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 #02 잠 못 이루는 밤
[MAIL/형]
집에 안 오고 뭐해.
[MAIL/답장]
미안 피곤한 일이 생겨서 학교에서 잔다.
[MAIL/형]
참나 학교도 지 멋대로 다니는 놈이 뭐가 피곤하다고.
뭐 주말이니 상관없나. 잘자라.
[MAIL/형]
아참, 아버지가 내일 한 잔 하자시는데.
[MAIL/답장]
...아침에 들어갈게.
*
부실은 소란스러웠다. 조금 다른 종류의 소란스러움이었다. 시원한 에어컨을 바라며 부실로 발을 옮겼을 때 너무 많은 부원들에 눈살을 찌푸리던 그런 분위기와는 달랐다. 엉망으로 어질러진 부실. 날아가버린 휴지라던가, 깨진 형광등이나 발자국 가득한 창문들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들. 쓰러진 선배나 비척거리는 부원들. 그리고 모두가 하나같이 바라보았던 빨간 토끼였던 괴물의 잔상. 검은 안개. 알 수 없는 목소리. 혼란과 동요를 낳더니 사라진 것은 비단 괴물 뿐 만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황급히 부실을 떠났고 누군가는… 오지랖도 참 넓으시지. 내 쪽 까지 신경 써 오는 녀석들이 있다.
불과 며칠 전 불현듯 학교에서 나타나 사방으로 흩어지는 빨간 토끼가 전부 사라지고 뒷통수 편하게 지낼 수 있나 했더니 이번엔 영문 모를 괴물이다. 하야미에게 스위치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도대체 이런 걸 어디에 쓰는 건지 내심 황당해 했지만 타들어가는 불꽃에 겁을 내는 괴물을 보고 깨달았다. 그래. 이 영문 모를 스위치란 건, 바로 저 걸 위해서였구나. 도망치던 싸우던 선택권은 너에게 있다고. 선택은 너의 몫이라고.
...넘겨진 선택권을 버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부실에서는 감정이 번져나갔다. 평소보다 쉽게 짜증을 내게 된 건 그 탓이다. 쭉 찾던 얼굴을 발견했는데도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은 것도, 비틀거리는 후배를 보며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도, 작년에는 이렇지 않았다며 꽝 복권을 뽑은 사실을 쓰게 인정하는 말을 가만 듣다가 입술을 깨물은 것도.
분해 하며, 슬퍼 하거나 감정을 동요시키며 그저 심란한 지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동요한 감정을 쏟아 부을 상대가 없으니까. ㅡ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건지, 아무도 이유를 모르니까. 아무런 이유도 모르니까.
알 리가 없잖아. 이유 없이 싸움을 걸어 오더니 쓰러지고 흐느끼고 떨고 울고...
동정하는 말, 화를 내는 모습. 감정의 사이에 서 있을 땐 마음이 쉽게 번지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용서 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웃기지 마.
무슨 사정이 있건 알 바 아냐. 정체가 뭔 지도 관심 없어. 누구도 세상을 간단하게 살고 있지 않아. 각자의 사정은 각자의 사정 일 뿐이지. 받은 만큼은 돌려줄테고 멋대로 굴었다면 용서 할 생각 없어.
*
- 타카히사는 마음이 강하네.
아냐. 그런 게 아냐.
- 본 받아야 겠어.
그런 듣기 좋은 말도 용서 하지 못할 뿐이야.
내가 이해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따위 내다 버린지 오래니까.
*
귀 아픈 토끼 울음 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을텐데. 않아야 할 텐데.
기묘하기도 하지.
'토끼가' 우는 소리는 계속 귓가에 남아 있는 느낌이 든다.
…쉽게 잠이 들 수 없는 밤이 될 것 같다.
나는 자는 걸 포기하고 일찌감치 부실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