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소원을

더위 #04 내 더위 사가세요

RSW 2014. 6. 8. 00:14




인간 사회에서 말하길, 기록적인 더위였다.

그 말인 즉슨.



썩 내키진 않지만 라이칸 슬로프 정모가 열린다는 말이 된다.







*






"뭡니까 또."

"여."

"안녕하세요~"



사이비 종교 권유라면 면전에서 수갑을 채울 기세였다. 띠껍다 못해 파격적인 표정으로 현관문을 연 카즈형에게 손을 들어보이곤 대뜸 집 안으로 들어가자, 솔직히 살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리고 시원한 공기를 만끽하던 와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헤이!"

"꺄- 오빠다!"



그러니까 분명 저번에도 내가 사람 어깨로 올라 타는 버릇 고치라고 한것 같은-



"크헉."

"마코마코도 있네?"

"간만이에요 레이나."

"어쩐지 니가 안 왔다 싶더라."



여태까지 레이나를 안고 있던게 퍽 벅찼는지 타치바나는 그 말과 함께 손목을 몇 번 쓸었다. 라이칸이 무슨 엄살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레이나가 한 번 사람 위에 올라타서 날뛰기 시작하면 나라도 벅차다. 타치바나와 인사한 마코토가 레이나와 하이터치를 끝내는 동안 그 반동을 고스란히 받아내는건 내 몫이라고!



"하뉴. 무슨 용건…."

"피서."



히죽거리던 것도 잠시, 레이나가 내 귀를 잡더니 마구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 흐트러진다고 소리 지르며 이리저리 중심 잡기에 여념이 없는데, 뭐야!



"리모컨은 왜 던져?"

"던진 적 없습니다."



그렇게 말할 거면 미간에 돋은 힘줄부터 지우고 말 할 것이지. 당장 맨틀 끝까지 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감정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말 해봤자 전혀 설득력이 없는데 말이야. 어쨌거나 저쨌거나 카즈형은 자신의 집에 총 네 마리의 라이칸 슬로프 (본인 포함 다섯) 이 있다는 게 어지간히 맘에 안드나보다. 뭐 그럴수 있지. 문제는 그 네 마리 모두가 이 파격적인 더위를 에어컨 없이 건뎌낼 바에야 어느 정도의 잔소리를 감안하고 마는 성격이거든. 미안 카즈형. 전혀 미안하지 않다는게 미안하네.


나는 마코토가 히죽거리며 냉방을 최대 연속으로 틀어내는걸 퍽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내 어깨에 매달린 레이나는 꺄꺄 거리며 에어컨의 차가운 바람으로 손을 뻗고 있는데, 이 와중에 참담한 표정으로 의자에 걸터앉은 카즈형을 위로 하는 건 전기세를 걱정 해 주는 타치바나 뿐이다. 뭐 그 전기세 걱정의 방향이 수도세를 덜 쓰면 되지 않겠냐는 위로라면 글러먹은 것 같은데.



"그 수도세 인가 하는 것도 엄-청 많이 나올걸?"

"왜?"

"지금 센이 이노리 머리 감겨주고 있거든! 아까 레모네이드 엎었어."



레이나는 보란듯이 테이블 위를 가리켰다. 확실히 아까부터 코 끝을 간질거리는 레몬향이 특이하다 했더니, 빈 잔밖에 없지만 아마도 음료수가 담겼던 컵이었나보네. 뭘 어쩌다가 머리 위에 레모네이드를 엎었는진 모르겠지만 레이나가 있는 집이다. 뭔 일이 벌어져도 이상 할 게 없지. 그나저나 내겐 카즈형 집에 그렇게 합성착향료 가득한 음료가 있다는 것도 의외지만, 센과 이노리가 먼저 카즈 형 집에 와있는 것도 의외다. 역시 온갖 짜증을 다 낼 것 같아서 카즈 형 집에 되도록 안 오려고 노력했던 건 다 부질없는 노력이었다 이건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카즈형은 컵을 아무렇게나 싱크대로 내 던지며 말했다. 



"대체 왜 매번 이 집입니까?"

"형 그 컵 깨졌거든?"

"다들 돈이 없는 건 아닐테고."

"돈은 있어도 에어컨은 없어요."



생글생글 웃으며 남의 집 냉장고를 벌컥 열어대는 마코토는 내게 요구르트를 던졌다. 아마 내일 아침 카즈 형 식사였겠지. 뭐 그건 내 알바 아니니까 맛있게 먹는다.




"너무 그러지 마. 선물도 사왔어. 마코토."

"아 늦었네요. 자요. 하뉴랑 제가 산 거에요. 급한대로 꽃등심이라도 사오려고 했는데 집앞 정육점에서 다 팔렸지 뭐에요."

"아 내가 사왔거든!"

"남은 건 레이나가 사왔거든!"




'바야흐로 꽃등심 파티를 열라는 말이겠다-!' 라는 말을 하며 양 팔을 벌린 레이나가 내 어깨에서 내려와서 카즈 형의 침대 위로 구른다. 에어컨은 풀가동중. 타치바나는 실내 바베큐용 프라이팬을 찾고 있다.




"역시 여름철엔 형 집이 가장 편하다니깐."

"……."




마코토가 쥐어준 인간 고기 (간 특식) 을 든 채, 카즈형은 약간 넋이 나갔다. 그리곤 가만히 전화기를 들어서 옆 방으로 들어가는데, 그래봤자 소용 없어. 이 집에 있는 라이칸 슬로프는 일곱 마리. 청력 하나는 끝내주게 좋거든.




- "여보세요 이삿짐 센텁니까?"





글쎄, 이사 가 봤자 소용 없다니깐. 라이칸 슬로프니까 냄새로 충분히 찾아 온다고. 

몇 년에 한번씩 겪는 일이면 익숙해질만도 하잖아.


타치바나가 막 욕실에서 나온 이노리와 센에게 수건을 던져주는 사이, 레이나는 이번엔 표적을 바꿔서 마코토의 어깨 위에 올라타더니 실내 풀장에 가고 싶다고 칭얼거린다. 일곱 마리의 라이칸 슬로프의 여름 피서지에서 오늘도 카즈 형의 에어컨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낄낄거리며 바라보다가 형의 맥주를 털기로 했다.



아.

역시 더위나기에는 에어컨이 최고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