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뉴 개인지 <The Letter>
2015.08.23 발간
1차 캐릭터 하뉴 타카히사 개인지 <The Letter>
[Character] 하뉴 타카히사
23세 191cm 남성
고집불통 외골수. 입이 험하고 자주 트러블을 일으킨다. 행동패턴은 단순하지만 생각이 많고 고민거리는 혼자 삼키고 끌어안는 성격.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거나 공감 받는 걸 쉽게 포기한다. 때문에 사람을 사귀는 게 서툴다.
표현이 서툴긴 하나 정이 있으며 모질지 못한 성격. 주변 사람들(동아리 친구들)에게는 대체로 믿음직스럽다는 평가를 받지만 정작 자신이 부정해버리는 자기부정적인 면모가 있음.
다른 사람들과 심한 거리감을 느끼는 편이라 친구를 사귀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좋은 선후배 친구를 많이 만났으나 어딘지 겉돌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 채 학교를 졸업. 집착하거나 열중하는 일이 없어서 꿈이나 장래계획 또한 없는 것이 콤플렉스. 백수로 3년을 보냈다.
부모는 어릴 적 이혼했으며 아버지와 형이 야쿠자 일을 하고 있음.
키워드는 화성. 어릴 적 남과 많이 다르고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이 화성에서 온 사람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Community] 별에 소원을
특촬물 가면라이더 포제(2011)를 배경으로 한 자캐 커뮤니티.
아마노가와 고등학교에서 아스트로 스위치와 학생들을 이용한 실험이 벌어지고, 학교에 나타나는 괴물(조디아츠)와 그를 막는 동아리 가면라이더부를 무대로 하였음. 자세한 것은 원작 참조.
하뉴 타카히사는 아마노가와 고등학교 2학년 (17세) 설정으로 활동하였음.
[Club] 가면라이더부
커뮤니티 ‘별의 소원을’에서 스토리 중심이 된 동아리. 학교의 곤란한 학생을 도와주는 봉사활동 취지의 동아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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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 너 여행이나 다녀와라.
그 말과 함께 형이 스포츠 잡지를 읽고 있던 나를 향해 내던진 낡은 보스턴백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옷장에 보관되어 있었던 걸까. 가방에서는 케케묵은 나프탈렌 냄새가 진동 했다. 먼지라도 털고 주든지. 손가락에 쓸려 나오는 먼지를 확인하고 황당하게 형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왜. 또 집에 누구 온대?
아니. 더 이상 니 꼴 보기 싫어서. 뭐가 좋다고 백수 새끼를 삼년 넘게 집에서 키워야 되냐. 차라리 개새끼를 키우는 게 낫겠어. 훈련하면 말이라도 잘 듣지.
예전엔 이렇게 동생 머리에 가방을 던져대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투덜대고 있으니 ‘대답 안 해?’ 라고 추궁하는 목소리가 따라 붙는다. 형은 쯧, 하고 혀를 차며 날 노려봤다.
갑자기 왜 이러는데.
화가 나다 못해 울분이 쳐올라서 그런다 이 새끼야!! 사무실을 열어준대도 싫대, 일 할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삼년 동안 파칭코 슬롯이나 돌리면서 사는 게 그래, 살만 하시냐 새꺄!
사무실은 아무나 열어?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열어봤자….
닥쳐 말대답 하지 마.
그대로 묵직하게 무게 실린 발길질이 날아왔다. 잽싸게 피하긴 했지만 벽이 쾅 소리 나게 울린 걸로 봐선 보통 열이 받은 게 아닌가보다. 나는 얌전히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잘못 걸리면 정말 뼈도 못 추린다.
어딜 다녀오라고?
그런데 형이 졸업하고 삼년 째 백수인 나를 고깝게 보는 거야 어제 오늘일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미국.
태평양 횡단급은 좀 너무하잖아?
01.
어느 나라든 숨 막히는 날씨와 조우하고 만다. 일본에서는 턱 끝까지 차오르는 습기였는데, 미국에서는 숨이 헉하고 막히는 더위였다.
공기 중에 습기라곤 한줌도 없는 와중에 감히 한낮의 땡볕 아래를 돌아다닐 용기는 없었다. 결국 외투를 걸치고 집밖으로 나가려 마음먹은 건 오후 다섯 시가 넘어서였다.
“어디 갈거니?”
“그냥 요 앞에.”
그녀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짧게 대답했다. 안 봐도 어떤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지는 알고 있다.
“영어도 못한다더니 바이크는 또 어떻게 빌린 거야? 코우세이가 못된 버릇만 들게 놔둬가지구….”
“나 운전 잘하거든요?”
“그런 문제가 아니거든요오?”
발작처럼 울컥 올라온 반발을 참지 못하고 그녀를 노려보았지만, 그녀는 내게 질세라 볼을 부풀렸다. 간단히 물러설 여자가 아닌 건 내가 제일 잘 안다. 그런 점도 사랑했으니까.
황당하다는 얼굴로 얼굴을 일그러트리자 반박하던 건 언제고 다시 그녀가 까르르 웃었다. 예쁘게 피어난 보조개는 여전했다.
“코우세이한텐 나중에 전화 하던가 해야지…조심해서 다녀와.”
“그렇게 위해 줄 거 없어.”
자기 귀로 들어도 퍽 냉담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위해 줄 거 없어. 배려 해 줄 것 하나 없어.
“그럴만한 관계도 아니잖아 이젠.”
상처 받았을까. 그녀의 얼굴에 아주 잠시 그늘에 잠겼다. 생각지도 못하게 한방 얻어맞은 사람이 짓는 얼굴이다. 찌질한 화풀이의 결과는 그늘진 얼굴이었다. 문제는 그런 얼굴로 만든 주제에 후련해지지 못하는 내가 있다는 점이다.
“왜 그렇게…그런 식으로 말해?”
“……나갔다 올게.”
내 말에 상처 입은 건가. 만약 그렇다면 이상한 일도 다 있다. 우리의 헤어짐을 알리던 날, 참 태연해보였던 사람이고 야속할 만큼 간단하게 얼굴로 뒤를 돌았으면서.
타카히사, 하고 소심하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뒤돌아보진 않았다. 그대로 차가운 문고리를 잡고 나오는 길에 잠깐 자괴감에 죽고 싶어졌지만 돌아가서 사과할 생각은 없다.
한심한 나를 데리고 도망치듯 주차장에서 바이크를 몰고 나왔다. 잘 다녀오라는 배웅 하나에도 온갖 짜증을 내며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내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지. 돈 주고는 못 살 재주다 정말로.
차를 몰고 퇴근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아직 어린 티를 못 벗어난 학생들이 몇몇 보인다. 금발의 푸른 눈 밖에 없을 줄 알았더니 내 오판을 깨부수듯 피부색이 제각각인 아이들이 가득했다. 아이라곤 해도 일본보다는 훨씬 성숙해 뵈는 모습이다. 평소라면 이런저런 구경을 했겠지만 여행이 길어질수록 기분이 수런거린다.
알게 뭐냐 싶어 힘껏 액셀을 밟고 싶었지만 한 번은 참는다. 조용히 운전대를 이리저리 비틀며 마을을 빠져나왔다.
고속도로도 술집도 당구장도 지갑을 안 가지고 나왔으니 패스.
주머니의 동전 몇 푼으론 남은 선택지가 별로 없네.
부드럽게 스로틀을 쥐고 속도를 떨어트린다. 저녁이 되면 놀라울 정도로 어두워지는 시골마을은 언덕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해가 지면 금세 조금 밝은 가로등 빛도 열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어두워지는 곳이다.
한낮에는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변해버리는 건 일본과는 조금 달랐다.
그렇다면 변하지 않은 건 뭘까.
일본에서든 미국에서든 청승맞게 바깥 신세인 하뉴 타카히사?
아마노가와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삼 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만이 그대로인가?
시간이 가차 없이 흘러가는 동안 가만히 그 자리에 서있는 건 퍽 쉬운 일이었다. 이미 아마노가와 고등학교에서 내가 있을 자리는 사라졌을 텐데 가끔은 내가 아직 고등학생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얄궂기도 하지. 어른이 되면 조금은 나아지리라 생각 했던 게 우스워진다. 그 시절이든 지금이든 별로 다를 건 없는데. 정신적인 성장이라곤 조금도 없다는 말로도 해석되어 버리지만 딱히 부정할만한 근거도 없다.
풀벌레 우는 소리 조차 일본과는 다른 언덕배기에서 가만 마을을 바라보던 건 학교에 괴물이 나온다는 시절 할 일 없이 교내를 배회하던 때가 생각나는 일이었다. 이렇게 말한다면 이해할 사람들이 얼마 없겠지만 한 명도 없지 않다는 것에 안도하고 말았다.
스물 셋. 아직 생일은 지나지 않았으니 만 나이 스물 둘의 하뉴 타카히사는 현재 미국 땅에서 방황중이시다. 비행기 티켓을 흩날리며 당장 꺼져버리라고 소리치던 형을 피해 오긴 했는데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모르겠네.
아. 이 생각은 삼년 전에도 했었지 참.
놀랍지만 내게도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고민 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리 오래가진 못했지만 그녀가 내 곁에 있어줬던 시절이다.
그녀. 하뉴 카에데. 나와는 먼 친척관계. 아버지의 일찍 떠나보낸 형제가 낳았다는 외동딸은 우리 집에선 퍽이나 예쁨을 받았다. 구경도 못해본 여자 자식이었으니까.
청순하고 예의 바르고 어디 하나 흠 잡을 곳 없이 예쁜 보조개로 꽃 같이 웃는 사람. 내가 처음이고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사람.
“…가지가지 한다.”
짜증이 솟구쳐 올라서 머리를 걷어찼다. 화를 참을 수가 없었지만 그 이상으로 짜증나게 하는 건 흘러내리는 코피였다.
“이기지를 못하면 덤비질 말던가, 그것도 아니면 뒈지던가, 꺼지던가.”
퍽 퍽 하고 몇 번을 더 걷어차고 나서야 화가 간신히 가라앉았지만 코피는 멎질 않았다. 급한 대로 교복으로 문지를까, 그런 생각도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카에데는 냄새나 축축한 교복 촉감을 귀신같이 알아채는 사람이니까.
싸움을 걸어온 멍청이들의 핸드폰을 분풀이로 밟아주고 골목길을 빠져나온다. 수업을 들어야 할 시간에 코피를 흘리며 돌아다니는 중학생을 수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따라붙었다. 몇 번을 무시하다가, 몇 번은 노려봐주던가. 그렇게 하다 보니 주변엔 사람이라곤 없어졌다. 고작 그런 걸로 홀가분해져버렸다. 제멋대로 혼자 사는 세상일지라도 그곳의 왕이 된 기분이다.
카에데는 뭘 하고 있을까. 설마 남자친구라는 애가 또 싸웠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 할 거야.
잊을 때 마다 한 번 씩 싸움을 안 하기로 약속 했지만 어기는 건 내 몫이다. 그리고 용서 해 주는 건 그녀의 몫. 이번에도 그녀는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세 번은 사줘야 화를 풀 테지.
매번 내가 거는 싸움이 아니야, 라고 항변을 하지만 그녀는 내 팔을 찰싹찰싹 때리면서 그런 변명은 하는 게 아니라고 화를 냈다. 엄마조차도 씁쓸하게 웃으며 넘겨버리는데 그녀만은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겠다며 기세등등한 게 이젠 익숙하다 못해 그림 그리듯 연상된다.
익숙해진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처음에는 네가 무슨 상관이냐며 화를 냈다가, 아버지에게 싹수가 노란 말을 한다며 죽을 만큼 혼이 난 이후 그녀의 말 앞에서는 작아져야만 했다. 귀찮은 잔소리, 싫은 말. 그렇게 생각하던 것이 어느새 없으면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솔직하게 쏟아져오는 나를 위한 말. 나를 걱정하는 어조와 조심스레 상처를 쓰다듬으며 밴드를 붙여주는 손길이나, 다음에는 그러지 않을 거라 약속해달라는 말들은 뿌리치기 힘든 종류의 말이었다. 적어도 열다섯의 나는 한 번도 겪어본 적 없었지만 그리 싫지 않은 기분이라서.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내게 한낮에 메시지를 먼저 보낼 사람이라곤 그녀 한명 뿐이다. 화면에 띄워진 문자는 간단했다.
「뭐해?」
그녀에게 향했던 평범한 감정이 연정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연정을 온전히 바쳐야 했다. 반년 후 1학기를 마친 그녀가, 형이 집으로 돌아오는 시기에 맞춰 우리 집을 떠나려 했기 때문이다.
그녀를 붙잡고, 그녀의 손을 잡고, 아마도 새빨갰던 얼굴로 꽤나 절실하게 꼴사나운 말들을 비엔나 소세지 마냥 줄줄이 꺼내서 늘어놓고. 그렇게 해서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 상대라며….
「그냥 있어. 카에데는?」
그런데도 그녀는 웃어주었다.
그런 점을 좋아 하고 말았다. 나조차도 바보같이 여기는 나를 비웃지 않는 게 좋았다.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잖아. 이렇게 대해준다면. 누구에게나 통용될 변명을 늘여놓을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다.
그 날 이후 그녀는 내게 누나가 아니라 카에데였다. 까짓 거 다섯 살 차이거든. 금방 커질 거라고. 그렇게 말하면 그녀는 까르르 웃었지만 아직 멀었다는 말을 하거나, 그 때 까지 우리가 사귀고 있을지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다.
어서 동등해지고 싶으니까 누나라고 부르지 않겠다고 짧은 선언을 했을 때조차 그녀는 잠시 묘한 표정을 지을 뿐 이내 신경 쓰지 않았다.
오래 간 연인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때 내 전부를 바쳐도 좋다고 생각 했던 만큼. 정신 나갈 만큼 좋아 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것만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부정 할 수 없는 진실이다.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어.
「나도 그냥 있지. 너 보고 싶어 하면서 그러구 있지. 강의 엄청 지루해.」
「갈게. 수업 끝나고 나와.」
곧이어 도착할 답장은 안 봐도 알 수 있는 내용. 네 수업은 어쩌고 있냐며 깜짝 놀란 척 하지만, 사실은 진짜 보러 오는 거냐며 좋아하는 말.
언제나 비슷한 내용으로 걱정하는 카에데를 나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달랬다. 아무렴 대학생보다는 중학생이 학교 빠지는 게 더 낫지 않아? 등록금 엄청 비싸다며.
어쩔 줄 모르지만 나도 보고 싶다는 말에 기뻐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고,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런 연애를 했다.
「알았어. 보고 싶다.」
우리가 손을 맞잡았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녀를 좋아하기까지 걸렸던 시간과 똑같았다. 고작 육 개월이다.
신기하게도 짧은 시간의 기억이지만 선명하게 남아있다. 다른 기억들을 흑백이라 표현한다면 사랑했던 시절만이 색이 입혀진 컬러 사진이었다.
