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야하루 배포본 <SPRING! ONE MORE TIME AGAIN>
2014년 케이크 스퀘어 3회 발간
노래의☆왕자님♪ 류야하루 배포본
<SPRING! ONE MORE TIME AGAIN>
아침 일곱 시. 새소리가 정겨운 이 시각, 누군가는 상쾌하게 아침을 시작하겠지만 샤이닝 사무소에 있는 아이돌의 태반은 밤을 샌 사람들이다. 그 중 고토부키 레이지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수많은 소속사가 있고 소속사의 숫자만큼 아이돌이 있다. 찍고자 하는 방송 프로그램은 한둘이 아니지만, 정작 사용 할 수 있는 방송 스튜디오는 언제나 한정 되어있다. 그렇다보니 빡빡한 스튜디오 이용 스케줄 중 그나마 시간이 비는 건 새벽뿐이다. 벌써 이 업계에서 구른 지 몇 년이나 된 레이지에겐 스튜디오 촬영이 새벽부터 시작 하는 경우는 별로 특이 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겨우 일단락 된 촬영을 끝내고 졸린 눈을 비비며 사무소 앞에서 기지개를 쭉 켰더니, 이것 참. 오늘은 조금 특이하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류야 선배?”
“여 레이지. 좋은 아침.”
레이지는 기지개를 켜다 말고 입을 벌린 채 눈앞의 선배를 바라보았다. 다부진 체격과 남자가 봐도 잘생긴 외모, 카리스마 있는 인상의 선배는 잘못 보려 해도 잘못 볼 수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이름을 부른 건, 그런 선배가 평소와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새벽 촬영이냐? 고생한다.”
“아니 뭐,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니까… 그나저나 뭐야? 갑자기 컨셉 바꾸기? 자전거라니… 아침부터 너무 체력 소모하는 거 아냐?”
“뭐야, 자전거쯤은 체력 쓰는 축에도 안 들어. 가벼운 운동이지.”
류야는 태연하게 말하며 천천히 자전거에 체인을 둘렀다. 그러나 레이지는 여전히 이 변화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가죽 자켓과 가죽 장갑, 오토바이. 그것도 아니면 잘 차려입은 쓰리 피스 정장에 택시가 보통이었던 선배가 오늘 아침은 청바지와 가벼운 티셔츠 차림에 자전거라니!
“심지어 잘 어울리잖아. 진짜 반칙이야아!!”
“아침부터 시끄럽긴. 졸립냐?”
픽 웃는 모습마저 같은 남자가 봐도 멋있다. 레이지는 새삼 혀를 내둘렀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눈앞의 선배에겐 참 해당 안 되는 격언이다. 날개를 달기도 전에 반칙패. 세상 참 불공평하지.
“이제 들어 가냐?”
“응. 한숨 자고 오후부터 촬영. 그나저나 왠 자전거? 오토바이는 고장 난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이것저것.”
류야는 조금 겸연쩍은지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말끝을 흐렸다. 레이지는 그 태도가 새삼 신선했다.
평소 류야가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는 레이지가 아무리 졸라도 뒤에 태워주지 않는 애마 중의 애마였다. 문외한인 레이지가 봐도 깨끗하게 관리 되어 있으니 보통 아끼는 게 아닐 테다. 근사한 오토바이는 이륜구동답게 커다란 바퀴와 몸체만으로도 시선을 끌긴 충분했다보니, 카리스마 있는 류야와 아주 잘 어울린다고 모두가 생각한다. 실제로 류야의 오토바이 탄 모습은 같은 남자인 레이지가 봐도 놀랄 정도로 근사한 그림이 되곤 했다. 란마루가 인정 했을 정도니 더 말하면 입 아프지.
그런 오토바이를 내버려 두고 처음 보는 자전거를 끌고 사무소로 출근하는 류야라니, 제법 오랜 시간 선후배 사이로 지냈던 레이지 조차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요 며칠 오토바이 사고 때문에 시끄러웠잖아.”
“아, 레이징 엔터테인먼트 탤런트 오토바이 사건?”
류야는 가볍게 끄덕였다. 레이지도 그 사건에 관해서는 업계 사람인만큼 잘 알고 있었다.
며칠 전 레이징 엔터테인먼트의 탤런트 중 한명이 오토바이를 몰다가 사고가 나서 위독한 상황에 처한 사고였다. 다행이 지금은 큰 고비를 넘겼다곤 하지만, 몇 년간 연예계에서 얼굴을 보는 건 힘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커다란 일이었다. 요 며칠 동안 기사들도 엄청나게 쓰여서 인터넷에 순식간에 퍼졌고 레이지도 사고 소식을 듣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현장에서도 몇 번 마주치면서 인사를 나눴던 사람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레이지도 보통 놀란 게 아니었고, 그건 다른 배우나 팬들도 마찬가지인 듯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팬들에게도 레이지에게 안전운전을 하라는 메시지나 라디오 엽서가 몇 통이나 도착했고 말이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류야 선배 운전 실력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사고라도 벌어지면 큰일이잖아.”
