었다는 점도 못마땅하게 여기기엔 충분했다.
「호오. 카오루쨩은 반지가 가지고 싶은 거야? 아서라 아서. 이런 녀석에게 반지 같은 거 받아 봤자 좋을 거 없어.」
“…자르바.”
“이미 받아 봤네요. 그리고 만들어 준 사람이 지금 와서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테이블 위로 내밀어진 자르바의 머리 부분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린 카오루는 씩 웃었다. 반지와 대화하는 광경이라니, 퍽 비현실적이었지만 이미 이 광경은 사에지마 저택에서 일상이다.
카오루는 등을 곧게 펴고 집중했던 스케치북을 내려놓았다. 식사를 끝마치자마자 엄청난 기세로 스케치를 그려나가기 시작한지 꼭 두 시간이 지나서였다.
작업에 집중 하는 카오루의 모습이란, 언제나 임전태세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일전에는 저녁 까지 굶어가며 사흘 밤낮을 캔버스와 마주하더니 물감이 잔뜩 묻은 손가락과 앞치마 차림으로 토스트를 입에 물고 작업하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보다 못한 코우가가 언질을 줄 정도였었다.
다행히 그 때 만큼은 아닌지, 작게 기지개를 켜곤 테이블에 엎어진 카오루는 하얀 팔을 뻗어 자르바를 쓰다듬었다. 코우가의 손과 살짝 스칠 때 마다 조금 웃기도 했다.
“이왕이면 황금 기사답게 금반지라도 가지고 있으면 좋잖아.”
「그런 의미의 황금 기사가 아니잖아. 너도 여자긴 여자구나.」
“자르바, 그런 식으로 말 하기야? 여자 친구 사귀어 본 적 없지?”
「이 몸이 애 보기에 워낙 바빠서.」
“애보기라니…설마 코우가를 두고 하는 말?”
「달리 누가 있겠어.」
이 쯤 대화가 진행되자, 코우가의 안색은 조금 전과 달리 조금 불만의 빛을 띄웠다. 카오루와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만 있었던 코우가는 반지를 마주보며 웃기지 말라고 일갈했다. 제법 험악한 일갈이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는 자르바와의 입씨름은 그 후로도 몇 분 간 지속 되었다.
자꾸만 시끄럽게 굴면 마도함에 넣어버리겠다는 코우가의 말에 결국 백기를 든 자르바가 조용 해 지는 것으로 그 입씨름은 종료되었다.
마도구와 싸우는 광경을 보며 하하 웃은 카오루는 이번에는 테이블 위에 있는 코우가의 손을 쓰다듬었다.
생체기투성이의 억센 손가락. 몇 번이나 자신을 지켜주었고, 더 많은 사람을 지켜나갈 자랑스러운 손을 앞에 두고 카오루가 말했다.
“이상하지. 그 반지…예전엔 빼고 싶어서 안달이었는데 없는 지금은 오히려 가지고 싶어.”
“……그런가.”
“응. 반지가 무사하다는 건 코우가도 무사하다는 뜻이니까.”
의외의 부분에서 핵심을 찔린 탓인지 코우가는 곧바로 침묵했다. 카오루도 딱히 대답을 바란 건 아니었는지 작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코우가도 물끄러미 카오루의 손을 바라보았다.
반지가 잘 어울리는 깨끗하고 하얀 손이었지만, 붓을 쥐느라 잡힌 굳은살은 검을 쥐며 생긴 굳은살과 얼핏 닮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녀의 손에 생긴 굳은살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다잡으며 나아가는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붓을 쥐는데 방해된다며 반지는 좀처럼 끼지 않던 카오루가 반지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게 어지간히 의외다 보니 코우가는 다시 말을 꺼내느라 조금 망설이고 말았다. 잠시 동안의 침묵을 깨고 그가 말했다.
“어떤 게 좋아?”
“응?”
“…나는 장신구 같은 건 잘 몰라.”
그 말을 끝으로 코우가는 더 이상 말 하지 않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하지만 하려고자 하는 말은 명확했다. 의외의 반응에 환한 미소를 머금은 카오루가 똑바로 응시 해왔다. 마주 보기 힘들 정도의 기쁜 웃음.
“뭐든 좋아.”
“……”
“정말이야. 코우가에게 받는 거라면 뭐든 좋아.”
‘뭐든지’ 라는 반응은 오히려 선물하는 사람을 크게 고민시킨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카오루는 그렇게 말하며 팔짱을 낀 채 웃었다.
백금도 다이아도 필요 없는, 우리를 이어주는 작은 원형의 반지 하나. 그 속에서 서로를 속박하고 속박 당하는 마음이 빙글빙글 돌아, 상대를 떠올리고 생각하는 것으로 행복을 약속 받는다.
“라이가가 태어나면 자랑해야지.”
“…….”
“기대하면서 기다려도 돼?”
“그래.”
항상 환히 웃는 얼굴이지만 오늘 따라 미소가 가득 찬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니었다.
코우가의 대답에 홍조를 띄운 카오루는 다시금 스케치북을 손에 들었다. 그 후로 몇 분간, 둘 사이에 대화는 없었지만 다정한 공기 속에 녹아있는 따스한 애정만은 의심 할 데 없이 분명했다.
집사가 뜨거운 홍차를 날라 온 후 카오루와 소소한 잡담을 이어가는 중에도 코우가는 묵묵히 책장을 넘겼다. 그 속에서 책을 넘기는 속도가 평소보다 조금 느린 걸 알아챈 사람은 오직 자르바 뿐이었다.
“코우가님? 홍차가 입에 안 맞으신지요?”
“아니…잠깐 생각 할 게 있어서. 지금 마시지.”
「이거 보아하니 내일 부터는 보석상 앞에서 서성거리는 황금 기사를 발견 할 수 있겠는걸.」
“…쓸 때 없는 말 좀 그만해.”
「딱히 떠오르는 디자인도 없잖아?」
“…….”
알기 쉬운 녀석이라며 자르바가 이죽거리는걸 견디다 못한 코우가는 마도함에 넣어 버리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주인의 영문 모를 갑작스런 행동에 의아해하는 집사와 달리, 그 광경을 쭉 바라본 카오루는 스케치북을 입가에 가져가며 소리 죽여 한참을 웃었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행복을 다시금 확인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욕심이란 어찌나 개구쟁이 같은지.
행복의 가치를 작은 원에서 새삼스레 찾을 수 있다면 나는 네가 주는 민들레 반지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 할 텐데.
작게 나온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카오루는 웃었다.
약속 받은 작은 원과 가족이 잠든 몸.
지금 이 순간 미즈키 카오루를 행복하게 만드는 행복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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