빛은 바랠지언정 검게 변하지는 않는 기억들을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돌이켰다. 감흥 없이 돌이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고 약간 참담한 기분이 되고 만다.
세상이 우습고 사람이 하찮았던 열다섯이라는 나이에 제왕처럼 왕관을 쓰고 화관을 바칠 상대를 찾아 헤매던 시절의 이야기. 그녀는 내게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녀와 내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하던 시절, 가장 좋아했던 사람.
그저 과거일 뿐인 기억을 돌이켜 볼 때 참담해지는 이유란 간단하다. 이렇게 머나먼 땅에서 다시 돌이켜 생각해봐도, 수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나는 그 시절과 크게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세상은 내게 더 이상 우습지만은 않았고 사람 또한 하찮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왕관은 내려놓지 못했고 화관을 바칠 상대는 사라졌다. 내가 걷고 싶은 길 또한 방향을 잃었다. 내 발로 걷고 있는 길인데도 레드카펫의 끝에 다다를 곳을 알 수 없다. 그게 참 비참하다는 거야.
집이라 표현하기도 애매한 숙소로 돌아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카에데와는 다시 마주하지 않았다. 이 집은 그녀의 신혼집이기는 했지만 부부 두 사람이서만 사는 곳은 아니었다. 너 하나쯤은 와도 아무런 상관없다던 말에 걸맞게 근처에 살고 있는 친척들과 친구들이 거실에서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참 넉살도 좋지.
어색한 인사를 끝내고 내게 허락된 방으로 돌아왔다. 손님용 방이라는 구색에 맞게 침대와 협탁 하나뿐인 깔끔한 방이다. 나는 짐도 풀어놓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있다는 흔적은 베개와 이불뿐이다.
막상 방에 틀어박힌다고 해도 할 일이 있는 건 아니다. 아침에는 근처를 조깅하고 낮에는 이 지역의 명물이라던 핫도그도 며칠 메뉴를 바꿔 먹었더니 벌써 질렸다. 한 달 동안 미국에서 여행이나 하라고 등짝을 발로 차서 떠밀던 형은 제대로 된 여행 계획서 한 장 들려주질 않았다.
미국이 남의 집 앞마당도 아니고 영어도 제대로 통하질 않는데 막무가내도 이런 막무가내가 없지 참. 24시간 후 출발하는 비행기 표를 본 내가 제대로 현실파악도 못하고 싼 짐이라곤 형이 준 영어 회화책과 핸드폰 충전기, 그리고 노트북 정도다.
다행스럽게도 낡은 노트북은 미국에서도 쌩쌩하게 돌아갔다. 발열과 소음이야 평소부터 심했던 거니 패스. 예상외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건 노트북 충전기의 콘센트 모양이 달랐다는 점이지만 카에데는 기꺼이 나에게 콘센트 변압기를 빌려주었다.
일본과는 달리 더럽게 느린 인터넷 때문에 노트북도 하루 종일 가지고 놀만한 건 못됐다. 뉴스를 몇 번 훑고 만화를 보다가 축구 영상이나 찾아보기. 뚝뚝 끊기는 로딩에 짜증을 내며 그대로 시스템 종료-라는 게 평소 패턴이었는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XX0716 01:57] 진짜 미국 온 거야?
새벽 두시 즈음에 보내진 메일 한 통. 제목부터 용건이 제법 뚜렷한 말이 적혀있다. 누가 이런 메일을 보냈나 싶어 잠깐 고개를 비틀다가 이내 아, 하고 짧게 기억해냈다. 미국에 온 첫날 타이밍 좋게 잘 지내냐는 메일을 보냈던 코우토에게 아무 생각 없이 답장했다. ‘여기 미국이고 오늘 왔다. 서부인가? 그렇대.’
다시 생각 해 보니 제목이었든 내용이었든 참 실없는 내용이다.
코우토가 미국에 간다고 했던 게 언제더라. 적어도 졸업 이후 얼굴 본 건 손에 꼽혔다. 미국에 있긴 하댔지.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살려보려고 애쓰며 메일을 열었다. 잘 지내냐고, 서부 어디쯤이냐고. 얼마나 지내는지를 물으며 안부를 꼬박꼬박 묻는 게 예전이나 지금이나 퍽 부지런한 녀석이다.
얼굴이나 한번 보자. 잊어버리겠어. 그렇게 써둔 문장을 보고 픽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생각 없이 답장 쓰기 버튼을 눌렀다가 그대로 황망하게 굳어버린다.
“…….”
아주 잠깐의 망설임. 빈칸이 가득한 하얀 창을 얼마나 보고 있었을까.
조용히 중얼거리고 만다.
“……보면 어쩌려고 그래.”
난 여전히 라이더부 애들의 얼굴은 거의 다 기억 해. 한 마디만 나눴던 녀석들까지 전부 다. 이럴 수가 있는 건가 싶을 수준으로 좋은 놈들 뿐 이라 그럴 거야 분명.
그런 녀석들은 잊는 게 어렵잖아. 나랑은, 너무 다른 애들 뿐 이니까.
“뭐라고 말 할 건데?”
ㅡ안녕하냐 코우토. 나는 조금도 잘 지내지 않아. 여행을 오긴 했다만 헤어진 여자친구가 된 유부녀 집에 얹혀서 할 일 없이 근처를 빙빙 도는 게 전부야. 이대로 일본에 돌아가도 재미없고 의미 없는 인생이 될 거란 걸 통감하고 있어. 무기력해 죽을 지경이다.
예전 일이 생각나네. 내게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알려달라고 했던가? 놀랍게도, 졸업하고 삼년이 되었는데 하고 싶은 일 따윈 하나도 생각이 안 나.
너는 안녕한 듯해서 다행이네. 나는 전혀, 무진장 안녕하지 않아. 그래서 아마 너를, 라이더부 녀석들을 떳떳하고 뻔뻔한 얼굴로는 만나지 못 할 것 같다.
한 글자도 적을 수 없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뻥 뚫린 국도에서 아무 생각 없이 바이크를 몰고 있을 때만 조금 위안이 되었다. 어디로든 갈수 있고, 어딜 가든 별로 달라지진 않을 거란 걸 실감해버려서 따라붙는 자기혐오를 견뎌야만 했다. 그래서 한 글자도 적을 수 없다. 소식이 궁금한 동창이 근황을 물어봤는데 숨고 싶어졌어. 뭐야 한심해서 나 자신을 비웃는 웃음도 안 나오잖아.
노트북을 닫아버렸다. 가만히 방 안에서 숨만 쉬게 되는 기분은 참담했다. 지면에 패대기쳐진 물고기마냥 막막해진다. 처절하게 살기 위해 아가미로 숨을 쉬는 꼴 이구나 이건. 벽에 기댄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데,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만큼 비참했다. 이게 바로 못 죽어서 사는 기분이구나 싶네. 이런 깨달음은 필요 없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다시 챙겼다. 밑도 끝도 없는 초조함과 등을 맞대고 산건 요 삼년 간 일상이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어. 이렇게 바닥까지 신경을 긁힌 건 처음이다.
카에데에게 빌린 노트북 콘센트도 이불도 모두 정리했다. 옷가지야 진즉 가방 안에 구겨 넣어 놨으니 상관없다. 노트북도 고장만 안 나면 되니 대충 옷가지 위에 얹어버리곤 가방을 챙겨서 일어났다.
이층 계단을 소리 내서 내려가니 아니나 다를까 거실에 있던 카에데가 내 모습을 보곤 눈을 크게 뜨고 일어났다. 그녀는 막 잠이 든 딸을 소파에 눕히곤 곧장 나를 따라 현관으로 달려왔다.
“어디 가려구?”
“왜. 어디든 가면 안 되는 것도 아니잖아. 내 마음이야.”
이 레퍼토리는 왠지 슬슬 뻔하네. 그렇게 중얼거리곤 구두를 신었다.
“빌린 거랑 숙박비는 방에 놔뒀으니까. 신세졌다.”
“타카히사!”
“ㅡ왜 그렇게 신경을 써? 카에데.”
나무라는 목소리에도 이젠 태연한 얼굴을 지을 줄 알게 되었다. 초조함에 차서 나를 올려보는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했다. 나는 머리카락을 넘겨서 귀를 드러냈다. 그리곤 그녀에게 보란듯이 귀를 툭툭 건드렸다.
“이것 때문에 그래?”
그녀의 시선이 내 귀로 옮겨갔다. 정확히는 귀에 있는 까만 피어스로.
“신경 쓸 필요 없어. 네 일방적인 약속은 한 번도 믿은 적 없으니까. 어차피 네가 마음 편해지기 위해 했던 말이잖아. 더 좋은 사람이니, 누군가니…나도 참 순진했지. 그 말을 그대로 믿다니.”
“…타카히사.”
“그런데도 이걸 하고 있는 건…그래. 내가 멍청해서 그랬어. 그치만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으니까 다 관둘 거야. 나도 내가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거든. 사람을 기대하는지, 미래를 기대하는지. 기대 해 봤자 실망밖에 안하니까 기대를 안 했다고 속여 봤는데, 그것도 마음처럼 안 돼.”
“그때 일, 원망하는 거야?”
“몰라. 알게 뭐야.”
정말 되는대로 내뱉고 있다.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으면 한다는 이유 하나로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고 앉았네. 아까 전에도 이랬던 것 같은데 참 발전도 없어.
발전이 없다고 하뉴 타카히사.
“당신 정말 뻔뻔해. 멍청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 이상 얼굴 볼 일 없게 하자고.”
“…….”
그녀의 입이 콱 다물어지는 걸 봤으니 이젠 됐다. 더 좋은 꼴을 볼 거란 기대는 진즉 접었으니까.
미련 없이 집을 나왔다. 이번에는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따라 들려오지 않는다. 그게 다행이었고, 조금은 섭섭해서 미련 없이 열쇠를 꽂아 시동을 걸었다. 가로등도 몇 개 없는 밤길로 무작정 핸들을 꺾는다. 어디든 나를 비참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그곳으로 갈 수 있게 해주길 바란 채 시선을 땅에 내리 꽂았다. 그런 곳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바라는 건 멈춰 서지 않았다. 바이크는 그렇게 나를 어두운 이국의 땅으로 안내했다.
02.
헤어짐의 순간을 기억한다. 어쩐지 기분 나쁜 습기가 가득 찬 비오는 날이었다. 짜증나는 습기가 빗물과 함께 쓸려간다면 이번에는 또 뭘 하며 놀까. 너와 함께 어딜 가면 기뻐해주는 걸까. 그런 생각들을 하던 비오는 날이었다.
영화처럼 운명적이지도 않게 헤어짐은 찾아왔다. 적어도 내겐 갑작스러웠다.
“왜 비 맞고 기다려. 우산 없었어?”
“타카히사가 비 맞으면서 올 것 같길래.”
이상한 동문서답이다. 복숭아빛 뺨이 색을 잃어버렸잖아.
비도 작작 맞아야지. 그녀의 볼을 가볍게 쓸어주며 웃었다. 그녀도 나도 비에 쫄딱 젖은 꼴이었지만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네 그럼. 편의점에서 우산이라도 하나 사자며 살갑게 말을 붙이고 손을 붙잡은 순간이었다. 그녀의 손이 자연스레 내게서 벗어났다.
“할 말이 있어서 기다렸어.”
“뭔데? …나 카에데한테 또 혼날만한 짓 한 기억 없는데. 어디 가게라도 들어가?”
“아냐. 그럴 자격 없어. 타카히사. 우리 이제 헤어져야 할 거 같아.”
“?”
단조로운 목소리였다. 빗소리보다 조금 큰 목소리일 뿐인데 내 세계를 가득 채우는 말을 하는 사람. 그녀의 말을 한 번도 놓쳐 본 적이 없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헤어짐을 이야기 하는 말이 또렷하게 들렸다.
“뭔 소리? 뭐 급한 약속 잡혀서 그러는 거면….”
“그 이야기가 아냐. 우리 관계를 끝내자는 거야.”
“…….”
“미안해. 사과하면 안 되는 건 알지만 그래도 미안.”
사락거리던 검은 머리카락이 달라붙을 정도로 오랫동안 빗속에서 서 있었을 게 뻔했다. 그렇게 비를 맞아가며 생각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이야기라면 뭐든 들어줬겠지. 내가 비를 맞고 올 것 같아서 함께 맞으며 기다렸다는 사람의 말이다. 어떤 부탁이든, 어떤 소원이든 다 이뤄줄 텐데.
“왜?”
“…….”
대답은 없었다.
영원이 존재하며 그 영원이 내 것이라 굳게 믿어 온 자에게 닥친 종말이다.
“너랑 있는 동안 진짜 즐거웠지만 괴로웠어. 감정을 전부 내게 기대는 게 보였는데 난 같은 마음이 아니니까.”
“…날 사랑하지 않았단 거야?”
그녀는 차분하게 고개를 저었다. 머리카락 끝에 매달린 물방울이 주변으로 가볍게 튄다.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그런 거랑은 다른 이야기야.”
“다른 게 아니잖아? 나를 좋아해주면 그걸로 충분해. 네게 뭘 바란 것도 없고. 그냥 곁에서….”
“미안. 너와 비슷한 무게로 널 사랑할 순 없어. 나는 너처럼 절실하지 않으니까.”
그녀는 내 시선을 피한 채였다. 여태껏 그녀는 한 번도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왜 피하는 거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다그치듯 이름을 부르자 그녀가 겨우 고개를 들었다.
“난 네 세상을 전부 채워주고도 남을 사람이 아냐. 네게 내 모든 감정을 쏟아 부으면서까지 밑 빠진 독이 언젠가 차오를 거라 믿으며 옆에 있지 못할 것 같아. …같은 무게로 사랑하고 있지 않다면 언젠간 끝날 뿐이니까. 언젠가 끝나버릴 거라면, 여기서 끝내려고 해.”
“…….”
더없이 진지한 말이었다. 내가 웃어넘기지 못하도록 더 이상 시선을 돌리진 않았다. 덕분에 이젠 내가 어쩔 줄 모르게 되어버렸다. 목구멍이 꾹 막힌 채 돌덩이가 내려앉은 마음을 무슨 말로 표현하란거야.
“…무게 같은 소리 하지 마. 난 납득 안 해. 저울로 재는, 그런 게 아니잖아. 밑 빠진 독이라느니 뭐니…그런 말은 한 번도 한 적 없었으면서!”
뒤늦게 들불처럼 번지는 이 감정의 정체를 알았다. 배신감이다.
함께 했던 짧은 시간들과 추억을 네가 파노라마처럼 흐트러트렸다. 함께 귀를 뚫던 날 아프다고 엄살을 떨었고 보기 좋게 태워버린 오코노미야키를 울상 짓다가도 웃으면서 절반씩 나눠먹었던 날, 나는 그런 것들로 충분했기 때문에 화가 났다.
할 일도 할 말도 없는 날 조차 네가 곁에 있어준다는 이유만으로 웃었다고.
