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메모들을 보게 된 건 사소한 계기였다. 인쇄된 오선지가 아닌 그녀가 손으로 그린 것처럼 보이는 오선지 선은 퍽 오랜만이었다.
레코딩룸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는 메모용지는 낯이 익었다. 그녀가 매번 새로운 멜로디가 떠오를 때 마다 적어나갔던 수첩의 종이였다. 거기까지 눈치 채고 나면, 나머지 내용을 보게 되기 마련이다.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는 메모들을 짜깁기해서 오선지 위의 음표를 하나 씩 짚어보았다.
따스한 가사가 어울릴 잔잔한 곡조.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하기보다는 잔잔한 울림을 전달하는 음정. 마음을 간질이는 무언가가 그녀의 곡 안에 담겨있다.
포근한 선율을 끝까지 읽고, 메모 위에 짧게 적어둔 곡의 제목을 보자 나는 비로소 그녀가 이 노래로 어떤 감정을 전하고 싶은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 때 즈음에는 자신에게 물었더란다.
같은 마음으로, 같은 감정을 노래하고 있는 지.
그 날 나는 그녀가 돌아오기 전까지 꽤 오랜 시간을 테이블 앞에서 서성이는데 사용했다.
“행복이 뭘까?”
“대뜸 밥 먹자며 끌고 오더니 이젠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티컵을 내려놓으며 어제 날씨를 묻듯 넌지시 말했다. 돌아온 대답은 가관이었다. 그나마 상식적인 반응을 보인 건 잇치였고, 상한 거라도 먹었냐고 되려 반문한건 꼬맹이다.
작은 한숨과 함께 핀잔을 준 잇치는 입가를 냅킨으로 훔쳤다. 그 모습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차분 해 보였다.
나는 두 사람을 향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 본 거야. 의견 참고.”
“질문이 너무 막연하잖아. 설마 나나미랑 무슨 일 있었던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나름대로 시원스레 대답 했다고 생각 했건만 어쩐지 의혹의 눈길은 떨어지지 않았다. 잠깐이지만 자신의 신뢰도란 가까운 친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할 정도였나 싶어서 행실을 되돌아봤다.
돌아 본 곳에는 일 년 365일 하루 스물 네 시간 꼬박, 당연하게 그녀만을 생각하는 내가 있다.
“우린 아무런 문제도 없어. 자 이거.”
“……왠 악보입니까?”
“레이디가 쓴 곡이야.”
원랜 비밀로 하고 두 사람에게 한 방 먹여줄 생각이었지만.
나는 뒷말을 삼킨 채 뒷주머니에 접어서 넣어 둔 악보를 꺼내서 둘에게 건넸다. 악보를 받아 든 잇치와 꼬맹이의 눈동자가 정신없이 오선지 위를 훑어나간다. 지금 저 두 사람의 머리를 열어 본 다면 그녀가 자아낸 선율이 마구 떠다니고 있겠지.
“좋군요. 그녀가 만드는 곡 특유의 분위기가 잘 녹아 있는 게…당신에겐 좀 아까울 정도에요.”
“아-!! 이 부러운 놈! 왜 너 같은 게 나나미의 파트너인거람. 내가 파트너가 되었더라면 좋았을 걸.”
“난 레이디와 운명으로 맺어져 있으니까 그렇지.”
“……그만해라. 점심 먹은 거 그대로 올라 올 뻔 했잖아.”
내 넉살 좋은 대답에 두 사람은 겨우 악보에서 눈을 떼었다. 그렇다고 관심까지 전부 떨어진 건 아니었다. 잇치 치곤 드물게도 감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눈동자가 말보다도 강하게 곡이 탐난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꼬맹이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곤 있지만 곁눈질로 악보를 흘끔거리고 있었다.
“근데 이 악보랑 아까의 질문이랑은 무슨 관계가 있는 건데?”
“제목을 봐.”
잇치와 꼬맹이는 사이좋게 다시 머리를 맞댔다. 하여간 둘 다 귀엽다니깐.
조용히 제목을 본 두 사람은 제각각 묘한 소리를 냈다.
“「Be happy」…당신이 지은 건 아닐 테고 그녀가 지은 제목 치곤 심플한 것 같습니다만?”
