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21# 착한아이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아쉽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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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동 바깥의 차가운 새벽바람에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것 같았다. 나 따위보다는 훨씬 더 강한 사람에게 머플러를 빌려주자 비로소 셔츠 안으로 기어들어오는 뼛속까지 시린 공기가 정신을 일깨웠다.
물끄러미 스위치를 바라본 다음 학교를 한 번 둘러보았다. 어두운 학교. 벌써 심리적으론 이곳에 며칠째 갇혀있는 건지. 바깥과는 시간축이 다르다고 한들 할아버지나 이런 저런 상황들이 안 좋은 쪽으로 굴러가는 순간 끝장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좋지 않은 쪽으로는 생각하지 않으려 그토록 애를 썼건만. 모든 것이 허사였다. 한 번 발이 걸려 넘어졌을 뿐. 고작 그 뿐인데도.
- 거기에 내가 돌아갈 곳이 정말로 있다고 생각해?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도대체 몇 번이나. 앞으로는 몇 번이나 말을 해야 알아주는 것일까. 너희가 위험하다고 내가 가장 곤란했을 때 도와준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데 왜. 원망하라는 말만을 들으며 나를 도와주었던 스위치로 그들과 맞서고 있는 거지. 나의 말 따위는 어쩌면 평생 전해지지 않는 걸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짓이란 거야?
도대체 몇 번을 더 고집스런 주장 앞에서 절망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 순간이 지독하게 피곤해졌다. 모든 걸 관두고 싶을 정도로. 그저 끝났으면 하고 바랄 뿐이야. 모든 것이 잘 되기를 바라며, 그저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그렇게 생각하며 정한 길이었으면서도, 똑같은 말들을 몇 번이나 반복하느라 지쳐버렸다.
포기하고 싶어졌어. 그래서ㅡ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에 절망하고 말았다.
“……사실은 말이죠.”
누구에게 전하는 것인지 모를 혼잣말이 맴돌았다. 사실은 말이에요, 쭉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이 있다면 믿어주겠습니까. 용서와 화해, 그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ㅡ우리는, 아니 나는. 너무 명백하게 볼품없고 힘이 없어서 분명한 절망 앞에서 그저 위로하는 말들로 발버둥을 치는 것이 고작입니다. 작고, 초라하고 허황된 말들로 소망에 가까운 위안들을 토해내고 있어요.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사람을 향한 원망이 사라질 것 같지는 않아요.”
아스트로 스위치. 코즈믹 에너지. 조디아츠. 실험. 전대 부장. 슌도 코우스케. 키류 신. 초신성. 더 홀.
ㅡ가면라이더부.
그래요 가면라이더부. 나는 그저 이 곳이 좋을 뿐인데.
“…이 이상으로 착한아이 따윈 무리야. 빌어먹을.”
더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어떤 기분으로 웃으면서 지냈던 건지 기억나지 않는 것만 같아서, 초조해져버렸습니다. 새카만 밤거리에 맨몸으로 던져진 이런 감각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좋을까요. 웃었던 방법을 어떻게 기억해내야 할까요.
…이런 얼굴로는 당분간 부실에는 돌아가지 못하겠습니다.
한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