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14 이 푸른 지구별에서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다.
가끔은 짜증나게 하지만, 아직도 이 푸른 지구별에서 두 발을 딛고 발버둥 치고 있는 귀여운 동생에 대한 이야기다.
*
부모님이 가정법원에 다녀오는 동안 남동생과 혼자서 남겨진 16세 중학생의 기분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혹시 모른다면, 꽤나 심란하다고 알려주고 싶다.
이 와중에 10살짜리 남동생이 주먹 만 한 혹을 달고 와서 눈물을 꾹 참고 있기까지 하거든.
집안은 조용했다.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싸늘한 거실 테이블을 손톱 끝으로 툭툭 건드려도 변하는 건 없다.
현실은 퍽 냉정했다. 어딘가에 하소연을 하고 싶어도 털어놓을 상대는 좀처럼 보이질 않는다.
결국 16세의 중학생에게 가능한 것이라곤 얌전히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법 뿐이다.
동생의 손을 잡은 채 집 안에서 가만히 부모님을 기다리자니 사형일을 앞둔 사형수의 기분이 따로 없었다.
더더욱 기분이 쳐지는 것 같아 일단 무작정 집을 나오기는 했는데… 이게 또 산 넘어 산이다.
"타카히사. 너 자꾸 오리새끼처럼 주둥아리 내밀고 있을래."
"……."
대체 너는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신다고?
뚱한 표정으로 시선 한 번 안 마주치는 남동생을 한 대 쥐어 박아주려다 참았다. 친구는 때려도 가족은 때리지 말라던 답지 않게 상냥하던 아버지의 말이 생각나서 더욱 심란해질 뿐이었으니까.
나는 머리를 아무렇게나 묶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손을 내렸는데, 왠 일로 이 귀염성 없는 동생이 내 손을 꼭 잡아오는 게 아닌가.
"……에휴. 나도 모르겠다."
"……."
"앉자."
타카히사에겐 가방 안에 넣어온 초코 비스켓을 건네주자 얌전히 받아들이긴 했는데, 그것 뿐 이다. 좋아 한다던가 투정부린다던가, 과자 포장을 뜯거나 하는 행동은 하나도 없다. 그냥 가만히 내 옆에 앉은 채 바닥을 보고 있었다.
수족관 안은 한산했다. 평일 오후, 그것도 네 시 조금 지난 시각은 데이트 장소로도 미묘하고, 가족 관람객은 더더욱 적다. 평소라면 뺀질거리기 바쁜 남동생은 평소보다 부루퉁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내 손을 놓을 생각은 없어보였다. 진자 별 일이네.
"형은 아빠랑 엄마랑 헤어지면 누구랑 지낼 거야? 아빠는 아니지?"
"나? 글쎄…네가 결정하는 거 봐서 정해야지."
왜 그런 대답이 나오냐는 눈빛이 여전히 당돌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살아야 성이 풀리는 성격 덕인지, 벌써부터 심상찮게 학교에서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남동생인듯 한데…그래봤자 책가방 맨 초등학생이다. 무섭기는커녕 황당하지도 않아. 눈 깔아 임마.
"왜? 아빠한테 맞았잖아."
"아니 이건……."
타카히사는 핵심을 찔렀다.
그러게. 아버지한테 맞았는데도 아버지를 따라 가겠다는 고집을 굽히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남동생과 어머니와 함께 사는 선택도 있거든. 분명, 그 쪽이 더 쉬울텐데.
아버지는 직업이 직업인만큼 가족을 때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에게도 손을 댄 적은 없었고, 우리들에게도 거리를 둘 지언정 손을 들지 않으려 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실컷 반항한 결과는 볼에 붙은 대형 반창고다.
아직도 화끈거리는 볼을 어루만지고 있자, 코우세이는 왜 때리냐며 앙칼지게 소리치던 어머니와 기가 질렸던 타카히사의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그래도 꽤 괜찮은 가정이었다고 생각했는데 한계는 있었다.