“그러게. 이거 가사는 전부 완성된 거야?”
“제목은 임시야. 가사도 완성된 건 여기에서 이 파트까지. 곡의 방향은 결정됐지만 나머진 미정이라 너희들에게도 의견을 물어보려 한 거야. 어때?”
잠깐이지만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딱히 나쁘진 않은데… 아직 완성도 안 된 곡이잖아? 평가고 뭐고….”
“렌. 질문의 방향이 잘못 되어있는 게 아닙니까? 가사를 완성 시켜서 보여준다면 모를까, 지금으로선 딱히 할 말은 없어요.”
“그럼 작사는 내버려두고 작곡만 평가 해 봐.”
“으음…….”
토키야는 악보를 내려놓았다. 음악에 대해선 한없이 진지 해 지는 토키야인 만큼, 이럴 때는 오히려 침묵으로 말을 시작 할 때가 많다.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 한 토키야를 내버려두고 쇼는 자기 쪽으로 악보를 추슬렀다. 콧노래로나마 음악을 흥얼거리길 몇 번. 혼자서 고개를 작게 끄덕이기도 했다. 한참 곡에 몰두하고 있는 친구를 보며 렌은 웃었다.
둘 중 먼저 말을 꺼낸 건 쇼였다.
“네 목소리와 잘 어울리긴 한데 너랑 어울리는 곡은 아니네. 이렇게 아늑하고 잔잔한 곡 불러 보는 건 처음 아냐? 좀 의외다.”
“맞아. 레이디가 습작이라면서 창고행이 될 뻔 한 걸 내가 마음에 들어서 건져 왔거든.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스타일이라서 시노미에게도 물어보려고.”
“이런 곡은 히지리카와군에게 묻는 게 제일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 중에서 가장 섬세한 노래를 부르니까요.”
“그 녀석 조언은 됐어.”
유독 마사토에게는 머리를 숙이기 싫어하는 렌을 보며 토키야도 쇼도 한숨을 쉬었다. 렌은 가장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편이지만 후계자 의식 때문인지 마사토를 앞에 두면 유독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곤 했다. 프로가 되자 좋은 의미로 비교하며 향상심을 가질 일도 늘었지만, 학창시절부터 불태웠던 라이벌 의식은 완전히 버릴 수 없는 모양이다.
“제목이나 곡조를 보면 표현하고자 하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행복의 기준은 모두 제각각이니까요. 노래로 표현 하는 법도 달라 질 수밖엔 없죠.”
“예를 들어 준다면?”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군요.”
한 숨을 쉰 토키야는 주변을 몇 번 둘러보았다. 점심 겸 아침을 먹은 후 셋은 사이좋게 사무실 아래에 위치한 찻집을 점령한 지 얼마 안 되었다.
운 좋게도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탁 트인 찻집에는 선반 정리를 하는 점원뿐이라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을 거라 판단 한 토키야는 목을 가다듬었다.
아주 짧은 순간. 그녀가 쓴 곡이 생명력을 가지고 다시 태어나서 세 사람의 귓가를 울렸다. 일 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토키야는 쇼와 렌을 사로잡으며 그녀의 악보 위에 실려 있던 음악을 노래했다.
“토키야는 참 호소력이 강하단 말야. 나라면 좀 더 힘차게 불렀을 텐데.”
“쇼는 저와 창법이 다르니 표현법도 다르죠.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에요 렌.”
“알아, 알아. 그래서 표현방법이 아닌 생각을 물어본 거야.”
렌은 손을 몇 번 내저었다. 토키야와 쇼가 묘한 표정으로 렌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는지 렌은 악보를 정성스럽게 정리했다.
쇼는 턱을 괴고 렌의 입가에 걸린 잔잔한 미소를 바라보았다.
사오토메 학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다른 웃음이다. 요즈음의 렌을 보고 있으면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냐며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몇 년 사이, 렌은 정말 많이 변했다. 오늘 다시금 깨달았다. 분명 변하게 한 건 나나미다.
“애초에…….”
“응?”
“번지수가 틀린 거 아냐? 이 곡은 나나미가 쓴 거잖아. ‘행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니. 그런 걸 우리에게 물어보면 안 되지.”