적어도 나는 그것 만 으로도 행복했다. 지구별엔 나를 이해해줄 사람 따위 없다며 웃어넘겼던 어떤 이에게는,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어주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사람이 존재해준다는 것에 행복 할 수 있었는데.
“그냥 있어주면 된다고. 그 것 만으로 되는 건데 왜? 우리 둘 다 약속은 안 해도 알았잖아. 같이 있을 수 있다고. 오랫동안, 쭉!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ㅡ”
“그건 타카히사의 착각이야.”
“…….”
나만의 화성에서 온 줄 알았던 사람이 힘없이 웃었다.
“그럴 수는 없는 거야. 너를 완벽히 이해 해 줄 타인은 없어. 그걸 알아야 해 타카히사.”
어찌나 내게 와서 빛나도록 박히는 말인지. 나의 별이 눈앞에 있으니 더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의 마음을 으스러트린다.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못하도록 내 입을 막아버렸다.
“…우리는 결국 남이니까.”
마음이 별가루로 변해서 흩어지면 이런 기분이구나. 하, 보란 듯이 웃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견디질 못하고 마른 웃음이 터졌다.
“피어스. 같이 나눠서 하고 싶었는데 미안 타카히사.”
“사과 하지 마. 듣기 싫어. 난 인정 못해.”
한껏 이를 악물고 부정했지만 소용없었다. 지금이라도 발밑에 매달려서 애원하고 싶은 걸 자존심으로 참고 있으니까. 그녀의 서늘한 체온이 듬뿍 담긴 손조차 건드리지 말라며 뿌리치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에 같이 피어스를 나눠서 하자면서 같이 귀 뚫으라며 고집 부렸던 건 언제고. 쭉 함께 있겠다고 했잖아. 비겁해 이건. 원망하는 말은 끝없이 불어났다.
“새끼손가락은 감히 걸 수 없으니까 이걸로 대신할게.”
카에데는 까만 피어스를 내밀었다. 귀를 뚫었던 날 산 것이다.
귀 뚫은 건 일주일 기다려야 아문대. 그럼 일주일 후에 같이 나눠서 하는 거야.
나는 그녀가 작은 약속을 하면서 어떻게 웃었는지 아직도 기억해. 일주일이라는 시간의 기다림의 결과가 이거라면 차라리 약속 따윈 하지 말지.
“뭐야 그게. 누구 놀려?”
“타카히사는 좋은 애니까 분명 너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생길 거야. 이 피어스는 내가 하는 보증이야. 정말. 너를 정말로 행복하게 할 사람이 나타 날거라고 약속할게. 너는 그만큼 좋은 사람이야. 좋은 애야.”
그녀는 내 손바닥에 피어스를 올려놓았다. 그리곤 꼭 놓치지 말라는 듯 하얗고 고운 손가락이 주먹을 쥐도록 손을 천천히 감쌌다.
“……대단해 너.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사람하게 만들다니.”
드디어 카에데를 보며 헛웃음이 터졌다. 구명조끼를 빼앗는 대신 나무판자를 던져 줘놓고 그런 말이라니, 이 정도면 박수 나올 만큼 대단하잖아.
“차라리 처음부터 싫었다던가, 그런 식으로 둘러대지 이게 뭐야.”
“…….”
“뭐냐고 정말…….”
갈라서기 시작 한 순간부터 깔끔하게 미워 할 수 있다면 편할 거다. 다만 여전히 카에데를 너무 좋아해서 문제였다. 그녀에겐 내가 필요하지 않겠지만 나에게 그녀는 아주 절실한 사람이거든. 네가 없으면 죽어버리겠다는 유치한 협박은 못하겠지만, 아마 조용히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게 낫겠다 싶겠지. 나는 ‘나를 필요로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니까.
아무도 이런 마음을 이해 해 주진 못할 거란 걸 이미 잘 알고 있다. 이미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별거를 시작하고 이혼수속을 밟아가는 동안 그 사이에 있는 듯 없는 듯 남겨지는 아이의 마음에 관심 가지는 사람이 없는 것과 비슷하다.
존중 받지 못하는 감정에는 가치를 매길 수 없다. 지금 이 순간부터 카에데를 생각 해 봤자 소용없단 걸 알아. 알지만. 알고 있지만.
“잘 있어. 타카히사.”
간단한 작별인사. 나는 대답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떠나는 걸 선택 한 이상, 나 혼자 남겨진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니 최선을 다해 그녀를 잊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당분간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약속한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쭉 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할 거야. 처음부터 다른 사람에게 뭔 갈 기대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냥 조금 사귄 적이 있었다. 그 정도로 둘러대며 내게도 거짓말을 하고. 나를 사랑 해 줄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는 마음도 전부 묻어버린 채. 기대 한 만큼 돌아온 실망을 부정하겠지.
끝내 잘 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마주 인사 해 줄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비오는 날의 기억은 그것으로 끝이다.
그 후 그녀가 유학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소식을 잊어버릴 때 즈음에는 결혼 소식을 들었다. 결혼식에 초대 받았다는 아버지 대신 여행을 겸해서 가보지 않겠냐는 형의 제안에는 서슬퍼런 얼굴로 대답을 대신했었다.
그녀는 내 과거의 사람이 되어 그대로 묻어버려야 했지만 이상하게 피어스만은 떼어놓지 않았다. 약속대로 나를 찾아 올 사람을 바라고 있었던 건지, 혹은 그녀가 다시 찾아오기를 바란 건지 그런 건 나도 잘 모르겠다. 어차피 이렇게 남겨진 마당에 그런 걸 따지는 건 무의미하니까.
이젠 정말 무의미해진 일이잖아. 새삼스럽게.
점점 뜨거워지는 차체와 함께 핸들을 쥔 손에 처음처럼 힘이 들어 가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목적지가 없이 그저 커다란 도로를 따라 무작정 달려 나갔는데 어느새 조금 풍경이 달라 진 것 같기도 하다. 헬멧 너머의 좁디좁은 시야로 주변을 곁눈 질 한 게 고작이었지만 새벽 밤길은 정말 깜깜한 어둠뿐이었다. 계기판과 라이트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아니라면 내 자신이 여기에서 달리고 있는 것조차 잊어버릴 만큼의 짙은 밤이다.
이제야 단언 할 수 있지만 이번 여행은 아마 인생 최악의 여행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거다. 가만히 있어도 바늘방석 같은 곳에서 묵으라는 말과 함께 표를 끊어 놓은 형의 안면에 벌써 상상 속에선 수백 번이나 주먹을 꽂았다. 아무리 사람이 꼴도 보기 싫어도 그렇지 이런 방식으로 치워버릴 건 없잖아.
입술을 천천히 깨물고 나서 한발 늦게 찾아온 이성이 오늘 저녁은 어떻게 할 건지 물었다. 진짜 무계획의 끝이다. 면허증이라도 내놓으라는 경찰을 만나면 끝인 거잖아 나.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말도 제대로 안통하고. 바이크에 기름이라도 떨어지면 정말 객사 할지도 모른다고. 더듬더듬 영어로 표지판 정도야 읽고 있지만 읽으면 뭣하겠어. 제대로 된 지명도 모르는데.
일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탈 수 있을까.
형이 말한 귀국편 티켓은 짐 가방 어딘가에 쑤셔 넣어뒀던 것 같은데 어디에 넣어뒀더라.
아니, 애초에 내가 돌아 갈 때 까지 사람답게 지낼 수는 있나. 자칫하면 우에노역의 노숙자 꼴을 하고 미국 땅 한가운데에서 부랑자 생활을 이어갈지도.
썰물처럼 빠져나간 감정들을 제치고 또다시 자질구레한 생각들이 차오른다.
타카히사는 생각이 너무 많다던 말을 예전 야츠야나기 선배에게서 들은 적이 있는데, 이제와서 생각 해 보니 그건 꽤 정확한 표현이다.
사서 걱정. 사서 고생. 정작 중요한 건 모른 채 하고 곧 흘러가버릴 것들이나 내 힘으론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만이 끓어 넘치고 만다.
지치고, 피곤해. 이런 감정을 끝장 낼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졌다. 가장 빠르고 간편한 방법은 죽는 걸지도.
순간 시야에 들어온 물체를 보고 갑작스레 핸들을 틀었다. 연이어 브레이크.
60km/s를 가리키던 바늘이 훅 떨어진다. 브레이크를 잡은 손에 경련이 일어 올 만큼 갑작스러운 도로 이탈.
아슬아슬하게 바이크에서 튕겨나가진 않았지만 조금 위험한 소리를 내며 차체가 덜컹거렸다. 간신히 무게 중심을 잡았지만 육중한 무게의 바이크는 한번 거칠게 흔들리자 그대로 운전자를 지면에 처박으려 들었다. 재빨리 페달에 고정하고 있었던 다리를 내렸다. 본능적으로 어떻게든 해보려 차체를 비틀고 안간힘을 쓰자 부츠 밑바닥이 긁히는 감각과 함께 발을 접지를 뻔 했다.
어찌어찌 중심을 잡고 완전히 자리에 멈춰 서자 겨우 쿵쾅거리는 심장을 다스릴 수 있었다. 나는 숨을 몰아쉰 채 헬멧을 벗어던지고 바이크에서 내려왔다.
도로가가 황무지에 인접해 있다는 게 천만 다행이었다. 옥수수 밭이라던가 그런 거면 이 부근 작물 농사를 모조리 망쳤으리라. 워낙 어두운 밤길이라 바퀴자국이 났는지까지는 모르겠으나, 먼지바람이 자욱했다. 어찌나 핸들을 브레이크를 세게 쥐었는지 손이 후들거리고 있었다. 발도 조금 욱신거리는 게 삔 걸지도 모른다.
부자연스런 걸음걸이로 방금 핸들을 구십도로 꺾어버리게 만든 물체를 바라보았지만 잘 보이지가 않았다. 도로 한가운데 쓰러져있던 물체가 무엇이었는지, 아주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당장 바이크의 시동을 꺼버리곤 그 물체를 확인하기 위해 도로가에 조심스레 다가섰다.
옅은 달빛에 비춰진 건 로드킬 당한 사슴이었다.
아마도 트럭이나 커다란 차가 치고 간 건 모양이다. 크기로 봐선 새끼 사슴 정도다. 다 큰 사슴만큼 무식하게 큰 건 아니지만, 도로 가운데에서 길을 막고 있는 걸 못 봤다면 아마 나까지 한 번에 저승길 사육사가 되버릴 뻔 했지 뭐야.
“……아. 젠장.”
그 짧은 순간에 지쳐버렸다. 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쉬었다. 사람이라도 치여 있나 싶어서 저도 모르게 간담이 서늘했던 것이다. 경찰을 불러야 하나. 미국 경찰 번호는 몇 번이더라, 똑같이 110번? 영어도 안 되는 인간이 신고 해 봤자 치여 죽은 사람이라면 내가 범인으로 몰릴게 뻔한잖아. 형이 미국까지 올 리는 없겠지? 변호사는? 카에데에게 다시 연락해야 하나? 핸드폰이 통하긴 하나? 근처에 사람 사는 곳은?
ㅡ온갖 생각을 다 했던 일분 동안의 자신이 너무 웃겨서 허탈웃음이 터졌다. 빌어먹을. 겁 많고 생각 많고, 이런 걸로 안도하고 앉아있는 내가 너무 우습고 하찮아서 죽을 것 같다. 그렇게 로드킬 당한 사슴 앞에서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던 것 같다.
무리하게 힘을 주고 비틀어댄 발목과 손가락이 시큰거렸다. 기분 나쁘게 눈을 까 뒤집고 죽어있는 사슴 한 마리를 살펴보고 있는 기분도 썩 좋지 않았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잠시 뿐이다. 어쩌면 나도 이렇게 죽으려나. 아마 이런 말은 입 밖에 낸다면 형이라던가 라이더부 같은 애들은 날 나무라겠지. 하지만 이젠, 정말 솔직하게 그런 생각 밖에 안 들어.
피곤하다 못해 목이 뻐근해졌다.
아무 생각 안 하고 쉬고 싶은데 차오르는 생각을 어떻게 하면 무시 할 수 있는 걸까.
내 안으로 차오르는 감정들을 전부 흘려보내는 걸 어떻게 할 수 있었지? 카에데와 헤어지고, 학교를 졸업하고. 아무 것도 안 남고 한심한 내 자신을 그럭저럭 용인했던 삼년간의 시간동안 발전이라곤 조금도 하질 않았어. 전혀 ‘어른’이 되질 않았다고.
나도 안다. 형은 내가 이러고 앉아있는 꼴이 보기 싫었던 거란 걸 실은 알고 있어. 뭘 해도 아깝지 않을 젊은 놈이 학교 졸업하기 무섭게 모조리 포기해버린 꼴이 싫었던 거겠지.
그런데 형이 싫어하는 만큼, 나도 싫다고.
나도 내 자신데 싫은데 어째야 할지 모르겠어. 뭘 해야할지, 뭘 하면 내가 더 즐거울지. 그냥 매일매일 먹던 사료만 먹으며 갇혀 사는 개새끼가 된 기분이다. 그런데 난 목줄은 없는데 대체 어디에 메여있는 건지.
아무도 없는 도로가와 치여 죽은 사슴 한 마리 앞에서 가만 주저앉아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여러 가지 의미로 내 생에 두 번은 못 겪을 경험이다.
사슴을 내가 치여 죽인 것도 아닌데 끔찍한 자괴감이 뒤따랐다. 난 이 감정의 출처를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이런 상황에 처한 나 자신을 향한 감정이다.
계획 없는 여행. 후회 많은 선택들. 뚜렷하게 목적 없는 삶.
그런 삶에 익숙해지고 있는 자신을 향한 자괴감이다.
“…….”
끝이라는 건 언제 찾아올까. 그건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찾아올까. 눈을 감고 가만히 모든 게 끝나버렸으면 할 때 지구가 운석과 충돌해서 폭발해버린다던가, 혹은 잠이 든 직후 천천히 새어나온 가스에 죽어가는 줄도 모른다던가. 그런 식으로 내가 원하는 끝이 찾아올까.
그런 끝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반대로 시작은 어떻게 찾아올까?
끝과 함께 태어난다는 시작이라는 녀석은, 내가 원할 때 내게 꿈이나 희망이나 즐거움을 동반한 목적을 가지고 찾아와주는 것일까. 내게도 시작할 기회라는 걸 주기는 할까.
그렇다면 참 좋겠어. 적어도 지금보다는 사는 게 즐겁고 숨 막히는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다신 안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메우고 만다.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식으로 끝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부모님의 이혼 소식도, 카에데와의 헤어짐도, 제법 괜찮았던 동아리의 고문 선생을 떠나보낼 때도 그랬다.
무엇이든 단 한 번도 내가 원하는 대로 끝나 준적은 없었다.
