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맞는 형제
도무지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형은 나와 마주보고 있었다. 다이무스 홀든이라는 사람보다 무표정을 유지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문 편이다. 결국 여느 때처럼 내가 먼저 말을 꺼내는 게 순서였다. 아마 상대도 그걸 예상하고 가만히 입을 닫고 있던 거겠지.
“소식 들었어.”
살갑게 인사를 꺼내지 않아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안부를 따질 만큼 서로에게 정을 못줘 안달 난 형제 관계는 아니니까. 멀끔한 얼굴과 검을 뽑는 양팔만 멀쩡하면 그걸로 그만이다.
“자네트가 그 쪽으로 들어갔다며. 우리 쪽 스카우터가 제법 아쉬워하던데.”
아쉬워 죽을 지경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더 올바르겠지만. 짐짓 웃기다는 듯 어깨를 흔들어댔을 뿐인데, 형의 미간의 주름이 깊어진 건 의외였다. 낮지만 날카로운 목소리.
“지금 와서 정에 호소 할 생각이면 그만 두는 게 좋을 텐데.”
“그런 계집 하나 없다고 망할 연합이 아냐.”
“용건을 말해라 이글 홀든.”
“차갑기도 하셔.”
어디까지나 인사치례에 지나지 않는 첫 마디 조차 가만 들어주지 않았다. 언제 봐도 상반된 온도차이.
“형한테 용건이 있어서 온 게 당연하잖아. 충고랄까.”
“어이없는 이유로 연합에 들어간 네가 충고라고?”
허, 하는 짧은 숨을 토하면서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사람을 훑어보는 모습은 여전했다. 헬리오스에서는 제법 신뢰받고 있다고 하지만, 비웃음에 가까운 웃음을 숨기지 않는 걸 보면 오만한 형의 성격은 그리 쉽게 고쳐졌을 리가 없지.
“내 이유를 여기서 걸고 따질 생각인거면 그만 두지 그래. 세상의 모든 일은 밸런스가 맞아야 해먹잖아?”
“웃기지 마라.”
짧은 일갈. 그러나 기분은 상하지 않았다. 나도 형도, 그런 걸로 대립 할 만큼 멍청한 나이는 아니니까.
“자네트를 회사에 집어넣다니 무슨 생각이야?”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그녀의 스카웃은 내가 선택 한 게 아니다.”
“하지만 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선택이라곤 볼 수 없지.”
“자네트가 나 때문에 헬리오스에 들어왔다고? 멍청한 소리.”
“아니지.”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형을 마주보고 상대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홀든 집안의 집사? 둘째 형? 본인에게 물어본다면 의외로 간단하게 알려주겠지.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중요한건 그게 아니지. 그 생각 많은 계집애가 신중하게 소속을 고르다가 결국 결정했다는 거잖아. 홀든 집안 차기 가주님과 언제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리로 들어왔단 말이야. 신경을 안 쓸 수 있어?”
“임무에 사적인 감정을 집어넣을 생각은 없다.”
“형이 없어도 그 쪽에서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 정신 분열증인 제레온경과 시해사건 때문에 프리츠 집안이 예전 같다곤 말 못할 때 하필 그 애가 형의 근처에 있다는 건, 확실히 신경 쓰이는 문제지.”
한 때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왕실 호위대 대장은 예전 만 못 하다는 평가와 함께 은거에 들어 간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최강의 자리와 정통성을 두고 다투던 상대가 서서히 몰락 해 가는 것을 구경하는 것은 마냥 유쾌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 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결국 팔이 안으로 굽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네가 그렇게 집안을 갸륵하게 생각 했다고.”
“아무리 내놓은 자식이라고 해도 내 이름이 홀든인 건 변함없잖아?”
“대뜸 찾아와서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하고 앉았군. 애초에 브뤼노를 먼저 찾아 온 건 크리스티네였다. 나나 누군가가 손을 내민 게 아니었지. 그 애는 프리츠 집안에서조차 자기편이 없어. 같은 소속이라고 한들 그 애가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지.”
“글쎄. 과연 그럴까. 형은 어릴 적부터 제법 눈여겨봤잖아?”
“그랬지. 프리츠 집안의 무남독녀의 딸답게 널 제압해서 사정없이 체면을 구길 만큼의 실력이 있었으니까.”
대체 언젯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절로 찌푸려진 내 표정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대립각을 세우던 집안 사이였다곤 하지만, 분명 우리 삼형제가 그녀와 나쁘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낸 건 사실이다. 그녀 또한 또래의 여자 아이들처럼 하늘하늘 한 드레스를 입은 채 조신하기만 한 성격을 뽐내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기에 때때로 사내들이라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를 놀라게 만들곤 했다. 문제는 그 대상이 고작 한 살 차이밖에 안 났던 탓인지 내가 될 때가 있었다는 점이다.
“쓸 때 없는 소리를 하러 올 시간이 있다면 검이나 손질 해 둬라. 보고 있기 부끄러울 지경이군.”
“뭐야. 좀 더 놀아주지 않는 거야?”
“밀린 업무가 남아있다. 널 상대 할 시간 없어.”
“그거 유감이네. 하지만 난 분명히 충고 했어. 그 애가 여길 선택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그게 형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서, 란 상상도 전혀 이상 할 게 없단 말이지. 홀든이 헬리오스를 지원했다는 건 다들 아는 이야기니까.”
혹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대립각을 세우기 싫어 회사로 들어왔다, 라는 선택도 가능하겠지. 본인이 이 자리에 있다면 속 시원하게 물을 수 있겠지만 마음대로 활개 칠 수 없는 장소라는 게 썩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거야 말로 쓸 때 없는 말이로군.”
“쓸 때 없을지 어떨 지는 모르는 일이잖아? 이쪽 소식에 연합은 민감해. 형을 파벌싸움에 끌어들이려 안달이란 것도. 인기도 좋으셔 형님은.”
무어라 더 말을 꺼내기도 전에 형은 코웃음을 치며 등을 돌렸다. 용건이 있어 찾아온 동생을 문전박대 하는 것도 이만하면 대단한 수준이네. 섭섭하다곤 할 수 없지만 못내 아쉬움에 검을 매만지게 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진심으로 칼을 부딪쳤다간 난감한 상황이 될 거라며 형이 피할 게 뻔해서 무딘 걸 방치하고 가져온 검을 지적받다니. 얄궂은 일이다. 어느 쪽이든 내가 바라는 대로는 나서주지 않는단 건가. 한 번 쯤은 검을 맞댈 수 있을까 싶었더니.
“역시 안 맞는 건 어쩔 수 없다니까.”
언제는 손발이 잘 맞았는지 따져보자면 끝이 없겠지만. 내게만 남의 말을 귓등으로 안듣는다는 말을 하지만, 정작 본인도 남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걸 보면 이건 유전이라고 해도 믿어주기나 할지 모르겠다.
고개를 설래설래 저으며 마찬가지로 있던 장소를 등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