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소원을

대답 #07 미도리카와 슈지

RSW 2014. 6. 23. 04:32







누구에게나 예기치 못한 일들은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다가온다.


번호를 알고 있지만 제대로 연락 한 적은 없었던 상대에게서 걸려온 전화. 

미도리카와 슈지라는 이름의 일곱 글자가 액정 화면 위로 뜬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또다시 학교에서 '괴물'이 나온건가 싶어서, 스위치를 찾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었다.


그랬었는데 말이야.







*






191cm의 커다란 사내놈이 혼자서 크레인 게임을 하고 있으면 보통은 아무도 말을 안 거는게 정상이다. 아니, 크레인 게임을 하고 있어서라던가 그런 문제가 아니라 내게 말을 거는 사람들은 아주 한정되어 있다고.


그런데 놀랍게도, 그 녀석은 태연하게 내게 다가오더니 같은 학교 학생이란 말로 신경을 마구 흐트려 놓았더랬지. 

그 다음의 만남은 어디서였더라.  부실이었던가. '가면라이더 부' 라는 것은 어지간히도 독특하고 제멋대로인 녀석들의 집합소라 이상할 것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답례' 라는 이름으로 가지고 다녔다는 도베르만 인형이 눈 앞에 내밀어 졌을 때, 어찌 할 수 없는 난처함을 숨기지 못하고 빤히 바라보다가 비로소 깨달았다.


묘한 분위기. 가끔씩은 어딘가로 붕 떠서 사라질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독특하고, 마이페이스에 영문 모를 고집을 부리는… 나쁘지 않은, 그런 괜찮은 후배다.


한숨을 쉬고 웃으며 감정을 내비치는 모습을 가만 보고 있자 더욱 깨달은 감정은 확실했다. 이 비리비리한 녀석. 가만 내버려 두었다가 무슨 일이 생겼다는 말을 나중에 듣게 된다면 꿈자리가 꽤 사납겠지. 

혼자서 끌어안고 끝내버릴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졌기에 핸드폰을 던주고 저장시킨 번호. 

ㅡ연락 하라고. 혼자 짊어지고 뻗대다가 나동그라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했던 말을, 너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 "하뉴 타카히사 선배. 저… 선배를 좋아해요."




너무 늦었지만 이제야 생각이 미쳤다.

네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받아 들일 수 없는 말을 앞에 두고, 미안하다는 말 만큼 의미 없는 말은 또 없겠지.






*






수화기를 든 채 조금은 긴 시간 동안 침묵하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 말을 골랐던 것 같다.




"미도리카와."




그리고 이름을 입밖에 내는 순간 목 안쪽이 아파오는 것 같았다. 이유는 아마 많다곤 할 순 없지만 같이 지내던 시간의 파편들이 찔러대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런 답잖은 감상적인 이유를 댈 만큼 동요하고 있구나. 전화기의 맞은편은 먹통이 된 것 처럼 조용했고, 그 침묵은 오히려 너의 모든 신경이 이 쪽에 쏠려있다는걸 실감하게 했다. 아마도, 아니 확실하게 그 마음은 진심이라고. 모를 수가 없을 만큼 또렷하고 확실했다. 그래서 단호하게 꺼내야 하는 말을 조금 머뭇거리고 말았다.




"미안하지만, 어떤 의도였건 나는 받아 들일 수 없어."




성별이나 너와 나의 사이에 놓인 거리 탓이 아니다. 그저 지독하게 여유가 부족한 사람에게 있어, 너의 마음이 담긴 말과 호의는 너무 차고 넘치는 것이었다. 

 마음 하나조차 헤아리기 힘이 들었고 주저앉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리며 지내왔다. 

그저 제 자신만 생각하기에도 벅찬, 그런 내게 있어서 지금 이 순간 전화기를 쥔 손은 무겁기만 했다. 그래도. 아무리 무겁다고 해도. 이 말만은 너에게 전해야 하니까.




"하지만고맙다고 해야겠지."




이 말은 어쩌면 너를 더 화나게 하거나 비참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의미가 없으리란 걸 알고있다. 그래서 그 말을 하고 싶진 않다.

다만 얼굴을 붉히며 어색한 사이가 되더라도 전해야 하는 말은 있으니까. 나보다도 더욱 힘들게 전화기를 쥐고 있을 너를 생각했다. 이 순간 만큼은 오직 그 분에 넘치는 마음 하나 만을 생각해서, 간신히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고르고 고른 끝에 할 수 있는 말이란 몇 번 입에 담아 본 적 없는 단어다.




"고맙다."




신세를 지거나 빚을 갚아야 하는 이해타산적인 타인과의 관계 앞에서, 너에게 무언갈 보답하기엔 나는 너무 보잘것 없다. 그것을 감히 이해 해 주기를 바라진 않는다. 그런 건 누구에게나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그 말은 내게 해 주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

과분하고 또 과분하다.




"…아프지 말고, 잘 자라. 미도리카와."




언젠가는 너의 그 마음을 과분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누군가에게 건네고 돌려 받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전화기를 끊는 손이 무거웠다. 마음 만큼이나 가벼워지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흑백논리로 가를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란 잘난 척 한마디로 깔끔하게 정의 할 수 없는 것이기에.


나는 내 방의 좌식 책상을 바라 보았다. 남자 고등학생의 책상 치곤 휑하다는 평가를 들은 다다미식 방 안에서, 그나마 살풍경하지 않도록 느껴지게 해 주는 물건이었다.



한 번도 쓴 적 없는 볼펜이나 스탠드 사이에는 도베르만 인형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옷장안에 넣어두려 했지만 먼지가 쌓이게 내버려 두면 결국 버리게 될 것이란 형의 말에 꺼내둔 물건이었다.


전화를 끊은 어느 후덥지근한 여름 날에, 나는 그 인형이 먼지투성이가 되거나 찢어진다고 해도 좀처럼 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기치 못한 일로 일어난, 예기치 못한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