우울하게, 조금씩 침몰해가는 감정들은 마치 바닷속 한 가운데에 있는 기분이었다. 수족관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래. 바닷속에 있는 느낌이다.
우리 형제는 지금 가라앉아있다.
*
"그래서 너는 왜 싸운건데."
"……."
수족관 의자 한가운데에 앉아서 물고기에게는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는 형제. 다른 사람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형은 아버지에게 맞아서 볼에 반창고, 동생은 학교에서 싸우다가 이마에 혹.
잘하는 짓이다.
"몰라."
"허어?"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타카히사의 입은 댓발 나와 있다. 대체 얘는 학교를 어떻게 다니고 있는걸까. 그러고 보면 누구랑 싸웠는지도 안 물어봤었지. 나도 백점 만점의 형이라곤 할 수 없겠다.
"친구들이랑 싸웠어?"
"걔네들 내 '친구' 아니야. 반 애들이야."
"……반 애들이랑 왜 싸웠어?"
"난 잘못 안했어. 근데 걔네들이 자꾸 청소시간에 어항 깬 게 내 탓이라고 그랬다고!"
이놈 참 목청도 크다. 왜 버럭 화를 내고 난리야. 저도 모르게 짜증이 밀려 들어와서 눈썹을 치켜떴는데, 타카히사는 뭔갈 오해했나보다. 상당히 억울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나는 아무 잘못 안했어."
"……알았어."
"난 잘못 한 거 없어. 진짜야."
"알았다니까?"
동생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해갈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제대로 위로처럼 들리지 않을 말 뿐이다. 한심하지. 내년이면 고등학생인데 남동생 하나 달래는 법도 제대로 모르고.
하지만 우리 '하뉴' 형제들는 아마 이런 서투름이 유전 인 것 같다. 아버지의 유전 말이야. 그러니 어쩔 수 없어. 난 울음을 터트리는 동생에게 '울지 마.' 라는 말을 한다고 해도, 그 다음에는 네가 나쁘지 않다는 말보다 '사내 대장부가 우는 거 아냐.' 라는 말을 붙여 주고 마는 걸.
"미안 타카히사."
"……."
동생의 표정은 묘하게 변한다. 그렇게 막간의 대화는 다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가만히 내 손을 잡고 있던 동생이 물었다. 제 딴에는 아무 생각 없을 수도 있고, 어쨌든 금방 잊어버릴 수 있는 그런 내용이겠지만 훗날의 내게는 꽤 오랫동안 기억에 박힌 그런 질문이었다.
"있잖아 형. 여기 진짜로 지구야?"
"……뭐?"
"여기 지구별이냐고."
얼마나 어이가 없는 질문이었는지 반문했는데 타카히사는 되려 빤히 나를 바라본다. 이 녀석 우주에 대한 개념이 있는 건가, 라는 점은 일단 제쳐두자. 지구과학을 몇 학년 때 배웠는지 기억이 날 리 없잖아.
"지구지."
질문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러자 타카히사는 심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몰래 엿들었을 때의 표정과 비슷했다. 처음에는 나도 그래봤자 고작 열 살 주제에 뭘 알겠나 싶었지만, 이혼 협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타카히사의 변화는 나만큼이나 눈에 띄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왜 그렇게 놀라는 건데?"
"당연히 놀라지. 형 바보냐?"
"내가 왜 바보냐? 여기가 지구인 거 모르는 사람은 없어."
"……여긴 푸르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은데?"
똘망한 표정으로 이 녀석이 나를 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복잡한 기분이 든다.
그러게. 푸르른 지구별, 아름다운 지구별, 그런 말들로 누군가는 우주와 지구를 노래하는데 너에게는 왜 그렇게 비춰지지 않은 걸까. 고작 열 살짜리의 어린아이의 시선 안에서… 가장 아름답고, 모든 것이 찬란하게 빛나야 하는 나이인데도 너는 왜 지구가 아름답지도 푸르지도 않다고 느끼는 걸까.
딱히 나조차 지구가 푸르고 아름답다고 생각 해 본적은 없었다. 하지만 타카히사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궁금증이 치밀었다.