“나야 헬멧도 있고 실력에도 자신이 있지만, 아무래도 그 녀석이 걱정해서 말이지….”
아……그렇게 나오셨나.
“그만 두라는 말은 안 하지만 헬멧을 들고 와선 ‘사고 조심 하세요’ 라고 말하니 탈 수가 있어야지.”
레이지는 난감한 표정을 짓는 선배를 보며 쓴 웃음을 삼켰다.
누군가에게 좌지우지 당하기엔 샤이닝 사무소의 이사이자 톱스타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이 빛나는 휴우가 류야지만, 그런 선배에게도 꼼짝 못하는 상대가 있다. 레이지는 금세 그 상대를 머릿속으로 떠올 릴 수 있었다.
나나미 하루카. 따뜻한 햇볕에 잘 말린 이불처럼 뽀송뽀송한 인상을 주는 소녀는 이 업계와는 영 안 어울리는 것처럼 보여도 레이지의 후배일 뿐만 아니라 ST☆RISH와 QUARTET★NIGHT의 곡을 쓴 실력파 작곡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나나미 하루카가 휴우가 류야와 연인 사이라는 사실은 사무소에서도 극히 적은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극비 사항이다.
“그래서, 귀~여운 애인의 ‘그만 두세요’ 한 마디에 오토바이 그만 둔 거야? 류야 선배 의외로 꽉 잡혀 사는 구나?!”
“그런 거 아냐! 너 임마 쓸 때 없는 소리 하면 졸라버린다!”
“우와! 이미 조르고 있잖아!”
가차 없이 팔에 가두곤 레이지의 목을 조르는 류야의 팔을 몇 번 때리고서야 겨우 해방 되었다. 레이지가 과장되게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리자, 슬쩍 팔을 내리는 류야가 레이지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ㅡ아냐. 그런 게 아니라, 난 그냥
“…더 이상 그 녀석을 불안하게 하고 싶지 않은 것 뿐 이야.”
목 아프게 꽉꽉 졸렸던 게 무색했다. 레이지가 저도 모르게 흘려버린 웃음을 숨기는 데는 꽤 요령을 필요로 했다.
프로페셔널이라는 단어와 워커홀릭이라는 단어 밖에 모르는 것 같았던 선배가 어느새 이렇게 사랑에 빠진 소녀가 되었다니. 아마 이건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는 상대를 앞에 뒀으니 보이는 반응이겠지만…. 레이지는 새삼 하루카 앞의 류야가 궁금해졌다. 자신 앞에서도 이렇게 알기 쉽게 변했다면 연인 앞에선 어떨지 퍽 궁금했다. 뭐 갈수록 삭막해져 가는 것 보다는 훨씬 낫지만 말이지.
“너도 한 번 타봐. 자전거도 나쁘진 않아. 다시 체력을 키우기에도 좋고, 의외로 빠르니까.”
“그거야 선배가 타니까 빠르겠지…요즘 운동 하는 거야?”
“그렇지. 요즘 많이 몸이 굳었어. 복귀전까진 다시 체력도 키워야 되고.”
“…………뭐?”
“……아. 말해버렸다. 정식 발표 전 까진 비밀이니 말하고 다니지 마라?”
“뭐어어어어엇?!!! 류야 선배가 아이돌로 정식 복그후어헉…!!”
이번에야말로 가차 없이 목을 졸리고 말았다. 운동을 한다는 말을 좀 더 귀 담아 들을 걸 그랬지, 그렇게 레이지는 후회했지만 이미 한 발 늦은 후회였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인정사정없이 머리가 팽팽 돌 정도로 제압당할 줄이야! 내 체력의 문젠가?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운동선수도 아니면서 이 조르기는 너무하잖아!
“큰 소리로 말하지 말라니깐!”
“알았어! 잘못 했으니까 그만 졸라 류야 선배…!!”
그러나 무자비한 손아귀에서 벗어난 건 한참 후였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 게 류야 선배답지만, 실컷 조르기를 당한 입장에선 마냥 감탄만 할 순 없게 되었다.
레이지는 기괴한 방향으로 꺾일 뻔한 목을 어루만지며 류야를 빤히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들은 사람은 없는지 주위를 살피던 류야는 주변에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퍽 안심한 눈치였다. 어지간히도 꽁꽁 복귀를 감추고 싶은 모양이다.
휴우가 류야, 드디어 복귀! 라는 대문짝만한 타이틀을 걱정하고 있어서 그러는 거겠지만…. 오히려 숨길수록 반응이 더 커질 건 생각 하지 않은 걸까.
“…기자 회견이라도 하지 그래?”
“평범한 복귀잖아. 그렇게 크게 일을 만들어서 어쩌려고. 보나마나 나나미 녀석 잔뜩 긴장할걸.”
“우와 못살아 이 팔불출.”
“시꺼. 그냥 조용히 공식 사이트에 올릴 거야.”
…글쎄, 그게 공식 사이트에 조용히 올린다고 해서 조용히 넘어가질지는 좀 다른 문제라고 보는데 말이지. 왜 쉽게 예상 할 수 있는 걸 류야는 모르는 척 하는 걸까. 레이지는 조용히 류야를 살폈다.
