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 #07 미도리카와 슈지
누구에게나 예기치 못한 일들은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다가온다.
번호를 알고 있지만 제대로 연락 한 적은 없었던 상대에게서 걸려온 전화.
미도리카와 슈지라는 이름의 일곱 글자가 액정 화면 위로 뜬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또다시 학교에서 '괴물'이 나온건가 싶어서, 스위치를 찾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었다.
그랬었는데 말이야.
*
191cm의 커다란 사내놈이 혼자서 크레인 게임을 하고 있으면 보통은 아무도 말을 안 거는게 정상이다. 아니, 크레인 게임을 하고 있어서라던가 그런 문제가 아니라 내게 말을 거는 사람들은 아주 한정되어 있다고.
그런데 놀랍게도, 그 녀석은 태연하게 내게 다가오더니 같은 학교 학생이란 말로 신경을 마구 흐트려 놓았더랬지.
그 다음의 만남은 어디서였더라. 부실이었던가. '가면라이더 부' 라는 것은 어지간히도 독특하고 제멋대로인 녀석들의 집합소라 이상할 것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답례' 라는 이름으로 가지고 다녔다는 도베르만 인형이 눈 앞에 내밀어 졌을 때, 어찌 할 수 없는 난처함을 숨기지 못하고 빤히 바라보다가 비로소 깨달았다.
묘한 분위기. 가끔씩은 어딘가로 붕 떠서 사라질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독특하고, 마이페이스에 영문 모를 고집을 부리는… 나쁘지 않은, 그런 괜찮은 후배다.
한숨을 쉬고 웃으며 감정을 내비치는 모습을 가만 보고 있자 더욱 깨달은 감정은 확실했다. 이 비리비리한 녀석. 가만 내버려 두었다가 무슨 일이 생겼다는 말을 나중에 듣게 된다면 꿈자리가 꽤 사납겠지.
혼자서 끌어안고 끝내버릴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졌기에 핸드폰을 던주고 저장시킨 번호.
ㅡ연락 하라고. 혼자 짊어지고 뻗대다가 나동그라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했던 말을, 너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 "하뉴 타카히사 선배. 저… 선배를 좋아해요."
너무 늦었지만 이제야 생각이 미쳤다.
네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받아 들일 수 없는 말을 앞에 두고, 미안하다는 말 만큼 의미 없는 말은 또 없겠지.
*
수화기를 든 채 조금은 긴 시간 동안 침묵하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 말을 골랐던 것 같다.
"미도리카와."
그리고 이름을 입밖에 내는 순간 목 안쪽이 아파오는 것 같았다. 이유는 아마… 많다곤 할 순 없지만 같이 지내던 시간의 파편들이 찔러대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런 답잖은 감상적인 이유를 댈 만큼 동요하고 있구나. 전화기의 맞은편은 먹통이 된 것 처럼 조용했고, 그 침묵은 오히려 너의 모든 신경이 이 쪽에 쏠려있다는걸 실감하게 했다. 아마도, 아니 확실하게 그 마음은 진심이라고. 모를 수가 없을 만큼 또렷하고 확실했다. 그래서 단호하게 꺼내야 하는 말을 조금 머뭇거리고 말았다.
"…미안하지만, 어떤 의도였건 나는 받아 들일 수 없어."
성별이나 너와 나의 사이에 놓인 거리 탓이 아니다. 그저 지독하게 여유가 부족한 사람에게 있어, 너의 마음이 담긴 말과 호의는 너무 차고 넘치는 것이었다.
제 마음 하나조차 헤아리기 힘이 들었고 주저앉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리며 지내왔다.
그저 제 자신만 생각하기에도 벅찬, 그런 내게 있어서 지금 이 순간 전화기를 쥔 손은 무겁기만 했다. 그래도. 아무리 무겁다고 해도. 이 말만은 너에게 전해야 하니까.
"하지만…고맙다고 해야겠지."
이 말은 어쩌면 너를 더 화나게 하거나 비참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의미가 없으리란 걸 알고있다. 그래서 그 말을 하고 싶진 않다.
다만 얼굴을 붉히며 어색한 사이가 되더라도 전해야 하는 말은 있으니까. 나보다도 더욱 힘들게 전화기를 쥐고 있을 너를 생각했다. 이 순간 만큼은 오직 그 분에 넘치는 마음 하나 만을 생각해서, 간신히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고르고 고른 끝에 할 수 있는 말이란 몇 번 입에 담아 본 적 없는 단어다.
"고맙다."
신세를 지거나 빚을 갚아야 하는 이해타산적인 타인과의 관계 앞에서, 너에게 무언갈 보답하기엔 나는 너무 보잘것 없다. 그것을 감히 이해 해 주기를 바라진 않는다. 그런 건 누구에게나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그 말은 내게 해 주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
과분하고 또 과분하다.
"…아프지 말고, 잘 자라. 미도리카와."
언젠가는 너의 그 마음을 과분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누군가에게 건네고 돌려 받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전화기를 끊는 손이 무거웠다. 마음 만큼이나 가벼워지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흑백논리로 가를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란 잘난 척 한마디로 깔끔하게 정의 할 수 없는 것이기에.
나는 내 방의 좌식 책상을 바라 보았다. 남자 고등학생의 책상 치곤 휑하다는 평가를 들은 다다미식 방 안에서, 그나마 살풍경하지 않도록 느껴지게 해 주는 물건이었다.
한 번도 쓴 적 없는 볼펜이나 스탠드 사이에는 도베르만 인형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옷장안에 넣어두려 했지만 먼지가 쌓이게 내버려 두면 결국 버리게 될 것이란 형의 말에 꺼내둔 물건이었다.
전화를 끊은 어느 후덥지근한 여름 날에, 나는 그 인형이 먼지투성이가 되거나 찢어진다고 해도 좀처럼 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기치 못한 일로 일어난, 예기치 못한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