"왜 그런 걸 묻는데?"
타카히사는 잠시 입을 닫았다.
다만 침묵은 길지 않았다.
"오늘 말이야. 어항을 깼는데."
또 그놈의 어항이냐. 그래서 누가 깬 건데, 라고 물어보려다가 참았다. 보기 드물게 침울한 표정이다. 녀석. 진짜 심란한 기분인가보다.
"선생님이 친한 애들이랑 같이 조를 짜라고 했는데, 난 친한 애들도 없어서 조에 안 들어갔어. 근데 오늘 '조별 청소'를 하라는 거야. 난 걔들이랑 같은 조가 아닌데."
"……."
"청소를 빠지려고 했는데 애들이 내게 화를 냈어. …왜? 왜? 나한테 화를 내? 나는 정말로 잘못 한 거 없는데."
어린아이의 논리는 나름대로의 진지함을 가진다. 비록 어른이 따라갈 수 없는 논리라고 해도 말이다. 공동체의 책임이라던가, 단체 생활 등등 해줄 말은 산더미처럼 많지만 일단은 타카히사의 말에 집중했다.
어느새 과자는 나나 타카히사의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대신 서로의 얼굴을 보는 데 집중하게 되었다.
"다 나한테 잘못했다고 해. 그런데 난 정말로…정말로 잘못한 게 없어."
"그래서 어항은 누가 깬 건데?"
"……몰라."
이내 동생의 진심이 흙바닥에 내던져진 고기처럼 드러났다. '나는 아무 잘못 없어'는 '몰라'가 되었구나.
나는 작은 하뉴의 머리통을 내려다보았다. 어른에 비하면 역시 한 눈에 차이가 나는 크기인데도 벌써부터 수많은 생각들을 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이들의 머릿속이란 어른들 이상으로 넓은 우주가 펼쳐진 공간이다. 도저히 나로서는 따라 갈 수가 없다.
"아무 잘못 안했는데.…다들 내가 틀렸다고 해. 남들이 하는 말 때문에 이젠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 …사실 나는 화성인이 아닐까?"
방금 이건 웃어야 할 포인트였나?
더없이 진지한 본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웃을 수도 없고. 뭐랄까. 진퇴양난이 따로 없다. 하지만 고민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학급이라고 하는 작은 사회적 공간에서 군중 속의 고독을 맛보는 열 살의 남동생의 입에서 나올법한 말이다.
화성인이라.
역시 발상을 따라가는 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말이야.
"사실은 나는 화성에서 왔으니까, 지구에 사는 다른 애들이랑 다르고 틀린 게 아니야?"
"그럼 우리 둘이 형제니까 우린 화성에서 온 형제고?"
"응."
타카히사는 끄덕였다. 여기선 웃어야 할 포인트로구만.
소리를 내며 신나게 웃어재낀 내가 그렇게 이상했나? 아니면 비웃음을 산 것 같아서 골이 난걸까. 타카히사는 한참 날 노려봤다. 조금 풀어진 것 같던 기분은, 볼이 부풀어오른 것과 동시에 예전으로 돌아 간 듯 했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그런데도 나를 틀렸다고 해."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게 싫어?"
"……."
동생은 끄덕인다.
"…가끔은 있잖아, 사실은 그 애들이 맞는 거고 내가 틀린가 싶을 때가 있어."
"……."
"잘못 된건 나일까?"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별을 보며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지구 속 수많은 관계에서 겉도는 타카히사는 결국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만다.
사실은 옳은 것은 내가 아니라 나를 평가하는 이들이 아닐까. 잘못 된 것은 내가 아닐까. 만약 그런 거라면 나 자신을 폄하하는 것은 너무 가슴 아프니까 차라리 화성인 인건 아닐까.ㅡ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잔뜩 차오르는 눈물을 자존심으로 억누르는 열 살 짜리 남동생이다.
고민하는 방식조차 서툴기 짝이 없다. 그래서일까. 타카히사는 그 만큼 사랑스러웠다. 내게 가만 눈을 향하며 대답을 원한다. 그리고 내가 해줄 수 있는 답은 아주 한정 되어있다.