휴우가 류야 라고 하면 아직도 동세대의 팬들 중 누구나가 기억하는 아이돌이다. 뭣보다 전설이 되어버린 처음이자 마지막 무도관 라이브로서 정점을 찍었으나 파트너 작곡가의 불행한 사고로 아이돌 가수 활동을 접은 드라마틱한 사연까지. 이미 배우로서 잘 나가고 있다 해도, 그가 가수였던 것을 잊은 사람이 있을까.
그 사고…휴우가 류야를 이해하던 작곡가의 별세만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샤이니 사장을 넘어섰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그럴 지도 몰라.’라며 레이지조차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때가 있는 류야다.
“와… 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위기감이 들기 시작했어.”
“하하. 힘내봐라. 후배라고 봐주는 건 없어.”
“뭐야 그거 벌써 곡 나온 거야?!”
“그래. 아직 다듬을 길이 멀긴 하지만.”
한 점의 부정도 없이, 자랑스러움이 담긴 류야의 시원한 웃음을 보자 레이지는 할 말을 잃었다.
처음부터 남자가 봐도 반할만큼 멋있다는 평가를 자주 듣는 선배였지만, 연애를 하고 나니 더 그런 것 같아진 건 착각이 아니었나보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류야 선배다. 복귀를 앞두고 사무실에 가만 앉아 있을 사람도 아니니까….
“저기…류야 선배. 오늘 몇 시에 일어났어? 스케줄은?”
“나? 다섯 시에 일어나서 운동, 가볍게 아침 먹고…오늘 점심 식사 겸 단체 미팅이랑 오후에는 레코딩실에 들릴 건데?”
…아직 정식 복귀 발표도 안 냈는데 벌써 이런 스케줄이라니. 혹시 사람이 아니라 사이보그인가?
“아참. 복귀 콘서트에선 너도 한 곡 불러라.”
“우와 나 선택권 따윈 없는 거야?”
“쿠루스 녀석은 자진해서 출연 하고 싶다는데, 내 후배인 너만 쏙 빠지려고?”
빠지고 싶으면 맘대로 하던가. 짓궂게 웃는 류야의 반응에 오히려 울컥 한 건 레이지였는지, 류야의 예상대로 당돌한 후배는 선전포고에 가까운 말을 떡 하니 던졌다.
“부릅니다. 불러요. 멋지게 한 곡 뽑아서 그 자리에서 류야 선배의 팬을 전부 내 포로로 만들 거야! 나중에 후회 하지나 마!”
“할 수 있으면 해 봐. 하지만 보통 노래로는 안 될걸? 내 여자가 써준 곡은 순식간에 밀리언을 달성 할 거니까! 하하.”
역시 연애 하고 나선 더 멋있어 졌어 이 남자!
내심 혀를 휘두른 레이지는 직감했다. 내 선배이긴 하지만…류야 선배는 분명 결혼하면 불세출의 애처가가 될 거란 사실을!
유쾌한 웃는 얼굴에서부터 느껴지는 남성미는, 다른 아이돌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원숙미가 느껴졌다.
“슬슬 들어가서 한 숨 자라. 눈 밑이 시커멓게 그늘진 게 네 팬들이 실망 할라!”
“그럴 일은 없네요!”
“네 팬 뺏기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으악! 그런 일은 없다니깐!”
선언을 한 건 자신이었는데 왜 위기감이 드는 걸까. 레이지는 자신의 등을 친 후 푹 쉬라는 선배를 눈으로 쫓으며 뒷걸음질 쳤다. 이미 한 명의 배우로서 인정받고 있는 류야가 아이돌로서 재복귀라니.
“……우리 후배는 또 얼마나 굉장한 음악을 만든 거야?”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몰래 들으러 레코딩실에 쳐들어가볼까. 간식거리 하나 둘 쯤 들고 간다면 아무리 하루카를 감싸고도는 류야라고 해도 문전박대는 하지 않겠지.
얻어맞은 등은 화끈거렸지만 벌써 저만치에서 레이지를 향해 들어가라고 손을 내젓는 류야 선배에게 불만을 토로하긴 이미 늦었다.
레이지는 쓴 웃음과 함께 손을 들어 보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어쩐지 레이지는 류야의 복귀시기를 알 것만 같았다. 휴우가 류야에게 다시 한 번 찾아오는 계절. 하루키에 이어 하루카라는 봄이 사랑과 함께 찾아 왔다. 아마 따뜻하다 못해 찬란한 햇빛을 연상시킬 노래들이 내년 봄에는 거리의 곳곳에서 울려 퍼질 게 틀림없다. 사랑 할 시간도 부족 할 줄 알았더니만.
“역시 남자는 연애를 하고 볼 일이라니깐!”
설마 ‘그’ 휴우가 류야에게 봄이 다시 찾아오게 되다니.
무시무시한 라이벌의 출현임에도 마냥 웃음이 나오는 걸 참지 못하고 레이지는 한참동안이나 그 자리에서 키득거리고야 말았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