아직도 교복을 던져주고 학생이라는 도장을 찍어준다면 돌아 갈 수 있을 것 같은 고등학교 시절도 이미 끝나버렸다. 이제와서 생각 해 보면, 그 때야말로 내가 가장 솔직하게 변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 기회를 놓쳐버렸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제대로 고칠 순 없을 거야.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던가, 감정을 담은 말들을 전하는 건 너무 어려워. 혓바닥이 굳어버리거든.
그 때도 그랬으니 지금은 더 하겠지. 이대로 변할 수 없을 거다. 끔찍한 현실이다. 끝조차 마음대로 내지 못한 내게 원하는 대로 시작 할 기회가 찾아 올 리는 더더욱 없으니까.
최악이네, 그렇게 중얼거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눈깔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사슴 한 마리가 마치 내 자신처럼 보였다. 산속 한 가운데에서 죽은 것도 아닌, 정체 모를 무언가에게 치여서 숨이 끊어 진 야생동물. 원치 않은 끝을 맞이한 모습에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말았다. 언젠가는 나도, 너처럼 될까. 아마 그럴 것 같지?
바이크의 시동을 켰다. 연료 표시등에 아직 빨간불이 켜지지 않았으니 그럼 된 거란 생각이 들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디 한 번 가보자고. 그렇게 중얼거리곤 다시 헬멧을 썼다.
내가 원치 않는 방식으로 끝장날 때 까지 머나먼 이국의 땅을 달리고 또 달린다면 언젠간 만나겠지. 나를 끝장내버릴 결말. 그게 어떤 거라도 지금은 상관없어졌다. 트럭에 치이든,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목이 꺾이든, 허리케인에 휘말리든 말이야. 어차피 원하는 대로 될 리가 없었던 세상이니까.
자포자기에 지쳐버린 밤이다. 사슴 시체를 흘끗 바라본 후 나는 다시 액셀을 밟았다.
03.
반쯤은 넋이 나간 채 시동을 껐다. 얼핏 주행거리를 체크 해봤더니, 잠깐만. 뭔가 이상한 숫자가 떠있는데. 주행거리 411km?
미친 거 아닌가. 땅 덩어리 작은 일본에서는 하룻밤 동안 이렇게 정신없이 달려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저도 모르게 현실을 의심할 숫자긴 했다.
벙 찐 얼굴로 헬멧을 들고 있던 것도 잠시 뿐이었다. 나는 계기판을 무의미하게 두들긴 후 백미러에 헬멧을 올렸다. 그리고 장갑을 벗은 손이 덜덜 떨리는 걸 보고 깨달았다. 정말 날이 샐 때 까지 달린 셈이다. 짙은 밤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치 환하게 날이 밝을 때 까지 달린 것이다.
일본에서의 장거리 주행은 기껏해야 당일치기로 다녀온 바닷가가 전부였던 데다가 그것마저 백수 생활 하는 동안은 기름이 아깝다며 애마에게 덮어둔 방수 시트조차 치우질 않았었다.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은 드라이버가 한 짓 치고는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만 로드킬 당했던 사슴도 알아서 피했고ㅡ어쩌면 간밤에는 정말 운이 좋았던 걸지도.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그저 주행에만 집착 했던 결과물이란, 골반을 기준으로 분리 될 것 같은 상체와 하체다. 여태까지 뻣뻣하게 경직 되어있던 자세를 풀고 한걸음 씩 내딛고 있을 뿐인데 내 몸이 맞는 건지 싶거든. 깜빡거리는 빨간 주유등과 뜨거운 엔진열 같은 건 어디 까지나 부수적인 문제다. 체력이 완전히 끝장나기 전에 쉬어 갈 수 있는 펍을 발견한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바로 맞은편에는 셀프 주유소가 있으니 가는 길에 들리면 될 테고, 일단은 눈부터 붙이고 싶었다.
벌써 아침 여섯시를 넘긴 시간이라 이젠 선글라스가 없으면 주행이 힘들다. 아무리 체력이 좋다고 해도 연속 아홉 시간 주행은 못 해 먹겠어 제기랄. 더럽게 큰 땅덩어리 같으니.
누구에게 하는 건지 모를 불만을 토해내고 펍의 문을 열었다. 24hour. 하루 종일 영업한다는 펍 이라는 건 알겠고, 제대로 나머지는 쉴 수 있는지가 문제인데 맥주잔 그림과 침대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걸로 봐서는 몸 뉘일 장소는 있다는 것 같다.
의외로 펍의 내부는 좋은 의미로 내가 생각 했던 것과는 달랐다. 바깥 외견은 원목으로 꾸며져 있어서 당연히 오래 된 펍 일거라 생각했는데 내부는 깔끔한 테이블과 현대식 디자인이 접목 된 공간이라 모르는 사람이 볼 땐 재즈바나 카페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밀대로 가게 바닥을 구석구석 닦고 있는 남자 직원이 내가 들어온 걸 보고 인사를 건넸다. 끄덕이고, 다가가서 입을 열었는데- 어, 잠깐만. 그러니까….
“어……음……. 아이 원트…….”
그 후로 이어진 영어란 사실 고등 교육을 받아온 인간으로서는 부끄러울 수준이다.
“크흠. 익스큐즈미아이원트고투배드슬립. 하우머치이즈뎃.”
“…Pardon?”
“……환장하겠네 진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죽고 싶다. 자기성찰을 할 만한 양심은 있거든. 일본어 발음이 끝내줬던 모 동아리의 유학생 선배의 혼이 한 3분만 강림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벌린 건 입이고 움직이는 건 혀인데 정작 이놈의 대가리가 굴러가질 않으니 뭐라 말이 나오질 않는다. 진짜 딱 환장하겠다. 이래 뵈도 내 지식을 총 동원한 영어였다고.
망부석마냥 굳어서 이대로 걸음을 돌려서 나가야 하나 싶어졌다.
그 때였다.
푸훗, 하고 웃음보가 터진 소리가 들렸다.
“으하하하!”
국적과 인종이 달라도 감정은 전해진다. 누가 날 비웃나 싶어서 빛과 같은 속도로 소리의 근원지를 노려보았는데, 뭐야 이 새빨간 머리의 여자는.
나이는 스물 중반 정도로 보이는 게 나보다는 아주 약간 연상으로 보이는 동양인이다. 미인, 이라고 하기에는 들어올 곳도 나올 곳도 묘하게 일직선이라 눈이 튀어 나올 정도는 아니고. 다만 빨간 머리를 시원하게 친 머리스타일이 인상적이라 상당히 발랄 해 보이는 인상의 여자였다.
여자는 시원스럽게 웃는 걸 숨기지도 않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아주 잠깐 동안 나를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더니 그 즉시 내 앞에 서있던 직원에게 유창한 영어를 쏟아내는 게 아닌가.
“Jason, this gentleman seems to be looking for a room.”
“Oh, so that was what he said? Since Martha is cleaning the rooms right now, he'll have to wait a bit though.”
“All right. I'll do the interpreting and let him know. 이봐요! 지금 청소중이라 당장은 힘들대요. 싱글 룸 찾는 것 맞나요?”
“어……어. 일단 지금 누울 수 있으면 돼.”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얼떨떨한 기색을 상대방도 읽었는지 그녀는 살짝 웃고는 직원에게 몇 마디를 더 던졌다.
말 한마디 제대로 안 통하는 곳에서 만난 행운이라면 행운인데 뭐라고 꼬부랑 씨부랑 거리는 거야. 도통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 대화의 흐름에 따라가든가 할 거 아냐. 황당하게 그 자리에 못 박혀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여자는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얼핏 듣기론 싱글룸 어쩌고 하는 걸로 봐선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통역 해 준 것 같다.
그 후 아주 잠시 동안의 시간이 지난 직후, 여자는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청소가 다 끝나면 알려 줄 테니까 홀에서 기다리라고 하네요. 방은 후불이에요. 뭐 먹을 거에요?”
“콜라 하나. 원 콜라 플리즈. 어? 이거면 될 거 아냐.”
“일본어로 ‘콜라’라고 하면 미국에선 못 알아들어요.”
“…그 정돈 나도 알아. 방금 겪었는데 뭘.”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여자는 까르르 웃었다. 나를 비웃으려는 의도는 없는 건 확실했지만 저 정도로 킥킥거리며 웃으면 조금은 모가 나기 마련이라고. 나는 부루퉁한 얼굴을 감추지 않고 의자를 빼서 걸터앉았다. 눈이 멀 정도는 아니지만 슬슬 아침 해가 강해질 시간대라 창가 앞에 앉을 순 없었다. 청소에 방해는 되겠지만 어쩔 거야. 내가 손님인데.
빈 방이 나오면 바로 머리 처박고 잠부터 자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멍하니 테이블을 내려다보았다. 시차 차이는 금방 극복 했는데 의외로 피곤함이 장난이 아니다. 결린 어깨를 주물거리며 졸린 눈을 억지로 뜨고 있는데 테이블을 콩콩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또 그 여자네.
“여기요.”
“…….”
나는 말없이 병뚜껑이 날아가 있는 콜라를 받아들였다.
그녀는 내가 고개를 까닥 하곤 콜라를 가져가는걸 보더니 흐음, 하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원래 그렇게 고맙다는 말에 인색 한 거에요?”
“…….”
“말 안통해서 곤란 해 하는 거 통역두 해주고 마실 것도 가져다 줬는데…아니 뭐 고맙단 말 들으려 한건 아니지만 원래 그렇게 붙임성이 없어요?”
“미안하게 됐네. 신세 졌어.”
“아뇨 천만해요. 엎드려서 절 받을 생각으로 한 말은 아니구요.”
그럼 애초에 말을 말던가. 다시금 어이없어져서 내 눈꼬리가 찢어지는 꼴을 여자는 가만 보고 있었다. 아주 잠깐 나와 여자의 눈이 마주쳤다. 파란 눈동자가 나를 겁낼 것 하나 없다는 듯 똑바로 바라본다.
먼저 시선을 피해버린 건 나였다.
옆옆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비스듬히 마주 본 자리에 앉은 그녀는 자신의 음료를 내려놓고는 여전히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자 그러면….”
“……?”
“안녕하세요?”
“…….”
“음…Hi?”
“당신 말야, 이상하다는 소리 종종 듣지 않아?”
“아뇨. 거의 그런 말 안 듣는데. 인사 안 해 줄 건가요?”
“누가 그렇대? ……그래. 안녕.”
짐짓 놀랍다는 어조로 내게 되묻자 오히려 내 페이스가 망가졌다. 나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려 했으나, 그녀가 연이어 웃어버리는 모습은 생각보다 봐줄 만 했다. …심심하기도 하니까. 말을 걸어오는 걸 피할 정도는 아니네. 본인 말마따나 도와준 사람이기도 하고. 그녀는 턱을 살짝 괸 채 피식 웃었다.
“반가워요. 난 류시월…시월류 에요. 일본식으로 표현하면…성으로 부르니 류 라고 해야 하나? 류 라고 해요.”
“어 그래.”
내가 아는 ‘류’는 묘하게 사람 속을 긁었던 어떤 도서부원인데. 그쪽은 미즈타니가 맞지만. 여하튼 타카스기 녀석에게 전에 한번 그렇게 말했다가 ‘어디가 어떻게 속을 긁었길래 그래?’ 라며 황당해 해서 말은 못했지.
저도 모르게 딴 생각을 하다가 이번에는 네 차례라며 가만 이쪽을 응시하는 그녀…류의 시선과 마주해야 했다.
“하뉴. 하뉴 타카히사.”
“하뉴, 만나서 반가워요.”
“…그래.”
내 단답형의 대답에 그녀는 또 한 번 으하하, 하고 어딘가 이상한 웃음을 지어버렸다. 치아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웃음이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거야.
“진짜 재밌는 사람이네요.”
“어디가?”
“딱히 콕 찝어 말할 수 없는 부분이요.”
그건 내가 할 말인데. 본인에게 말하는 것 대신 콜라로 목을 축였다. 눈앞의 그녀도 빨대로 얼음을 콕콕 쑤시며 말을 이었다.
“키도 엄청 큰데, 이 주변 사람은 아닌 거 같고. 그거 알아요? 이 주변은 거의 공장 트럭들이 쉬어가는 중간 휴게소 같은 곳이거든요. 아까 다섯 시 좀 되기 전에 트럭들이 다 가버려서 이런 시간에 객실 청소 중 인거고…아니 어쨌거나 외지인은 꽤 드물어요. 좀만 더 가면 네바다 주州 인데 여기서 멈추는 사람은 외지인뿐일 걸요. 어디서 온 건지 물어도 되나요?”
“나도 몰라 어디서 온 건지. 밤새 달리기만 해서.”
“세상에나. 그럼 밤새 운전 하다 들렀단 거네요?”
“어.”
“그쪽 식으로 표현하면 장군감이네요. 그쵸.”
“몰라. 그런 거 물어보지 마.”
조금 난감해졌지만 나는 꼬박꼬박 대답했다. 약간 졸린 것도 있어서 퉁명스럽게 들릴 대답인데도 여자는 불쾌한 기색 하나 없이 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뒤이어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하뉴는 키가 참 크네요. 2미터?”
“191.”
“와, 농구라도 하나 봐요?”
“안 해. 운동 중에 못 하는 건 없지만.”
“여자친구는?”
“있으면 혼자 이러곤 안 있어. 이상한 거 물어보지 마.”
“하긴. 그럼 혼자서 하는 자아 찾기 청춘여행 그런 거 에요?”
“그렇다기보단……쫓겨 난 거야. 쫓겨 난 곳에서 뛰쳐나왔다는 게 더 정확한가.”
“누가 괴롭혔어요? 가족 학대?”
“왜 그런 구체적인 이야기가 되는 건데. 당신이 보기엔 이 덩치에 맞고 다닐 거 같아? 집구석에 처박혀 있기 싫어서 나온 게 당연하잖아!”
“아니면 아닌 거죠, 왜 역정이람. 여튼 그래요. 하뉴는 답답한 마음에 집을 뛰쳐나온…어, 고등학생은 학생은 아니죠?”
“대학생도 아냐.”
“그래 보여요. 대학생이 지금 이 시기에 이러구 다니면 큰일 나죠. 어쨌든 그럼 답답한 마음에 집을 뛰쳐나온 청년이란거네요 하뉴는.”
일본인은 아닌 것 같은데 거참 말 한번 청산유수다.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끄덕였다. 마치 쉴 새 없이 알아서 떠드는 라디오를 틀어둔 기분이다. 다만 그 라디오가 나와 대화를 시도한다는 게 특이한 점이다.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준다고 표현 할 수도 있겠지만, 프라이버시적인 측면에서 쉴 새 없이 물어보는 이야기란 하나같이 여자들이 모여서 할법한 수다거리 소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정도 쯤 되면 내가 적당히 대답 해 주고 있다는 걸 알 때도 되었을 텐데.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내가 대강대강 대답해도 그리 상관없는 건지. 류는 질문을 계속했다.