묘한 기분이었다. 부모님은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으러 갔고, 시각은 네 시가 넘어서 아마 그들의 차례를 맞이하여 한창 수속이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마도 따로따로 갈라져서 살게 될텐데. 이제와 새삼스레 네가 사랑스러운 동생이라 해도 변하는 건 없을텐데. 신기하고 안타깝지. 너를 이해해줄 순 없지만, 그저 이대로 보는 것 만이라면 언제까지나 해줄 수 있을텐데.
"사실은 내가 잘못 된 거라면, 난 어떻게 해야 돼?"
"글쎄…."
"다시 태어 날 수도 없잖아."
"너 열 살이거든?!"
"형이 어떻게든 해봐!"
아. 진짜 이 정신 사납고 시건방진 남동생놈. 왜 다 나한테 맡겨 버리는 걸까? 일단은 나도 열여섯, 아직 미성년자라서 네 고민 따위 해소는커녕 들어주기도 벅찬데 말이야. 머리를 벅벅 긁고 있는데, 작은 주먹으로 괜히 내 팔을 퍽퍽 치는 게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게다가 은근 아파!
"아 고만 해. 그만 때려!"
"…어떻게 좀 해줘. 형이."
"……."
"해 봐. 형은 할 수 있잖아."
"…화성인이면 뭐가 또 어떻다고 울기까지 하냐?"
"안 울어."
거의 울기 직전이잖아.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에서 고집 부려봤자. 여섯 살이나 많은 형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는 걸, 언제쯤이면 알게 되는 걸까 이 동생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카히사가 뭐가 그리 서러웠던 건지, 나로선 알 길이 없다.
남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혹은 남들과는 다른 자신? 청소시간에 느꼈던 조별 활동 사이의 갈등? 어항을 깨서 죽였을 금붕어를 향한 죄책감? 어떤 것인 지 알 수 있을리 없지. 다만 이 푸른 지구별을 언젠간 떠나야 할 곳처럼 느끼고, 자신을 화성인처럼 느끼고 있는 거라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란 극히 한정된 행동이다.
"타카히사."
"……."
"타카히사. 형 좀 봐."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 행동은 대단치 않았다. 그저 어깨만한 넓이로 발을 벌리고 동생을 몇 번 부르는 게 다였다. 발차기라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타카히사는 고개를 들어서 나를 응시했다.
"지금 형이 뭐 하고 있지?
"...몰라."
"자세히 봐봐."
"서 있어."
대답을 하면서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이다. 타카히사의 손톱은 여전히 애꿎은 수족관 의자의 시트를 뜯으려 하고 있었다. 저 손가락에서 힘이 빠졌으면 좋겠는데.
"그래. 지구별 위에서 형이 서있어. 그렇지? 그래 보이지?"
나는 보란 듯이 수족관 바닥을 탁탁 발로 두드렸다.
타카히사의 시험지는 매번 빨간 작대기의 연속이다. 빈 말로도 영특한 동생은 아니라서 중력이라던가, 화성인이 지구별에 숨어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걸… 아니 애초에 화성인이 없는 것부터 이해시키는 게 큰일 일 거다.
'네가 틀리지는 않았지만, 좀 더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렴.' 같은 말도 먹히지는 않을 테지. 그 결과로 독박을 뒤집어 써야 하는 건 내가 되어버린 셈이지만 이상하게 싫은 기분 인 건 아냐.
"네가 남들과 틀리고 달라도, 혼자 화성으로 떠나지 않게 계속 여기서 널 붙잡고 서있을게. 그거면 될까?"
"……."
"푸르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곳이지만 떠나지는 마. 형이 있어줄게."
아. 끄덕였다.
타카히사는 고개를 떨궜지만 작게 끄덕였다. 어떤 말에 저 떼쟁이가 생 때 부리기를 관둔건지 잘 감이 안 오지만 괜찮으려나. 괜찮아. 울지만 않는다면 그걸로 된 거야.
"타카히사. 집에 가자."
