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소원을

절벽 #03 고해

RSW 2014. 6. 5. 04:45





"하뉴."




ㅡ계속 불러 줘.





"하뉴?"




더. 좀 더.





"ㅡ타카히사."




계속. 이름을 불러 줘.

내가 굴러 떨어지지 않게.


그래 준다면 나는….








*






"옛날 이야기 해줘요 하뉴."



녀석은 그런 말을 하더니 몸을 한바퀴 굴러서 내 위로 올라 탔다. 알몸으로 남의 배 위에 올라타지 마. 조르지 마. 칭얼거리지 마. 피곤하고 졸려 죽겠는데 또 무슨 헛소리인가 싶어 가만 올려다봤지만, 본인의 눈동자는 지독하게 맑다. 가끔은 직시 하기도 싫어져. 지금처럼.



"싫어."

"왜요?"

"무서우니까."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몸을 틀었다. 금새 떨어 질 뻔 했다며 너스레를 떠는 목소리도 무시하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아니, 청하 했다. 

머리카락을 헤집는 손길에 소름끼쳐서 눈을 뜨지만 않았더라면, 아마도 가능했을텐데.



"그럼 사랑 한다고 말해봐요."

"……."


그 상냥한 손길이나, 가만히 끌어안는 체온이 기분 좋아서 내버려 두곤 하는데. 역시 이 녀석은 내 행동을 멈추게 하는데 퍽 재능이란걸 가지고 있다. 지금처럼 말문 조차 막아버리니까.



"하뉴는 천국까진 힘들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지. 사랑은 모든 걸 해결 해 주거든요. 아. 난 회개하고 천국 갈 거지만. 어쨌든 말 해봐요! 많은 게 해결 될 수도 있지."

"마코토."

"말해 봐요!"



해맑게 웃는 목소리가 목을 졸라온다. 따라 웃고 싶었지만, 이젠 웃을 수 없어. 무서우니까. 기억 나지 않았으면 하는 옛날 이야기가 나를 짓누르니까.



"난 두 번 미치기 싫어."



그 말이 고작이었다.







*








그 날 마코토를 안은 채 눈을 붙이자 작은 꿈을 꾸었다. 절벽에 서 있는 나를 누군가가 떠미는 꿈이었다. 앗 하는 사이에 떠밀려 나를 민 상대를 바라보려 했지만, 어느새 밑바닥에 떨어진 나는 도저히 뒤를 돌아 볼 수가 없다.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손길.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꾸물꾸물 기어나오는 검은 안개가 내 뒤를 가려서 결국 앞 말곤 볼 곳이 없을때, 비로소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직시한 '나'는 가장 사랑했던 여자의 팔뚝을 씹어먹고 있다. 손바닥만한 갈비뼈를 드러내고 해체 당한 '딸이었던' 것의 시체는 안중에도 없다. 부족한 양에 아쉬워 하며 살점을 긁어서 입으로 집어 넣고 있을 뿐이다.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내 뒤에서, 절대 도망 칠 수 없는 만월이 네 운명을 알고 있다며 비웃는다. 


마코토.

아마 너는 알고 있겠지만.

나는 그 때 죽고 싶었어.


그때만큼 간절하게 신에게 빌어 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사랑했던 사람의 연골을 뜯어먹고 두개골을 부순 후 머리를 던져버리던 내 자신을,

누군가 아무것도 기억 못할 만월 동안 죽여주기를.


그 때 만큼 간절히, 무언가를 빌어 본 적은 없었는데 말이야.







*







"잘 거라면서? 하여간 진짜 변덕 심해."

"시끄러워."



마코토는 내 대답이 영 마음에 안든 모양이다. 유두 끝을 스치며 가슴을 훑는 손을 가만히 제 입으로 가져가서 입 맞췄다.




"하뉴. 신은 공평하신 분이랍니다. 악한 자는 강하게, 선한자는 약하게. 그렇게 만드시는거에요. 그래서 당신은 지금 강한 거에요."

"약해지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아뇨. 그건 힘들고."



그건 저처럼 극소수의 착하고 착한 라이칸 슬로프 뿐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에 순간 기가 막힌다. 




"상관 없잖아요. 난 강한 당신이 좋은걸. 그리고 악한 당신을 구원해서 꼭 천국에 갈 거에요. 그럼 신부님도 기뻐하실거고."

"……."



들뜬 목소리로 희망에 찬 계획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다가 나는 두 말 없이 녀석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답지 않게 뱀파이어 흉내라도 내는 거냐며 핀잔을 주었지만, 그 핀잔은 곧 흥분에 찬 신음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당신한테는 구원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내가 하뉴 곁에 있어 줄게요. 절대, 먼저 죽지 않을게요. 내 약속 믿죠?"

"네 약속은 믿어. 하지만 내가 못 믿는 건…."




뜯겨 나간 팔.

으스러진 목과 조각난 다리뼈. 얼굴까지 튀었던, 그 감촉이 기분 좋다며 웃었던.





"하뉴."




불러 줘. 제발.





"하뉴. 타카히사."




떨어지지 않게 해줘. 다시 그 미칠 것 같은 본능과 상실의 무게에 질식하지 않게 해줘. 제발.




"사랑해요."




정말로 구원이 있다면. 지금의 내게는 너만이 구원이니까.





"날 좀 더 사랑해줘요."





널 사랑 할 수 밖에 없으니까.










*







너를 사랑하게 됐음을 처음 깨닫게 되던 날, 나는 내가 더 이상 미치는게 두려워서 널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죽인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을 테니까. 나는 너의 곁에 있기로 했다. 네가 곁에 있어줬으면 했다.



너를 사랑해. 그러니 언젠간ㅡ 이 손으로 찢어버리기 전에 너에게서 도망쳐야지. 

결코 '사랑한다' 라는 말만은 하지 않고. 냄새를, 웃음을, 목소리를, 감촉을 기억하고 아주 먼 곳으로 떠나는 거야.


괴로움도 고통도 무거운 죄도 없는 어딘가로 혼자 떠나는 거야.

그런 곳은 없다고 해도, 떠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