“원래 그렇게 잘 안 웃어요? 웃으면 잘 생겼을 거 같은데. 그런 말 들어 본 적 없어요?”
아니. 들어 본 적 있을 거다 아마. 그치만 이건 안 웃으면 못생겼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되나.
“원래 누구든 웃으면 미남 미녀처럼 보인다고.”
“하긴.”
그녀는 간단하게 수긍한다. 재미없게 수긍 할 거면 뭣하러 따지냐. 그리고 또 질리지도 않는지 계속 말을 걸어온다.
“그럼 하뉴는 이제부터 어디로 가는 건가요?”
“몰라.”
“?”
의아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일부러 피해버렸다. 그녀가 보기 싫어서, 라기 보다는. 이 질문을 똑바로 마주 한 채 대답하는 게 어쩐지 창피했기 때문이다.
“모른다고 한 거야.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데 어디로 갈지 생각 해 뒀을 리 없잖아. 그냥 도로 따라 가다가 멈춰 세워지면 멈추는 거고. 돈이 떨어지면 그 때 가서 생각하고. 계획 같은 거 없어.”
“꽤나 즉흥적이네요.”
“계획적인 인간이면 여기까진 안 왔겠지. 원래부터 그런 인간이야 나는.”
저도 모르게 자조적으로 중얼거리고 콜라를 내려놓았다.
카에데의 집에서 뛰쳐나온 지 대략 반나절동안 어디 뒀는지 모를 핸드폰으로 연락 할 사람 연락 올 사람 한명 없고 앞으로의 계획은 더더욱 없다. 좋게 봐 주려고 해도 봐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지만 속이 새카맣게 썩어가는 기분이다. 그다지 우울하진 않지만 유쾌할 일이 없는 시간들이다.
“그런가요. 하지만 나쁜 게 다 나쁜 건 아니니까…. 하뉴가 계획 없이 와서 우리가 만난 거니까. 반대로 좋은 일도 있고 그렇죠? 모든 일은 다 동전같이 양면적인 거 에요. 좋진 않아도 나쁜 것만은 아니죠.”
남의 속도 모르고.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동의를 구하지만 난 뚱해질 수 밖에 없었다.
계획 없이 사는 인생도 마냥 나쁘지만은 않을 거다, 그런 건가.
지나친 비약이란 건 알지만 이젠 슬슬 이 대화가 지겨웠다. 피곤한 와중에 쉴 새 없이 말을 걸어오는 이 여자 때문이야.
“ㅡ당신 굉장히 머리가 꽃밭 인가봐?”
제 목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조금은 놀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날카로워졌다.
“그게 아니면 사람을 화나게 할 만큼 오지랖 넓은 걸 고치라는 말은 들어본 적 없나보지? 나한테는 별로 좋은 일 아닌데? 오지랖 넓은 것도 정도껏 해. 나는 당신처럼 나랑 거리가 먼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짜증나.”
정말이다. 쿠로야나기라던가 코우토처럼 내가 그럭저럭 괜찮게 봤던 녀석들이라면 어쩔 수 없다며 넘겨버리지만, 자기 인생 갈 길이 확실한 사람들이 긍정론을 펼치고 있으면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좋겠네, 그렇게 살 수 있어서. 애초에 난 그런 걸 순수하게 부러워하면서 본받는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고. 비꼬고 대단하시다며 박수를 쳐준 후 끓어오르는 불편함 감정들마저 이내 자기혐오로 변한다.
목표도 계획도 없는데서 오는 초조함을 누군가에게 이해 받을 거라곤 기대도 안 해. 어차피 다들 간단하게 대답하겠지.
‘목표를 세우면 되잖아. 계획을 짜보면 되잖아.’
상상만으로도 다시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래도 여자고 도와줬던 게 있으니 최소한의 도리로 때리진 않겠지만 이 정도면 머쓱해서 떨어져 나가겠거니 싶어 그대로 한참을 있었다. 곧 내 예상은 오산으로 바뀌어버렸다.
“하뉴와 내 거리가 멀고 가까운 건 벌써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
“어제 만난 사람, 오늘 만난 사람, 십분 전에 만난 사람 중 시간 재서 친구로 분류하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그런 거 분류해서 어디 쓰려구요? 사람이랑 벽 치는데 써요?”
시월류는 조금 황당하다는 얼굴로 내게 되물었다. 이런 반응이 돌아 올 거라곤 생각 하지 못해서 나 또한 이상한 얼굴이 되어버렸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여잔.
“이봐요 내게 정 떨어지는 말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애초에 난 당신에게 정을 붙이기 위해서 말을 거는 게 아니라구요.”
“그럼 뭣하러 말 거는데?”
“그건, 그러니까…음.”
어차피 심심풀이로, 재미있을 거 같아서, 그런 대답이 돌아오겠거니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대답이 돌아온다면 얼마든지 이죽거리며 받아쳐주려 했는데.
“아들 같아서?”
쾅 하고 부츠로 바닥을 걷어찼다. 테이블을 걷어차지 않은 건 순전히 우연이다. 뭐야 이 인간.
“웃기지 마. 이상한 여자.”
“대체 무슨 말 때문에 당신이 기분을 상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 음. 모르면 제대로 사과도 할 수가 없잖아요. 알려줄래요?”
“그럴 생각 없어. 말 걸지 마.”
때 마침 직원이 내게 룸 열쇠를 가져다 준 게 행운이었다. 정말로 이 여자랑 같이 있으면 내가 미친놈이 될 것 같다.
관두자고 진짜.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테이블 아래에 두었던 짐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비운 콜라병을 내려놓으며 그녀를 노려보았지만 상대는 눈 하나 깜빡하지도 않았다. 하. 저도 모르게 새어나온 비웃음을 뒤로하고 객실로 연결된 계단을 쿵쾅거리며 올라갔다.
끝까지 내 쪽을 향해 웃음을 잃지 않고 바라보던 표정이 생각나서 자꾸만 배알이 뒤틀렸다.
객실 문을 소리 나게 닫아버린 후 방 안에 들어섰다. 창문이 좀 작다는 것만 빼면 생각 보다 깔끔한 방이었다. 침대 하나와 물컵, 주전자. 단촐한 내부였지만 오히려 그런 삭막함이 지금의 기분을 대변해주는 것만 같았다. 부츠를 벗고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눕는다.
밤새 핸들을 쥔 피곤함도 피곤함이지만, 잠깐 동안의 성가신 대화 때문에 피곤함이 갑절로 늘었다. 평소 쓰던 것 보다 훨씬 낮은 베개와 날이 밝아오는 아침.
마냥 신선하고 새로운 지구 반대편의 경험들이 그리 즐겁지 않았다. 그 여자의 말대로 세상의 모든 일이 동전처럼 양면성을 띄고 있다면 이 답답함의 반대편에는 뭐가 있다는 거야. 나를 향한 혐오감과 등을 맞대고 있다는 게 뭔데?
내 초조함이 가져온 좋은 점 따윈 하나도 없었다고. 없어서 이렇게 답답하고 고집스런 멍청이가 되었단 말이다.
있을 리가 없잖아. 조용하게 읊조린 목소리는 생각보다 우울하게 들렸다. 아무래도 기분 좋은 꿈자리를 맞이하기엔 글러버린 거 같다.
그리고 이런 예감은 놀라울 만큼 잘 적중 하겠지.
마치 별들이 부서져 내린 것 같은 세계다. 소원을 이루어진 별들이 우리 주변에 가득 차있고, 이뤄지지 못한 소원을 찾아 떠돌고 있는 그런 세계에서 서있다. 안녕 하뉴. 안녕 얘들아.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나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기대라고.’
이상하네. 애들의 얼굴이 안 보여. 난 누구를 향해서 말 하고 있는걸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이윽고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변해서 나를 덮친다. ‘멍청한 놈.’ ‘너한텐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너한테 말 해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걸.’ ‘넌 아무것도 할 줄 모르잖아.’
아하. 이건 꿈이다. 왜냐하면 애들은 내게 그런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어. 그런 말은 하지 않는 녀석들이니까. 이런 나조차 친구라고 이야기 해준 애들이라 좋아할 수 있었다. 힘든 시간이긴 했지만 그만큼 함께 있는 건 즐거웠거든.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다.
나도 잘 표현 할 수 없었지만 싫어진 적은 없었어. 이제와서 다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 갈 수는 없단다. 너희가 그 꿈의 세계를 부숴버렸잖니. 네가 원하는 자신이 될수 있는 화성세계를 직접 포기했는걸.’
떠다니는 별조각들이 속삭인다. 과거로는 돌아 갈 수는 없어. 각자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단다. 물론 너만 빼고 말이야.
너는 아직도 자기 그릇의 크기나 재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지만,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자신의 길을 찾고 인생을 걸어가고 있어.
부끄러운 줄 알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화를 낼 고집조차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그리고 남은 건 정말로 부끄러워서, 울고 싶을 정도로 비참해진 내가 외친다. 아니야. 나는 잘못되진 않았어. 내가 이상한 건 아니란 말이야.
하지만 항변이 무색하게도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는 멈추질 않고ㅡ이내 눈앞에서 차례대로 나를 좋아해주었으면 했던 사람들이 떠나간다.
부모. 형제. 카에데. 친구들. 그리고 그 중에서는 내 진심조차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잉어연을 들고 떠난 사람도 있다. 어떻게 말하든 전해지질 않아. 그래서 난 말하기를 포기해버린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왜 인생을 살아가는 가이드북 같은 건 없는 거야. 삶이 기나긴 여행이라면 내겐 이정표조차 세워진 적이 없는걸.
하고 싶은 일도 없어. 할 줄 아는 것도 없지. 내 곁에 있어줬으면 했던 동반자들은 차례대로 떠나버려. 함께 길을 걸었으면 했던 친구들도 각자가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가고, 나는 키만 크지 걸음이 느린지 좀처럼 따라 잡을 수가 없어. 계속 남겨진 채야.
“따라갈 수가 없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무슨 개 같은 꿈이야?
“…….”
더위와 땀에 절여진 머리카락이 목에 쓸렸다. 들뜬 목소리로 지껄이고 나서야 비몽사몽이었던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방 안은 너무 더워서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제대로 먹은 것도 없었고 예상대로 심란한 꿈이 덮쳐오는 바람에 잠조차 제대로 못 잤다. 방 안은 냉방 하나 안 되어 더워서 죽을 것 같다. 열사병 기미인가. 그럴 이유가 없을 텐데, 라고 생각하고 자기 옷차림을 보니 가죽 자켓을 입은 채 잠이 들었다. 탈진 하지 않은 게 용한 수준이었다.
급한 대로 물이라도 마시기 위해 주전자를 들었지만 가벼운 걸 보니 빈 주전자가 분명했다.
“…지쳤어.”
웬일로 우는 소리를 다 하네 너. 형이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지쳐버렸다. 나는 욱신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느린 걸음 거리로 룸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익숙하지 않은 영어가 오가는 홀에서 앉아 손가락으로 샌드위치를 아무거나 주문하고 창가 테이블에 엎어진다. 날씨는 맑고,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인 걸 봐선 제법 잔 게 분명하지만 누가 내 목을 조르기라도 했는지 당장이라도 졸도 할 듯이 피곤했다.
최악이다.
질식 할 것만 같다.
이마를 짚은 채 그렇게 한참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일단 뭐든지 입에 우겨넣고 더 잠을 청해보는 수밖에 없나보다.
“…괜찮아요?”
들어본 목소리다. 설마 또 말을 걸까 싶었는데, 정말 이상한 여자네. 아침에 봤던 그녀, 시월류가 또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다만 아까와는 달리 조금 조심스런 기색이다. 눈이 마주쳤지만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앉아도 되나요?”
“…….”
그리곤 대답도 듣지 않고 멋대로 앉는다. 그렇게 옆 자리에 앉은 지 몇 분이 지났지만, 말을 걸지도 않는다.
나는 겨우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손을 떼고 그녀가 앉은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월류가 말했다.
“앉아봤는데 화 내지 않으니 있어볼게요.”
“……그러던가.”
화 낼 기운도 없다. 딱히 화 낼 이유도 없고. 샌드위치가 내 앞에 놓일 때 까지 그녀는 말이 없었다. 만약 또 아침때처럼 질리도록 말을 걸어온다면 이번엔 정말 여자고 뭐고 앞 뒤 안 가리게 막나갔을지도 모르는데. 입으로 먹을 게 들어가니 조금씩 정신이 들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단박에 기분이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아들 같다는 말은 조금 그랬죠. 하뉴는 청년이랬는데. 미안해요.”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일단은 당신이 너무 시끄러웠으니까- 라고 말하면. 너무 직설적인가. 뭐라고 말을 하든 온전하게 받아들여지기는 글러먹은 거 같아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또 한참 있었다.
“…미안하게 됐어. 화냈던 건. 고맙다는 말도 안했었지만…원래 난 그런 말 잘 안한다고.”
“괜찮아요.”
그러고 보니 내게 사과 하러 말을 건 거구나, 그렇게 깨닫자 부아가 치밀어 올랐던 게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오히려 깔끔하게 내 사과를 받아들인 후 괜찮다고 넘기는 그녀 쪽이 어른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아주 잠깐 내가 머쓱해 하는 걸 알았는지 그녀가 소리 없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많이 피곤 해 보이는데.”
“…어. 피곤하고 별로 안 괜찮아.”
“잠도 안 오나 봐요.”
나는 끄덕였다.
“아까 하뉴가 재밌다는 말을 했던 거 말인데.”
“?”
갑자기 다른 화제인가 싶어 그녀를 응시했다.
“나는 그렇게 많이 물어봤잖아요. 이것저것.”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하뉴는 내게 하나도 물어보질 않았죠. 그게 참 특이하다 싶었어요. 보통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만 하고 싶어 하니까.”
“……그랬던가.”
자기 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 이상한 눈으로 보려나. 워낙 피곤했기도 하고, 기분 나쁜 기억을 관뚜껑에 못 박을 때 까지 가져가는 사람도 아니다보니 이렇게 된 것 같은데. 자기 이야기를 잘 안하네요, 라는 말을 부정하긴 힘들다.
“당신한테 궁금한 게 없단 게 아냐. 내가 잘 말할 자신이 없어. 해봤자 재미없고.”
“흐음.”
“들어봤자 재미도 없어. 특별 할 것 없는 그런 사람이라.”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발견 될 만큼 각별한 반짝임을 지닌 사람이라면 좋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어렵지만 그 정도는 나도 알아.
그러자 오히려 그녀가 고개를 쏙 내민다.
“그렇게 말하면 들려달라고 하고 싶어지잖아요.”
“……말하면 당신은 분명히 비웃을걸.”
“비웃지 않는다고 약속 한다면?”
그런 걸 어떻게 믿어, 그렇게 받아 치려고 했지만 의외로 그녀의 얼굴은 진지해서 내 쪽이 조용히 빈 샌드위치 접시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렇다면 말 할 수도 있는 거고.”