"……응."
여섯살 차이가 나는 형제가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할 '집'으로 돌아가자.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잡은 손을 놓게 되겠지만 말이야.
우리 형제는 부모님의 앞에서 누구를 따라갈 지 정해야 할 것이다. 아직 어머니의 치마폭에 둘러싸이는 걸 좋아하는 타카히사는 어머니를 따라 갈 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가족과 자신의 일을 양립하려 표독스럽게 고집 피운 아버지를 외면하지 못하고, 맞는 한이 있어도 아버지를 선택 할 것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우리는 따로 살게 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어. 지금처럼 무책임한 말을 해 버린 건 형으로서 실격일지도 몰라.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내 손이 전부라는 듯 꾹 잡고 발버둥 치는 동생이 있다.
이 멍청한 동생이 지구를 벗어나지 않게 푸른 지구별의 표면 딱 밟고 서 있는 수밖에.
나는 형이니까 이 푸른 지구별이 멸망하기 전까지 타카히사를 향해 계속 전파를 보낼 것이다.
여기는 푸르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지구별. ㅡ회항하라. 화성으로 떠나려 하는 방황하는 우주선이여.
*
이주 후 나와 타카히사는 부모님의 이혼 때문에 떨어져 살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러 가겠다던 다짐이 무색해지게, 다른 현에 살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형제가 얼굴을 마주 치는 것은 자주 있어봐야 한 달에 한 번이 되었다. 그래도 반년에 한 번은 가족이 모여 외식을 했으니, 이 정도면 조금 어중간한 해피엔딩이 될까?
그 날 나누었던 대화를 아직도 기억 하고 있을까 싶어서 어느 날 넌지시 물어보자, 타카히사는 대답이 없었다. 단칼에 헛소리 하지 말라는 대답이 아닌 걸로 봐선 아마도 기억 하고 있는 모양이다.
정확하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그 대화가 타카히사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니 알고 있는 사실만을 말해볼까.
그 날 '푸른 지구별'에 대해서 주절거렸던 동생이 퍽 기억에 남아서, 나는 예전에 우주인재양성을 했다는 아마노가와 고등학교로 진학해서 평범하게 졸업했다. 그리고 타카히사는……모르겠다. 정말 중학교 3년 간 잠깐 안 봤을 뿐인데, 어느새 저렇게 귀염성 없고 재미없고 뚱한 녀석이 되어버렸는지. 하여간 진짜 사람 일은 모르는 일이라니까.
"다녀왔어."
"아. 왔냐? 재밌게 놀았어?"
"그럭저럭. 지루하진 않았네."
"너 쿨한 척 하는 것도 병이다. 선물은?"
타카히사에게서 대답 대신 뭔가 이상한 인형과 과자상자 같은 게 날아왔다. 뭐야 이 이상한 펭귄 인형은? 무지 맛없어 보이는 과자인데? 이러니까 여친도 없는 사내놈한테는 선물 같은 거 기대 하면 안 된다니깐.
"그냥 얌전히 먹어라 형은 좀."
"알았다 알았어."
손사래를 치며 한숨을 푹 내쉬고 있자, 타카히사는 부지런히 신발을 벗고 정리 한 다음 보스턴백을 짊어 진 채 제 방으로 직행한다. 며칠 떨어져 있긴 했었지만 전혀 섭섭해 하거나 아쉬워하는 기색은 안 보이는걸?
'키렝귄 깜짝 쿠키' 라는, 뭔가 영문을 알수 없는 지방 특산품을 가만 바라보다가 나는 타카히사의 뒷모습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난생 처음 들어봤다는 동아리, 아마도 처음이었을 동아리 활동.
"타카히사."
"왜?"
"아직도 넌 네가 화성에서 온 것 같냐?"
"…글쎄."
타카히사는 뒤를 돌았다. 눈동자를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굴리더니 어깨를 으쓱거린다.
"잘 모르겠어. 아직도."
이런. 아쉽지만 내가 지구별에서 발을 붙이고 살아야 할 날은 아직도 오래 남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