“…….”
렌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쇼는 ‘안 그래?’ 라며 눈빛으로 토키야에게 물었고, 토키야 또한 그 말에 동의하듯 끄덕였다. Be happy, 행복에 대해 곡을 쓴 게 하루카라면 곡조에 관한 건 물론이거니와 ‘행복’이라는 감정에 대해 물어볼 상대는 자신들이 아니었다. 그런 당연한 사실을 렌이 모르고 있을 리는 없을 텐데, 신기한 일이었다.
할 말을 찾지 못 한 걸까. 말을 아끼는 렌에게 두 사람은 뒷말을 채근하지 않았다. 가만히 악보를 내려다본 렌은 피식 웃었다. 기쁜 것 같기도 하고, 안타까운 것 같기도 한 묘한 웃음이었다.
“말 했잖아, 참고하고 싶었던 것뿐이야. 곡에서 느껴지는 행복한 감정이 조금 낯설었거든.”
“곡의 느낌을 말하는 거야?”
“응,”
“그럼 더더욱 나나미에게 물어보면 되잖아?”
도통 이해가 안 가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쇼를 향해 렌은 묵묵히 웃어 보일 뿐이었다.
사오토메 학원의 아이돌 코스는 아이돌이 익혀야 하는 발성이나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음악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작곡과 작사 또한 가르친다.
작곡과 작사 공부는 둘 다 아이돌을 지망하는 학생에게는 실습 체험보다 심심하고 집중력을 붙이기 어려운 과목이다. 나 역시 불성실하게 임했던 적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녀와 진지하게 우승을 노리기 시작 했을 때는 페이퍼 테스트 상위권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다고 장담한다.
그 시절엔 헛되게 쓴 시간이 아까워서 졸업이 가까워질수록 무엇 하나 잊지 않았다. 사오토메 학원에서 배웠던 작곡에 대한 기술도, 요령도 전부 기억한다. 마음먹는다면 써낼 수 있을 것이다. 노래로 풀어낼 수 있다. 그녀와 지내고 있는 행복한 시간을 자랑스러운 노랫말로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알면서도 생각을 멈추게 하는 건 이따금 나를 괴롭히는 문제 때문이다.
기억의 한 쪽에 먼지 쌓인 필름을 천천히 재생시킨다면 뭐가 흘러나올까. 아마 망가진 콘서트 비디오테이프나 부서진 CD들. 찢겨나간 앨범 자켓. 가족 모두가 사랑했던 어머니를 쏙 빼닮아버렸기 때문에 오히려 미움을 사버린 어린 도련님 한명이 훌쩍거리고 울고 있을 테다. 그 나이대의 아이가 바라고 누군가에게는 당연했을 애정 한 줌에 매달리며 전전긍긍하던 시절이 있었다. 마지막 남은 어머니의 음악 하나를 구명줄이라도 되듯 꾹 쥔 채 집을 나왔던 순간이 있었다. 목이 메일만치 바라고 그려왔던 행복의 부재. 구멍이 뚫린 가정. 상냥하게 뺨을 쓰다듬어주던 어머니의 손이 없다는 점에 절망했고 자랑스럽게 아들로서 아버지의 곁에 있지 못하는 게 그토록 슬펐다. 마지막 결정타는 아마 애타는 호소했던 시선이 형에게 외면 받았던 순간이었을 거다.
부족한 건 없었지만 가장 원하는 건 없었다. 행복이 너무 멀다는 걸 지나치게 일찍 알아 버린 것이다.
지금이야 그런 시절이 있었다며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로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기억들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딘가에 잠들어 있고 언젠가는 깨어난다.
이따금 깨어난 기억을 양분삼아 괴롭혀오는 건, 아주 간단한 문제다.
너무 간단하기에 그녀는 고려조차 해보지 않았을 문제.
그러나 내게는 때론 터무니없이 어려운 문제가 되서, 관자놀이를 괴롭힌다.
그건 우리의 행복에 관해서다.
문제는 심플하다.
이런 빈말로도 행복하게 자라나본 적 없는 남자가 네 앞에 서 있다. 그녀가 노래하는 행복을 과연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공감할 수 있는 걸까. 제대로 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내가 느끼는 이 행복은, 그녀가 느끼는 행복과 같은 행복일까?