“비웃지 않고 들을게요.”
신기한 기분이다. 처음 온 땅에서, 처음 보는 여자가 나와 말이 통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 이야기를 해보라고 등을 떠 밀어주다니. 게다가 나는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조금 의기소침해져서, 무슨 말을 하라는 거냐며 화내는 것도 아니고 머뭇거리고만 있다.
막상 자리를 깔아주니 말하기 힘든 게 자기 이야기란 건가.
“이름은 하뉴 타카히사. 나이는 스물 셋. 형이 하나 있어. 백수고. 여자친구 없음. 취미 없음. 특기도 없음.”
어쩐지 아르바이트 이력서마냥 신상명세부터 읊었나 싶어 황급히 덧붙인다.
“콜라보다는 사이다를 더 좋아하고.”
“아하.”
그녀는 일부러 커다란 제스쳐를 취하며 끄덕였다.
일부러 그럴 필욘 없는데. 조금 머쓱해져버렸다.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학교 졸업하고 삼년동안 아무것도 하질 않았어. 정말로 백수. 농구선수는 무슨. 택도 없지.”
문득 아침에 그녀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191. 농구 선수들은 2m가 넘어야 쓸 만하지 않나. 어쨌거나 직접 말하고 나니 어쩐지 더 한심하고 초라해지는 약력이네 싶다.
“싸움질 하는 건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피하지도 않아. 몸 움직이는 게 좋은데 뭔가에 미친 듯이 매달려서 노력하는 사람도 아니고…미국에 온 것도 어쩌다보니.”
“?”
그녀는 마시는 음료를 손에 쥔 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다만 말하지 않아도 ‘어쩌다보니.’ 라는 말이 제법 의아했는지 궁금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야 했다.
“쫓겨 난거야. 저번 달 쯤에 진지하게…형이 나더러 사무실을 열어준다고 했어. 사업을 하든 뭐든 좋으니 젊을 때 한번 해보라며 등을 떠밀어줬는데….내가 그냥,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다면서…그런 식으로 피하고. 그 후론 형한테 미운털 박혀서 냉전 상태로 한 달쯤 됐어.”
“그래서 쫓겨났다고 한 거네요.”
“귀국표는 줬는데…몰라.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아마 쭉 형이랑은 그대로겠지.”
곧바로 입을 다시 다물어버렸다. 나는 이렇게 재미없고 별 볼일 없는 놈입니다, 라고 이렇게까지 구구절절 말하는 건 어쩐지 볼썽사나워.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갑자기 생기는 건 아니니까.”
“아마 형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그래서 학교 졸업하고 3년이나 봐줬다고 생각해.”
“학교생활은 어땠어요?”
“…….”
잠깐 입이 다물어졌다. 그랬다가.
“재밌었어. 나쁘진 않았어.”
역시 이것만은 확실하게 대답해야겠다 싶어서 그렇게 대답했다. 특별 할 것 없었다고 하기엔 역시 신경 쓰이는 얼굴과 있었던 일이 한둘이 아니라서 그렇게는 말 못하겠고. 다만 어떤 식으로 재미있었냐고 물어본다면 오히려 설명하기 난감해져.
“당신은 분명 설명해도 이해 못할걸.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세계를 구했어요, 라던가. 세상을 다시 창조했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뭐라고 할 거야?”
“지도 제작부였어요?”
“말을 말자. 푸하하.”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웃은 거 같아. 바야흐로 라이더부가 지도 제작부로 강제전환 된 기념비적인 첫날이다.
그러게. 엄청나게 재미없어 보이는 동아리지만 그런 동아리였다면 치고 박고 싸우거나 힘든 일은 없었으려나. 학교에서 일어났던 실험이나, 몇 몇 애들에게 있었던 빈말로도 유쾌하지 않았던 일은 다시 생각해도 이가 갈리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일이 지금처럼 다시 돌이켜봤을 때 무사히 잘 풀려서 웃으며 생각 할 수 있게 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대답이 가관이다 싶어 턱을 괸 채 웃자, 그녀는 내 쪽을 빤히 바라보다가 싱긋 웃더니 말했다. 역시 웃는 얼굴이 좀 더 낫네요.
그 말을 듣자마자 이번엔 신기할 정도로 내 표정이 다시 싹 굳어버렸다.
어쨌든.
“곤란한 녀석들을 도와주자면서 부장이 세운 건데 실상은 이것저것 놀아 재낀 동아리 활동이었지. 복싱부도 했지만 3학년 즈음에는 흥미가 떨어져서 관두다 시피 했고. 근면성실하게 한 게 없으니 졸업하고 나선 그걸로 끝. 남는 게 없었어. …그렇게 3년이야.”
먹던 주먹밥 때문에 목이라도 메인 것 마냥 할 말이 없어졌다. 눈 앞의 류가 내 말을 듣고 약속대로 비웃지 않은 게 말없는 위로라면 위로였다.
“그래서…그러니까 말야.”
주절거리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그랬다가 이제야 솔직하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한심한 놈이지. 집에서 재워주고 입혀주고 먹여줬는데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
“비교가 되잖아. 안 그래? 아무래도…그렇지. 다들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한 줄 정도는 적을 줄 알잖아. 난 그런 게 없어. 누군가가 날 필요해줬으면 했고…보다시피 덩치도 이렇고 인상도 이래서 누구랑 쉽게 친해지지도 못해. 그래서 내가 뭔갈 해주기보단, 남이 날 필요로 해줬으면 했는데 동아리 활동을 하는 동안엔 그런 게 어느 정돈 충족됐거든. 그런 점에선 학교생활은 즐거웠지만 그것도 이젠 졸업 해버렸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이어가는 일이 꽤나 힘든 일이다.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라이더부에게 고마웠다는 말을 했던 애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똑똑히 기억한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 했던 것들이 이제 와서 제법 괜찮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건, 그런 거겠지. 제법 괜찮았던 게 아니라 굉장히 좋았다는 거야.
으레 좋았던 순간들이란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니까 더욱 각별하게 남는 거고, 손 쓸 수도 없을 만큼 빠르게 시간은 흘러버린다.
“난… 다들 제 갈 길을 가는데, 나도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아는데.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그 자리에 남겨지는 기분이 끔찍해. 쪽팔리고. 죽을 만큼 노력하고 절망 할 만큼 강한 소망이 있다면 차라라 낫나 싶어서 땅만 보게 되니까. 할 줄 아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단 걸 아니까 자기가 더 한심하지. 그런데서 오는 기분이 제법 비참해. 당신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어?”
의외로 말을 하고 나니 간단한 이야기가 된다.
졸업을 하고 동아리의 다른 녀석들과 만나지 못했어도 나는 그 녀석들이 잘 해나갈 거란 걸 알고 있다. 그런데 막상 내 자신에 대해서는 어떤 보증수표도 끊을 수가 없다.
앞으로 더 잘 할 거야, 더 잘 되겠지.
자기 자신을 향한 그런 확신조차 가지지 못하고, 심지어 그런 걸 이해 받지 못할 거란 걸 알아.
“답답하겠네요 하뉴는. 당신의 초조함을 해결 해 줄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래. 초조한 게 맞다.
꿈이 없는 사람의 공허함은 위로를 받을 수 있을 만큼 절박한 게 아니잖아.
대답을 삼키고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가 손에 든 음료는 얼음이 다 녹아서 묽어져 있었다. 녹을 동안 한 모금도 마시질 않났나보다.
정말로 한 번도 웃지 않았다. 내가 말로 표현 해 본적 없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사람을 지구 반대편에서 만날 거라곤 생각 해 본적 없었는데.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그녀가 쓰게 웃는다.
“미안해요. 난 잘 이해할 수 없어요.”
“어.”
“그렇지만 그게 당신에게 괴로운 일이란 건 잘 알겠어요. 하뉴는 나와는 다른 사람니까, 다른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하죠. 왜 비웃음 받을 이야기라고 생각하는진 모르겠지만….”
“…….”
“나는 당신의 비참함도 초조함도 이상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뉴를 완벽하게 이해 할 순 없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한 걸로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아지면 좋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 시월류는 그 자리에서 내 말을 끝까지 듣겠다는 듯 시선을 피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어째서인지 카에데의 말이 생각났다. 너를 완벽히 이해 해 줄 타인은 없어. 그걸 알아야 해 타카히사.
그때 말 하진 못했지만 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을 바라는 건 잘못 된 게 아니잖아. 그게 너라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
결국 한마디도 전해지 못하고 나 또한 없을 거라고 자신을 속였지만, 이런 식으로나마 위안 받는 순간이 생겼다는 게 조금은 민망하면서도 기뻤다.
펍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늘어난다. 홀이 조금 더 시끄러워지는 동안에도 그녀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 밖으로 낸 비참함이 누군가에게 비웃음을 사지 않았다는 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한결 편해진 가슴으로 잠을 청하고 내일 다시 일어났을 땐, 말하지 말 걸 그랬다며 후회하게 될까.
하지만 지금은 후회하고 싶지 않아.
적어도 자기혐오와 초조함에 가득 차서 무작정 먼 곳으로 떠나기 위해 핸들을 쥐었던 때나 비웃음으로 가득 찬 꿈에서 깼을 때 보다는 훨씬 더 나아진 기분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내게 주어진 아주 작은 위안을 용인하고 싶었다.
04.
사람의 기억이란 이상한 구조로 되어 있는 모양이다. 좋은 말을 해 준 것 보다는 불편한 말들이 송곳처럼 가슴을 뚫고 그 흔적을 지우질 못한다.
지금도 종종 생각이 난다.
‘너는 내 소중한 것을 아무런 감흥 없이 무참하게 짓밟았으니까.’
그 이유로 나를 지독하게 미워했던 사람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반대로 누구든 좋은 점을 발견하며 칭찬했던 사람이었다.
미움 받은 기억은 강렬하다. 강하게 남는 만큼 자신의 단점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단점이란 것은 돌아본다고 해도 좀처럼 자각하기 힘들고, 뭣보다 쉬이 고쳐지지 않기 때문에 단점이다.
결국 내가 그 사람에게 할 수 있었던 건 작은 약속 뿐 이었다. 나에게도 그렇게 다정하게 대해주길 바랬던 사람에게 네 앞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겠다는 말을 건넸다. 그게 우리가 나눴던 제대로 된 대화의 마지막.
나를 지독하게 미워했던 그 사람, 시구레 치히로는 나보다 일찍 학교를 졸업했다. 뒤이어 학교에 남은 나는 무료한 삼학년을 보냈다.
대학교 수험이나 취업 같은 건 마냥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고, 모자란 출석 일수를 계산해서 유급을 피하는 게 급선무였다. 동아리 활동을 하며 나머지 일 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은 아무런 초조함도 없었지만 막연한 불안감은 있었다. 일 년 동안 그 불안함을 무시한 결과는 세 배로 돌아와 이제 삼 년이 되었다.
이제는 서로가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는 관계가 되어있지만 여전히 신경 쓰일 때가 생긴다. 내 어디가 그렇게 싫었는지, 미움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건지. 혹시 그 사람의 눈에 보였던 단점이란 걸 변화 시킬 수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었을지.
나를 좋은 사람이라 말했던 사람들이 분명 존재했지만, 그런 말을 당연하게 여겨 본 적은 없다. 이상한 기억의 구조다. 나를 불편하게 했던 사람의 가시투성이 말이 더 기억에 남다니.
하루라도 더 먼저 산 사람들의 말은 대체로 틀린 게 없다는 걸 슬슬 깨닫게 된 시점에서, 요즘은 특히나 학교를 다닐 시절이 그립다.
다시 잠들자 누군가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꿈을 꾼 건 그런 영향인가보다. 누구와 이야기 했는지는 고 사이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어제 저녁 저녁에 최악의 컨디션으로 눈을 떴을 때와는 다르게 아침에 일어난 덕에 정신이 말끔했다.
간단한 세안을 하며 면도를 마쳤다. 머리카락을 다시 다듬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후 물 한잔을 마시고 나니 이제야 제대로 사람구실 하는 기분이 드는데.
복잡하고 미묘한 기분으로 홀에 내려와 방값을 계산했다. 계산이라기 보단 지갑에 있는 지폐를 눈치껏 올려놓는 행동이었지만, 어쨌거나 잔돈이 손에 들렸을 때는 여러 가지 의미로 안심했다. 적어도 숫자 백과 천이 영어로 뭔지는 알아 둘걸 그랬지. 후회는 늦다.
미합중국의 통화가 달러라는 것 정도만 머릿속에 넣어 두었다보니 이젠 빈 깡통 소리가 요란한 뇌다.
초조해 하건 우울 해 하건 비참해지건 어김없이 아침은 찾아오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계속 미움을 받아야 한다. 타인에게서든 자신에게서든 받은 미움을 감내하고, 그렇게 오늘도 살아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야. 이 지구별에서 숨 쉬며 앞으로도 살아나가야 한다. 끝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쓴웃음을 삼키며 방 한 켠의 거울을 바라본다. 그 속에는 여전히 키 크고 인상 험악하며 요령이라곤 조금도 없는 고집불통의 답답한 놈이 앉아있다.
문득 학창시절 신세졌던 선배가 생각났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누구에게나 다정해서 나 같은 사람에게도 평범하게 말을 건네주는 걸 좋아했다.
한 명에게는 지독하게 미움받아버렸지만, 어쨌거나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미움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사디스트는 아니거든.
신기하게도 독기가 빠진 상태로 대화할 수 있던 사람이었다. 동아리 부원 대부분이 너무 다정해서 탈인 녀석들이지만, 아마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선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절실하게 원하는 것도, 포기할 만큼 아쉬운 것도 없다고 해도 그대로 살아가도 괜찮다고 생각해.」
자판기의 불빛 하나에 의지 한 채, 그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던 새벽녘을 그 선배는 기억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위안은 되었다고, 고마웠다고, 그렇게 제대로 전하긴 했는지 모르겠다. 가장 중요한 걸 기억 못한다니까.
“당신 말 대로 되었습니다. 야츠야나기 선배.”
자퇴를 고민했던 멍청한 후배에게 제대로 학교는 졸업하는 게 좋을 거라며 충고 해 주지 않았더라면 지금 쯤 뭘 하고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동안 가슴을 가득 메울 무언가를 찾지 못해 방황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무사히 졸업했던 건 대체로 옳은 소리를 했던 선배의 말과, 형의 믿음을 배신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남겨질 후배들도 두 번 다시 못 볼 수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래, 까짓 것 일 년 정도는 더 학교에서 지내보자고 생각 했던 거고. 그렇게 날 친구라고 불러주는 녀석들과 졸업을 했다.
“앞으로 살아 갈 여생이 지금까지 지낸 날 들의 몇 배가 될 거란 것도 알겠는데…나는 욕심이 많아서 확신이 필요한 모양이죠.”
다행히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았다. 입 안이 쓰게만 느껴지던 것도 착각이었나 싶다. 그 정도로 나아지긴 했다.
