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할로윈의 과자는 정중하게 건네주세요.

RSW 2012. 11. 1. 03:41






눈에 띄지 않을 래야 않을 수 없는 사람이 종종 있다. 거동이 불편 할 정도로 살 찐 사람이나, 멀쩡하게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 사이에서 툭 튀어나와 있는 커다란 체격의 소유자. 요센 고등학교 농구부에는 특히나 그런 인물들이 많았고, 그 농구부의 여 감독은 그런 부원들의 뒷모습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




"무라사키바라! 마침 잘 됐다. 이리 좀 와."

"…응? 어라…마사코찡?"

"감독이라고 불러!"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바라본 무라사키바라는 프린트와 잡다한 물건이 담긴 커다란 상자를 든 마사코를 부름에 멈춰 섰다. 저 커다란 체격을 보고 발견 한 거긴 하지만 새삼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덩치는 곰처럼 커다랗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무슨 일이야? 귀찮아…."

"뭘 했다고 귀찮다는 거야. 수업 끝났지? 자 이거랑 이거, 전부 부실에 가져다놔."

"에엑, 내가 왜. 직접 하지?"

"손이 부족해. 다음 대전 상대의 DVD니까 투덜거리지 말고 얼른 가져다 놔."

"…귀찮아 진짜…게다가 무거워."




마사코는 조금 의아했다. 평소라면 툴툴거리긴 했어도 하는 말은 재깍 들을 녀석 건만. 미적거리는 모습이 어쩐지 평소와는 달라보였다. 한 손에 들려있는 쇼핑백에는 입에 달고 다니던 과자도 잔뜩 담겨져 있는걸 보면 무라사키바라가 기분이 나쁠만한 이유는 별로 없을텐데. 마사코는 상자를 넘겨주며 이유를 물었다.




"무라사키바라. 무슨 일 있었어? 표정이 별로잖아."

"딱히 없어."

"그런 것 치곤 미간에 주름 졌다. 좀 펴지 그래?"

"……그치만 다들 사람 얼굴에 과자를 던지고 도망가 버리잖아. 열 받는단 말이야."

"뭐?"




이번에는 마사코의 미간도 똑같이 찌푸려졌다. 한 순간 교내의 폭력 서클이나 학원 폭력이라는 단어가 스치고 지나갔지만 상대가 2m의 거구다. 농구부는 물론이고 전교를 다 뒤져봐도 이 커다란 녀석을 린치 할 만큼 담력 좋은 녀석이 있을 리 없지. 

마사코는 무라사키바라가 들고 있는 쇼핑백을 다시금 자세하게 바라보았다. 박쥐 모양이 과자와 호박무늬 포장지. 머잖아 '아' 하고 소리를 내며 마사코는 손가락 끼리 부딪치는 것과 동시에 어떤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랬지.




"오늘 할로윈이었지. ……무라사키바라, 설마 과자를 안 주면 장난치겠다고 으름장이라도 논 거냐?"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애도 아니고."




웃기는 소리, 어딜 봐도 애잖아. 일축하는 마사코와 달리 무라사키바라의 얼굴은 아까 전 보다도 더욱 부루퉁해져 있었다. 무라사키바라는 화가 나면 걷잡을 수 없이 날뛰는 편이긴 해도, 그 가능성조차 평소의 안일한 태도에 먹히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까지 모난 상태로 혼자서 툴툴거리는 건 꽤 보기 드문 편이었다.




"아침부터 다들 그런 거야?"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여자 애들은 거의 대부분 줬어. 잘 모르겠지만 자는 동안에도 받았었고…왜 다들 과자를 내던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




입은 열지 않았지만, 상상은 가능했다. Treat or Trick. 사탕을 안 주면 장난친다는 귀여운 악동들이 활개 치는 할로윈 데이. 평소에도 무지막지하게 과자를 달고 다니는 무라사키바라 인 만큼,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던 걸지도 모른다. 산만한 덩치의 무라사키바라가 치는 장난이라면 잠깐 안아들기만 해도 이미 짓궂은 장난이 되니까. 클래스 메이트 전원이 되도록 과자를 주고 멀리 피해있자는 단체심리 때문인지, 한결같은 태도로 반응 하게 된 모양이다. 

마사코는 어쩐지 무라사키바라를 향해 과자를 던지고 우르르 피해 다녔을 클래스 메이트가 지나치게 상상이 잘 갔다. 게다가 요센 고등학교의 특이한 학풍은 할로윈 같은 서양 연중행사에 우호적이니 다들 이상하게 보지도 않았으리라. 

투덜투덜 거리던 무라사키바라는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꼬며 복도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덕분에 아침부터 사탕에 과자, 초콜렛까지 전부 얻어맞았단 말이야. 아… 귀찮아. 얼른 가서 자려 했는데…."

"오늘은 연습이야! 빠질 생각은 엄두도 내지 마라."




딱 자르며 마사코가 엄포를 놓자 무라사키바라에게선 또다시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알았어. 알았다고. 

등을 굽히며 터벅터벅 걸어나가기 시작한 커다란 등을 보며 마사코는 작게 볼을 긁적였다. 어쩐지 오늘 따라 이곳 저곳에서 과자니 사탕이니, 전부 나눠 받았던 이유가 할로윈이라서였나. 제자고 선생이고 할 것 없이 조금씩 나눠주던 걸 생각 없이 받았지만 전혀 눈치 채질 못했다. 다음 농구부 상대를 분석하는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날짜도 까맣게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받은 과자니 초콜렛이니, 생각 없이 가지고 있다가 방금 전 방과 후 청소를 하던 아이들에게 줘버리고 나와서 주머니가 텅 비어있었다.

아…잠깐만.




"무라사키바라! 이거 먹어."

"…응?"



다시금 게슴츠레 눈을 뜨며 뒤를 바라본 무라사키바라를 향해 마사코는 손을 뻗었다. 상의 포켓에 딱 하나, 남아 있던 건 작은 알사탕뿐이었지만 이거라도 어떠냐 싶어 마사코는 작은 사탕을 꺼내들었다. 무라사키바라는 어지간히도 의외였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줄게' 라면서 선뜻 호의를 내비치는 모습이 오늘만은 드문 하루여서 더 놀라운 걸지도 모른다.




"하나 밖에 없지만 할로윈이니까. 그거 다 옮기면 제대로 상도 줄게. 포테토칩이면 되지?"

"와, 정말? 고마워 마사코찡-"

"감독이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아쉽게도 첫 호의마저도 결국 사탕과 함께 무라사키바라의 얼굴로 날아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