헤드폰을 쓴 채 엄지를 치켜드는 그녀의 모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그 순간만큼은 그녀의 기대에 응할 수 있는 남자라는게 그토록 다행스러울 수가 없다.
자문했다.
만약 내게 행복을 노래 해 보라고 하면 나는 어떤 곡을 지을까.
내가 만든 그 곡은, 그녀가 만든 행복의 노래와 같은 음을 자아낼 수 있을까.
그녀가 생각하는 행복과 내가 알고 있는 행복은 과연 똑같을 거라고 장담 할 수 있을지.
심플한 문제 앞에서 나는 언제나 망설인다.
“그럼 더더욱 나나미에게 물어보면 되잖아?”
물어보면 되는 문제인가?
알 수 없다.
“다녀왔어 허니.”
“어서오세요, 달링. 일찍 오셨네요.”
화사하게 피는 꽃처럼 웃으며 그녀가 말했다. 폭신한 슬리퍼를 끌며 다가오자 가볍게 이마에 입을 맞추며 다시금 인사했다. 미리 보고 싶어졌으니 만나러 가겠다는 문자를 넣어놔서인가. 마음대로 스페어키를 사용해서 들어 왔는데도 그녀는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웃음을 건네며 귀로를 맞이해 주는 연인이 있는 일상이다.
집 안을 떠도는 오렌지 페코 향내를 맡으며 거실로 다가갔다. 테이블 위에는 악보 몇 장과 함께 이어폰이 흐트러진 채 놓여있었다. 슬슬 저녁을 먹을 시간대인데도 식사를 한 것 같진 않았다. 기다려 준걸까.
“뭐 하고 있었어?”
“달링의 곡을 쓰고 있었어요. 아직 미완성이지만요.”
“나랑 똑같네. 나도 오늘은 미완성인 허니의 곡에 쭈욱 매달려있었거든.”
“제 곡이요?”
전혀 짐작 가는 게 없었는지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순순히 주머니에서 메모들을 꺼냈다. 하루카는 찬찬히 메모를 들여다보다가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아, 이건….”
“잊어버린 거야? 창고 행이라면서 허니가 숨긴 거긴 했지만 난 꽤 마음에 들었거든.”
“네. 잊고 있었어요. 미완성인 곡인데다가…다 쓰고 살펴보니 마냥 행복하다는 감정에 푹 빠져서 쓴 게 부끄러웠거든요.”
프로가 쓸 만한 곡은 아니죠, 그녀가 살포시 웃었다. 그런가. Be Happy 라는 제목에서도 대충 알 수 있었지만 역시 행복하다는 감정을 노래하는 곡이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솔직한 감정이 제대로 전해졌는걸. 담백하게 마음에 울리는 곡이라 아주 좋아.”
“…달링이 좋아 해 준다니 저도 기뻐요. 아직 다듬을 곳은 많지만요.”
“그래? 난 이대로도 좋다고 보지만…. 역시 허니는 대단해. 나도 이렇게 작곡으로 감정을 표현 할 수 있다면, 허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감정을 마음껏 표현 할 수 있을 텐데.”
사오토메 학원에서 ‘행복’이라는 주제로 곡을 써 보란 과제가 있었다면 분명 내가 만든 곡은 그녀가 만든 곡과는 달랐을 거다. 나는 쓰게 웃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 내 손을 결코 놓지 않는다면서 미소를 보여주는 그녀를 볼 때면, 나는 가끔씩 과분하다는 단어를 떠올린다.
아무런 사심 없는 순수한 감상을 들려주었기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는 말. 네 목소리와는 어울려도, 너와 어울리는 곡은 아니네. 솔직하게 말한 친구의 감상이 귓가에서 한 바퀴 돌다 사라진다.
“사람은 똑같을 순 없어요. 달링에게는 달링의 표현 방식이 있잖아요. 전 달링처럼 노래 할 수 없는걸요. 그래서 달링도, 달링의 노래도 정말 좋아요.”
“…….”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어루만졌다.