새까만 밤에서 어슴푸레한 새벽으로. 그리고, 아침으로.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확신이 있다면 조금 늦은 아침이 찾아와도 분명 지금보다 편하게 웃을 수 있을 거란 말이야. 이런 생각은 욕심 일까?
“좋은 아침이죠 하뉴?”
…….
“………….”
“와, 나 처음으로 당신 표정 읽은 것 같아요. 진짜 놀랐나 봐요?”
“있잖아 당신, 당신 말이야. 시월류 씨.”
“네 왜요?”
“당신 진짜 이상한 사람이라고.”
그녀는 내 황당함을 숨기지 않는 어조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로지 신나게 웃으며 들고 있던 한 손에 사이다를 내려놓았다. 자 여기 있어요 콜라보단 사이다가 좋다는 하뉴.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이 음료수를 건네며 자연스럽게 내가 앉은 창가 테이블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확인 하나만 하면, 그건 칭찬이랑 욕 중 어떤 의미에요?”
“…후자는 아냐.”
“그럼 당신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남는 게 나쁜 일이기만 한 건 아니네요.”
이상한 화법이잖다 정말. 고개를 쑥 내밀며 당돌하게 말을 거는 건 물론이고 이런 시시콜콜한 것 까지 챙기다니. 오지랖이 넓은 수준이 보통은 아니다 싶어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 까지 신세 지는 건 아니다 싶어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자 그녀는 ‘괜찮은데….’ 라고 말하면서도 으쓱이며 받아들였다.
“또 혼자 홀에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잖아요.”
“또 라니 내가 언제?!”
“아닌가? 그럼 대충 홀에서 또 혼자 무게 잡고 있다고 할게요.”
“…….”
부정은 하지 못하겠지만 순간이나마 시비가 걸린 건가 고민하고 말았다. 그녀는 혀를 쏙 내밀었다.
“하뉴는 무시하려고 해도 얼마나 눈에 띄는 사람인 줄 알아요? 어떡하겠어요 말이 통하니 거는 건데. 싫으면 떠나라구요. 간밤엔 소나기가 내린 덕에 한층 건조해질 하루! 태양이 자글자글 소리 내며 고기라도 익힐 기세로 작렬하는 아스팔트 위의 질주! 쪄죽긴 좋겠네요. 열사병으로 뉴스에 나오면 쾌유를 기도 해 줄게요.”
“당신 뭐 엄청난 언어박사라도 되는 거야? 일본인 아니지 않아? 왜 이렇게 유창해?”
“언어로 먹고 사는 사람이에요. 원래 말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좋아해서요. 번역하고 통역하고 애보고 손님 보고. 그게 직업이에요.”
“그래. 일단 엄청나게 수다쟁이인건 알겠다.”
한 마디를 물어보면 열 마디가 돌아온다. 따박따박 따져대는 건 아니지만 조용히 물러서지 않는 사람이다. 드물게 상대하던 내 쪽이 기가 질려버렸다.
싫다는 건 아니지만…뭐랄까. 진짜 나랑은 다른 종류의 사람이다. 페이스에 휘말렸다는 걸 깨닫자마자 이것저것 무거운 생각들을 머리통에 담고 굴리고 있던 게 멈출 정도였다.
사람 속도 모르고 그녀는 빙긋 웃었다.
“간밤엔 잘 잤나보네요. 시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데 사람다워졌어요.”
“…덕분에. 당신은 거의 홀에서 살다시피 하나봐?”
“그럴 리가요. 방안에 있기 싫어서 일부러 나와 있는 거 에요.”
“여기 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여행 중이야?”
“우와.”
그녀는 레몬에이드를 마시던 걸 멈추고 나를 크게 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뭐가 그렇게 놀라운 건데?
“그거 알아요? 만난 지 스물 네 시간 정도 된 건데 하뉴가 내게 제대로 된 질문을 한건 처음이에요.”
“………….”
원래 남에 대한 관심이 희박해, 라고 둘러대면 납득하려나. 마땅히 반박 할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도 그럴게 정말 자기 일 만으로 머리가 가득 찬 이십 사 시간이었으니까.
다행히 그녀는 더 이상 이야기를 질질 끌지 않았다.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루 정도 몸이 안 좋아서 일정에서 빠졌거든요. 아들이랑 아버지 둘이서 하는 여행도 나쁘진 않을 거구. 부자관계란 건 되게 중요하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기다린 건데 허리케인에 휘말렸다지 뭐에요. 말이 되나 그게.”
그녀는 푸하하 웃으며 넉살 좋게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오히려 내 쪽이 시퍼렇게 질리고 말았다. 가족이 허리케인에 휘말렸다는데 웃음이 나와?
그리고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가 덧붙였다.
“말 해두는데 그 둘이 재난에 휩쓸렸다는 게 아니에요. 허리케인의 영향으로 근처에 통행금지에 피난민이 모이는 바람에 일정에 차질이 생긴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내 말 좀 듣지 가지 말라는 곳으로 가겠다고 고집 부려선. 아들이랑 둘이서 고생이나 해보라지.”
뭔 일이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툴툴거리는 어조나 쌜쭉한 표정을 보아하니 걱정을 하나도 안 하고 있는 건 알 것 같다.
…인데 잠깐만.
“당신 유부녀였어?!”
“아하하하, 이제와서?”
“이제와서? 가 아니지!”
“어제 말도 했잖아요, 아들 같아서라고.”
“그게 말이 되냐?!”
물론 따지고 보면 그랬지. 아들 같아서라는 말도 했어. 했긴 했는데 이 속은 기분은 대체 뭘까. 잘 살펴보니 그래, 아들 하나쯤은 있어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왜 사람 말을 제대로 안 듣더니 소리를 지르시나 몰라.”
“당신 이 상황 엄청나게 즐기고 있지.”
“들켰네.”
다시 이마에 힘줄 돋아날 뻔 했네. 울컥하는 마음을 숨기진 않았지만 한 대 쥐어다 박을 수도 없어서 노려보았다. 아니 대체, 무슨 애 엄마가 빨간 머리냐고. 이런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는 애 엄마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냐고.
남의 속도 모르고 류는 히히 계속 말했다.
“어쨌든 엄청 멋진 남편이랑 사랑스런 아들이 있답니다. 지금은 가족여행중이지요.”
“…어디서 왔는데?”
“프란하이츠요.”
“모르는 곳이네. …나이는 몇 살이야?”
“음, 여자의 나이는 쉽게 가르쳐주면 안 되는데. 웬일로 제대로 된 질문을 하니까 알려주자면, 하뉴보다 일곱 살 연상이에요.”
“원래 그렇게 오지랖이 넓어?”
연이은 질문에도 그녀는 시원시원하게 웃어넘길 뿐이다.
“엄청 자주 들어요. 친구한테도 듣고 남편한테도 듣고.”
그런데 신기하죠, 혼이 난적은 있지만 그래도 안 좋은 일이 생긴 적은 없거든요.
부릴 만 한 오지랖이었다는 말과 함께 시월류는 레몬에이드를 흔들었다. 나로선 전혀 이해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아무리 친해져도 결국 사람과 사람의 사이는 거리감이 존재 하니까 괜한 오지랖은 서로를 피곤하게 할 뿐이라 생각하는데. 확실한건 나와는 정 반대의 사고회로 소유자였다.
혼자 가만히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는 잠깐만 기다려보라는 말을 한 후 갑자기 자리에서 뜬 후 다시 돌아왔다.
“오지랖 넓다는 평가를 들은 김에 한 번 더 발휘 해 볼까요.”
“?”
“자요.”
그리고 내 앞에 살면서 그다지 인연 없던 게 놓였다.
그건 바로 펜과 편지지였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우체통이 있는데요. 십년 후의 자신에게 쓴 편지를 십년 후에 배달해주는 우체통이에요.”
“시간이 지나서 편지를 보내 주는 거면…자주 있는 거네. 그런 건 일본에도 있다고.”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잘은 모르지만 티비에 몇 번 소개 되고 그랬을 거다. 지방도시 살리기 운동 비슷한 캠페인이다. 십년 후의 자신이니 일 년 후의 자신이니 미래에 태어날 아들에게 편지를 배달 해 주는 특이한 우체통은 으레 한 번 씩은 소개되곤 했다.
“그렇지만 막상 한 번도 써본 적은 없죠?”
“…….”
부정하기도 뭣하다. 너무 당연하니까. 십년 후의 나 자신에게 쓰는 편지 같은 건 한 번도 상상 해 본적 없었더란다.
대답조차 하지 않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자 시월류는 오히려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대단한 묘안이라도 떠올린 것 마냥 말했다.
“어때요. 한 번 써 봐요.”
“왜 이런 걸….”
“일단 펜이라도 쥐어 보라구요.”
막무가내도 이런 막무가내가 없지. 나는 독촉에 못 이겨 펜을 들었지만,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내려놓아야 했다.
“몰라. 없어. 10년 후의 나한테 쓸 내용 같은 거 없어.”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피하려 할 때였다.
“그럼 발상을 반대로 바꿔볼까요. 10년 후 말고, 10년 전의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라면 적어 볼게 하나 둘 쯤 있지 않아요?”
“그건….”
10년 전이면 아마도 열 세 살이다. 부모님의 이혼에도 익숙해 진 채 잔뜩 삐뚤어진 중학생이 될 나이의 나를 떠올렸다.
어차피 과거의 내겐 편지 따위 못 보낼 테지만.
“당연히 10년 전이라면 있지. 일단 공부부터 하라고 할 거야.”
“아하하!”
“적어도 영어는 하라고 할 거야.”
만 하루 전에 겪었던 ‘Pardon’ 의 충격이 제법 컸다곤 입이 찢어져도 말 못하리라.
“어머. 그럼 나랑은 못 만났을 텐데.”
“…그건 그렇네. 근데 어차피 편지로 써봤자 10년 전의 내가 말을 잘 들어먹었을 리 없잖아. 분명 보자마자 무시했을 걸.”
“그래요 그런 거에요. 포인트는 그거 라구요. 하뉴.”
“뭐가?”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네. 내가 부루퉁한 얼굴로 반문하자 그녀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치며 말 했다.
“이런 편지는 10년 전의 당신에게 쓰던 10년 후의 당신에게 쓰던, 그저 지금의 욕심을 담는 것에 불과 해요. 10년 전이나 후나 정말 이 편지에 써진 말을 당신이 곧이곧대로 들을 리가 없잖아요. 애초에 전해질지도 모르는 편지인데.”
“…….”
“결국 이런 건 현재를 살아가는 당신의 소망을 담아서 쓴다는 게 중요한 거 에요. 이렇게 되면 좋겠다 저렇게 되면 좋겠다. 그런 거. 직접 쓰면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게 중요한 거라구요.”
나는 그녀의 손가락이 가볍게 건드린 편지지를 바라보았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진 사막마냥 채우는 게 막막해 보였던 편지지였다.
“누구나 바라는 게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요? 초조함을 없앨 수 있을 만큼 강한 열망이 필요하다는 소망이라던가요. 당신의 초조함을 없앨 수 있는 사람도, 미래의 내가 어떻게 되었으면 하고 설정할 수 있는 사람도 하뉴 뿐이에요. 그렇게 바라는 것조차 없는 거라면, 바라는 것도 없을 만큼 즐겁고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걸 의미하겠지만…정말 그래요? 하뉴는 단 한번이라도 즐겁고 행복 한 적이 없었나요?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망 해 본 적 없어요?”
“그렇게 말한 적 없다고.”
그녀의 목소리가 진지한 것과 대비 될 만큼 작은 목소리로 내가 항변했다.
그런 게 아냐. 그저 십년 후의 나한테 살갑게 이러냐 저러냐 말 붙이는 편지는 쓸 엄두가 안 나는 것뿐이다.
내가 즐겁고 행복했던 날들이란 지금처럼 혼자는 아니었고, 아마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인간이었다.
카에데와 함께 지냈던 날이라던가, 동아리 활동으로 떠들썩한 여행을 다녀온다던가. 사람과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 건 좋았었다.
세상이 마냥 막막하지만은 않구나, 숨구멍 정도는 있구나.
다만 그렇게 즐거움을 느끼던 날들은 ‘좋다’ 라는 감정 이상으로 발전할 순 없었다. 그렇게 내가 원했던 시간들은 깜짝 할 사이에 모래알처럼 손을 빠져나가서 힘껏 움켜쥐어봤자 소용없었지만 가능한 계속 손에 쥐고 싶었다.
“뭐 어때요. 결국 당신에게 전해져서 하뉴 혼자 볼 편지인데. 조금 적어볼만한 게 있을 것 같나요?”
“글쎄…….”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원래부터 말솜씨가 좋진 않으니까 잘 표현 할 자신은 없었다. 그래도 아까 전 만큼 하얀 편지지가 막막해보이진 않았다는 게 다행이었다.
펜을 들고 편지지의 귀퉁이를 긁어대다가, 첫 줄 아닌 정 중앙에 천천히 펜 끝을 옮겼다.
만약 10년 후의 내가 이 편지를 본다면 적어도 그때까지는….
〈누군가에게 도움 될 만한 인간일 것〉
〈비참하지 않을 것〉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될 것〉
“…어쨌든 지금보다는 더 행복 하면 좋겠어.”
“멋진 내용이네요.”
어쩐지 머쓱한 기색을 숨기질 못하고 내가 중얼거리자 그녀는 편지지 위를 훑어보곤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띄울 뿐 이었다.
05
몇 시간 후 드디어 시월류는 떠났다. 이른 점심을 먹은 후 돌아온 아들을 양 손으로 껴안은 채 한참 뽀뽀를 퍼붓더니 내게 인사 한 게 마지막이었다.
너무 멋진 유부녀한테 반할 뻔 한 거 아니죠? 그렇게 묻길래, 내 취향은 청순가련한 글래머라 당신 가슴으론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해줬다. 그랬더니 호호 웃으며 아들을 껴안은 채 남의 발등을 아프도록 꾸욱꾹 꽉꽉 밟고 가는 게 아닌가. 이 여자가 진짜.
애 엄마를 한 대 팰 수도 없고 빠득빠득 이를 갈며 노려보았지만 태연한 얼굴로 아들 손을 흔들며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마저 편지를 썼다. 제대로 된 편지랑은 거리가 멀었지만, 10년 후의 내가 왠놈의 편지인가 싶어 찢어버리지 않도록 쓰다 보니 어째 구구절절한 내용이 되어버렸다. 이건 어디까지나 여행 중 만난 이상한 여자 때문에 쓰는 편지이며, 십년 전에는 개판으로 살고 있으니 10년 후는 그만큼 멀쩡하게 살라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싸움질은 해도 형한테 책잡힐 만큼은 하지 말고. 위에 썼던 세 가지 정도는 지킬 줄 아는 인간이 되라고. 되는대로 쓰다보니 어느새 편지지를 다 채우고 제대로 된 마무리는 하지 못한 이상한 편지가 되어버렸다.