장미를 선물하고, 사랑의 미사여구를 사용하는 나보다도 훨씬 더 자연스럽게 애정을 쏟는 방법을 하루카는 알고 있다. 조심스레 쓰다듬는 손가락이나 품 안으로 파고드는 방법. 부끄러워하면서도 결코 피하지 않고 진심을 전해오는 행동은 분명 내가 바라던 행복한 가정에서, 가지지 못한 애정을 경험했기에 가능 한 일이겠지.
“그럼 더더욱 나나미에게 물어보면 되잖아?”
때때로 오늘처럼 그녀의 음악을 앞에두고 마음이 흔들리는 날이 있다. 관자놀이를 괴롭혀오는 짓궂은 물음을 떨쳐내지 못한다.
같은 곡을 앞에 두고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 제각기 다를지도 모른다. 그녀가 생각하는 행복과 내가 알고 있는 행복은 과연 똑같을 거라고 장담 할 수 있을지, 도저히 혼자서는 답을 낼 수가 없다.
이래서야 사랑의 전도사는 당분간 폐업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곡, 정말 허니의 행복이 가득 담긴 노래라서 마음에 들었어. …허니는 지금 행복해?”
“……달링은요? 달링은 행복한가요?”
예상치도 못한 질문이었다.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거라 생각했었더니 오산이었다. 그녀가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조금 얼떨떨한 반응을 보이는 내게 하루카는 눈을 빛냈다.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자 말 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만 같은 착각조차 일어난다.
내가 행복하냐고?
대답은 정해져 있어서 오히려 표현하기가 힘들 지경이다. 그런 질문이 어딨어.
나는 하루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물론이야. 네가 곁에 있다면 난 행복해. 허니의 노래를 스테이지 위에서 부르며 함께 사랑을 외칠 수 있는 순간을 행복이 아니라면 뭐라 말 하겠어.”
“저도 그래요.”
딱 잘라서 하루카는 말했다. 미숙한 노래가 쓰인 메모를 함께 바라보던 것도 잠시. 허리를 감아오는 가녀린 팔만이 이 순간의 전부다.
그녀는 이렇게 작은 행동 하나만으로도 진구지 렌이라고 하는 보잘 것 없는 남자를 지탱해 나갈 힘을 준다.
“이렇게 상냥하게 말해주는 달링도, 달링이 불러주는 노래까지… 모든 게 절 행복하게 해요.”
“…….”
목이 매인다.
행복한 가정에서 지냈다고 말 할 수는 없었으니까, 바랬던 행복의 형태도 받아온 행복의 크기도 전부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다를 수밖에 없겠지.
아무리 머리로는 잘 이해하고 있다 한들 안타까움은 좀처럼 머릿속에서 떨어져나가질 않았다. 그녀가 전해주는 행복을 전부 이해하고 그만큼 돌려 줄 수 있는 남자인지. 혼자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달링이 행복하다면 저도 똑같이 행복한 거 에요.”
이제야 비로소 같은 행복을 느끼고 있는 거였다고, 겨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안도했다.
“고마워 하루카.”
나는 잠깐이지만 혼자서 너털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세차게 껴안는 건 정말 간단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다. 하루 종일 품고 다녔던 악보가 떨어지는 걸 모른 채 하며 나는 하루카에게 입을 맞췄다.
그녀의 작은 심장이 떨리고, 깍지를 낀 손을 놓고 싶지 않은 저녁. 복잡한 마음들을 전부 씻어준 상대를 앞에 두고 한 마디도 못하게 되는 벅찬 마음이 있다.
난 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고 싶다.
심플한 문제만큼이나 그녀의 답도 간단했다.
더 이상 테이블 앞에서 서성이는 일은 없으리라.
물어보면 되는 문제인가?
그래. 그런 문제다.
사랑의 전도사는 당분간 폐업이다.
'2D'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빛과 틈 (1) | 2013.04.07 |
---|---|
도시락으로 단판 승부! (1) | 2013.03.21 |
할로윈의 과자는 정중하게 건네주세요. (1) | 2012.11.01 |
사소하기 때문에 돌이 킬 수 없다. (1) | 2012.10.27 |
할로윈 마사코 + 주변에서 투척해준 과자로 얻어맞아서 기분 나쁜 무라사키바라 (0) | 2012.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