다시 읽어보긴 했지만, 어쨌든 편지다운 편지는 아니네.
부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것도 잠시, 자기의 마지막 오지랖이라며 그녀가 남겨주고 간 우체통의 주소와 지도를 훑어보며 나 또한 펍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점심을 해치우고 두시가 조금 넘은 시간. 여전히 덥지만 그래도 밝을 때 움직여야 다른 곳 숙소를 잡겠다 싶어 다시 바이크에 올라탔다. 그녀가 알려준 우체통은 마을 근처에 세워져 있었는데, 보통 우체통과는 별로 다를 게 없는 파란색이었다.
편지지 봉투에는 영어와 일본어가 섞인 주소를 적었다. 제대로 배달 안 될지도 모르니 그냥 시원스럽게 우체통에 넣어버리면 될 텐데. 이런 순간까지 고민하고 있는 내 자신이 약간 답답했지만 이건 그냥 성격이니 어쩔 수 없나 보다.
수상한 폭탄물을 손에 든 사람마냥 한참 고민하다, 편지지를 집어넣은 나는 괜히 우체통을 한번 쓸어보았다.
어쩐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어깨에 잔뜩 들어간 고집을 빼야 할 때가 되었나보다. 나는 한숨을 푹 쉰 후 피어스를 빼서 함께 우체통 안에 집어넣었다. 그래 바야흐로 불법 쓰레기 투기다.
간절히 원하지만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소망이나 바람이나. 내게 절실한 무언가가 운명처럼 찾아와주기를. 하지만 그런 건 벼락 맞은 나무마냥 갑작스럽게 찾아오지 않았다.
카에데가 내게 했던 약속이 자신만을 위한 거짓말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믿어 보고 싶었어. 그런 게 정말 운명적으로 찾아와주기를.
하지만 기다릴 만큼 기다렸던 시간이었다. 이제 이걸로 끝 인거야. 더는 아쉬워도, 찾아 오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게 아니라 찾아 나서야만 했다.
시원섭섭하게 피어스가 떨어져나간 귓가는 생각보다 가벼워서 당분간은 익숙해 질 것 같지가 않다.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미래를 바라지만, 원하는 대로 이뤄지진 않았다. 막상 모든 일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나를 상상해보니 좀 재수가 없었다
씁쓸하게 웃어버리곤 헬멧을 썼다. 어쨌든 이제 당장의 목표는 홧김에 뛰쳐 나왔으니 나머지 2주간의 미국 여행에서 무사히 생존하는 일이다. 미국 오던 날 형의 지갑에서 카드 하나를 훔쳐 와서 몇 번 긁기도 했는데, 정지가 안 되었다는 건 알면서도 묵인 해 주고 있단 의미일 테니 굶어 죽진 않을 거다.
뒷좌석에는 보스턴백을 싣는다. 목적지는 일단 잘 모르겠지만 그 유명한 라스베가스인가 하는 곳으로. 지도 한 장에 의지해서 찾아 떠나는 현대판 콜롬버스다.
청바지 차림만 아니면 출입이 가능하다는 카지노에서 잭팟을 터트릴 궁리나 하는 막나가는 본질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어쩐지 이대로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나 자신을 향한 체념인가.
클러치를 밟으며 고민해봤지만 그건 아닌 것 같고.
전해질지 조차 불분명한 나를 위한 편지를 쓰던 와중 한가지의 진실을 깨달았다.
목표는 없지만 바라는 게 있는 삶이란, 어쩌면 남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거다. 행복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실망하면서도 다시 기대하는 나 자신에게 그렇게까지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건 내게 위안이 되기에 충분해서 조금은 어깨에 들어간 힘이 빠질 것 같거든.
특별 할 것 없는 인생이지만 패배자가 아닌 것에 안도 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그런 위안을 안주삼아 살다 보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지고 행복을 바랄 수 있겠다고 믿고 싶어졌다.
우선은 무료로 인터넷을 쓸 수 있는 곳을 찾는 게 급선무다.
겨우 코우토에게 답장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nd.
전화벨이 울리고. 나는 받기가 싫고. 그렇다. 엎어져 있으니 타박하는 소리가 날아왔다. 이보세요 사장, 전화 받아야죠.
“…알아.”
알고 있다고.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건 알아. 받으면 날 잡아 먹을 기세로 소리 지를 아줌마가 대기 타고 있을 테니까.
“그거 두 번째 전화에요. 안 받으면 찾아올걸요?”
“끔찍해….”
죽겠다는 소리를 내며 책상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내 꼴이 웃긴지 카즈는 웃는 것조차 숨기질 않는다. 예전이라면 울컥 했겠지만 이젠 저것도 익숙해졌다.
문제는 카즈가 아니라 전화벨이다.
제발 멈춰주길, 아니 멈추질 말아주길. 심각한 내적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동안에도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으로 전화가 울린다.
누구야 의뢰 전화 못 들으면 밥값도 못 번다는 슬로건으로 전화벨 소리 한번 크게 설정 한 인간은.
나잖아? 제기랄.
“어쨌든 전 마저 찾던 사람 찾고 퇴근 할 테니까. 하뉴는 그 건부터 알아서 해요. 폭행당해서 집나간 시며느리 찾는 시어머니라니. 그 유명한 고부갈등 현장에서 역사적 증인이 된 셈이잖습니까. 책임감을 가지고 마무리 해야죠.”
“………알았다고. 퇴근하기 전에 이거 세무사한테 갔다줘.”
나는 2분기 결산서를 카즈에게 던져주고 겨우 책상에 바로 앉았다. 전화기를 들기 전에 크게 숨 한번 쉬는 꼴이 그렇게 웃긴 건지, 어쨌거나 카즈는 서류를 들고 사무실을 나갔다.
사장보다 먼저 퇴근하는 직원이라니 팔자 좋군. 부럽다 제길.
내가 호구 사장인 걸까.
아님 동업을 제안했을 때 사장:직원:사무실 운영비를 5:4:1비율로 맞춘 게 문제였던 걸까. 으아아 몰라 망할. 퇴근하고 싶다.
현실 도피의 일환으로 잠시나마 사무실 운영에 관한 성찰에 빠지려 했으나 삼십초는 넘게 걸려오는 전화를 어떻게든 하는 게 더 급했다. 결국 나는 마음을 다잡고 수화기를 들었다.
“전화 받았습니다. 타카히사 흥신소 소장….”
아니나 다를까 전화를 받기가 무섭게 귀를 찢는 데시벨의 아줌마 고함이 몰아닥쳤다. 그 내용이란 정말 무서울 만큼 예상 하고 있던 것이다.
우리 아들이 때렸으면 얼마나 때렸냐느니, 정신 나간 며느리를 데려오느라 우리도 혼수고 예물이고 기둥뿌리 뽑을 만큼 들었는데 감히 어디서 고소하냐느니…. 대체 왜 이런 인간들은 남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제 억울함부터 호소 하냐고!!!
몇 년 간 밥 먹듯이 아내를 폭행한 니 아들부터 알아서 챙기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댁 며느리의 소재지 따윈 모르니 전화나 끊어라 라는 말의 반복이다.
하지만 열 받는 건 열 받는 거고, 여기서 당사자들 끼리 알아서 하라고 주소를 불어줄 순 없는 노릇이다.
의뢰자인 며느리에게 새 직장이며 안전할 집을 구해준 내 노력과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주소지를 비롯한 개인정보를 지워주고 다닌 카즈 녀석의 노력이 쌍으로 날아가거든.
그런데 미쳤다고 알려주겠냐. 지를 만큼 질러 봐라 내가 눈 하나 깜짝 하나 보라고.
“그런 사람 모른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소리 지르는 내용 다 녹음 하고 있으니 이 이상 협박성 문구를 하면 이쪽도 고소 할 줄 아십쇼. 어?!!”
팩스로 도착한 서류를 챙기다 결국 빽 소리를 질러버렸다. 참을 인을 새기고 새겼는데도 터져 나오는 성깔은 어쩔 수가 없는 거라 변명해본다. 험악한 성질 머리가 어딜 가겠냐 그래. 여하튼 이쪽도 마냥 꽃밭에서 일 하고 있는 건 아니라 고소장만 안 나오면 된다.
소리를 지른 내 목소리가 험악했던 건지, 아니면 더 이상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는지 그 후로도 장장 15분에 걸친 입씨름은 이어졌지만 무사히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물론 사무실로 집 나간 며느리를 내 놓으라고 아줌마가 들이닥치는 상황 또한 피했고.
기운이 쭉 빠지다 못해 당장 미생물 단위로 분해 된 기분이다.
더러운 세상 같으니.
어쨌거나 이 일은 곤란한 인간들이 찾아오는 일이긴 한데 결말이 마냥 깔끔한 것도 아니고 과정이 쉬운 일도 아니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몇 년 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내가 닥치는 대로 흥신소 일이라도 해서 사무실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포복절도 했던 형의 한마디가 아직도 생각난다.
‘이거 아직 세상 만만한줄 알고 있네? 그래 맘대로 해 봐라.’
그리곤 정말 내가 따까리 노릇부터 일을 배워가는 걸 보고 몇 년간 신나게 갈궜지만 어찌어찌 사무소를 세우고, 이젠 좀 사장 자리 앉아서 편하게 다리 좀 꼬나 싶었더니, 독립한지 얼마 안 되는 사무소란 월세 내기도 벅차고. 그래, 만만한 일이라곤 쥐뿔도 없다.
“여보세요. 형, 이따 사람 몇 명 보내줘.”
마음 같아선 직접 의뢰인을 확인 하러 가 봐야겠지만 사무소 번호 까지 들킨 마당에 내가 움직일 순 없겠다. 안 그래도 큰 키 때문에 미행이라곤 꿈도 못 꾸는데, 억울해서라도 머리까지 길러주마 하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내 머리카락은 이제 인생사는 동안 최고로 길어지고 말았다. 지저분해 보이니 묶으라는 조언을 눈 딱 감고 따라 봤더니 의외로 시원한 게 마음에 들기도 하다.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났던 호리에는 보자마자 신나게 웃어버렸지만 이제 와서 자를 것 같냐. 두고 보라고. 아주 발 끝 까지 길러버릴 테니까.
세금폭탄이 무서운 사무실에서 냉난방비라도 아껴 보겠답시고 산 선풍기는 풀가동. 창문은 활짝 열었지만 옆 건물이 어찌나 크신지 일조권 침해는 물론이고 바람까지 막고 있다. 그래도 정 들면 고향이라는 말이 있으니 좀만. 한 시간 만 눈 붙이고 나가야지. 어차피 오늘도 경찰서 순회하며 의뢰거리 찾아다니며 열대야를 견뎌야 한다. 새벽엔 쥰이치랑 술 약속도 했단 말이다.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딜 통해 들어 온 건지 모르겠는데, 요 근방의 길고양이가 점점 늘어만 가는 게 착각이 아니었나보다. 당돌하게 사무실 안까지 들어오다니. 삼색 털의 갈색눈을 한 고양이가 소파 아래에서 이쪽을 빤히 바라본다. 의자를 한껏 젖히고 쉬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나와 고양이의 눈이 마주쳤다.
쫓아낼까, 하다가 그것도 귀찮고. 어차피 여기나 밖이나 더운데 털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으니 이놈은 나보다 더 덥겠구나 싶어 결국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어주고 말았다. 그리곤 얼마나 지났을까. 기어코 무릎 위 까지 고양이가 올라왔다. 털 묻으니 쫓아내야 한다는 건 아닌데 의외로 귀여워서 놔두는 것도 괜찮을지도. 이 기회에 자칭 비쥬얼 담당이라는 카즈의 주장을 뭉개고 새로운 사무실의 마스코트로 추대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시시껄렁한 생각과 함께 웃고 있자 졸음이 몰려왔다.
벌써 학교를 졸업하고 여섯 번째 여름이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The Letter> FIN
슈크림님
M 님
★A★I★B★O★
토마 님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 -)(_ _)
후기
안녕하세요. 세이레인입니다. 책을 손에 쥐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일 년 조금 넘는 시간동안 저를 즐겁게 해주었던 ‘별의 소원을’ 커뮤니티 자캐 하뉴 타카히사의 책의 이야기를 이렇게 지면으로 풀게 된 게 어떤지 뿌듯하면서도 부끄러운 느낌입니다. 감격과 해방감에 벅찬 채 행사 열흘 전(=귀국 3일전) 마감을 치고 후기를 쓰네요.
오랜만의 커뮤니티 활동과 함께 하뉴는 제게 있어서 또 한명의 굉장히 특별한 자캐가 되었습니다. 저의 취향을 담아서 만든 캐릭터라는 점도 특별하지만, 여러 가지 생각들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 명의 자캐로서 캐릭터성을 가지게 된 만큼 정말 즐겁게 괴로워하며 글을 썼네요.
아마 커뮤니티 캐릭터인 하뉴 타카히사를 처음 보시는 분들께는 앞선 소개가 있었다고 해도 상당히 불친절한 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하뉴가 다른 커뮤 캐릭터들과 스토리라인에 따라 성장하는 커뮤니티 캐릭터로 시작한 어쩔 수 없는 한계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 책을 시작으로 커뮤니티의 캐릭터들과 관계를 이어나가던 ‘커뮤캐’ 하뉴가 비로소 제가 좋아하고 앞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가진 채 데리고 갈 자캐가 되는 시작점이기에, 이렇게 불친절하지만 자기만족에 가득 찬 책을 감히 세상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자캐 류 모양의 도움으로 저도 모르는 머나먼 땅에서 어깨의 짐을 내리는 하뉴를 생각하며 커뮤니티 이후의 미래를 상상했던 게 이번 책입니다. 이렇게 하뉴도 백수는 탈출했으며 첫 만남에 폭력사태를 일으켰던 카즈와는 동업자가 되었으니, 제 인생만큼이나 자캐 인생도 알 수 없는 노릇이네요.
알 수 없어서 재미있는 인생에서 저는 앞으로도 하뉴와 함께 즐거운 자캐 덕질을 해보려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항상 행복하세요.
- 2015.08.13.선풍기의 강풍 바람을 맞으며. 세이레인.
자캐 커뮤니티 「별의 소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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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tter @RSYE
2015년 08월 23일 디 페스타 출간
낙장 및 파본은 행사 당일에만 교환이 가능합니다.
책을 내기 까지 많은 분들의 축전과 응원, 도움이 있었습니다.
축전을 보내주신 토마님, M님, 슈크림님, 쿠도양 감사합니다!
특히나 바쁘신 와중에 표지와 삽화를 맡아주신
아르겐토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Track List
青空の日(BALLOOM), サリシノハラ(ちょまいよ), 自傷無色(KK), 너를 삭제(캐스커)
Her Morning Elegance(Oren Lavie), 指切り(らむだーじゃん), 두근두근(Louviet)
I Won't Let You Down(OK Go), 欲望に満ちた青年団(One Ok R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