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세레

82 내일도 당신은 저를 사랑할 건가요?

RSW 2018. 1. 11. 01:22


내일도 당신은 저를 사랑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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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이 세다는 말은 익숙했다. 특이하다는 말도 제법 들었고, 그 다음으론 자존심이 세고 콧대가 높다는 말도 들어 본 것 같다. 아, 물론 제일 많이 들은 말은 잘생겼단 말이지.

마음과 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관심도 흥미도 주목도 모두 내 것. 마땅히 받아야 했던걸 못 받은 시절만큼.  오욕의 시절 받아야 했던 몫까지.


아무도 기억해선 안될 그 시절, 자두나무 꽃을 보자 신경질을 내던 조부에게 뺨을 맞은 다음 찾은 장소는 으슥한 마당 구석이 아니었다. 소쿠리를 말리던 사랑방 옆 광에는 볕이 잘 들었다. 가장 밝은 낮, 둥둥 떠다니던 먼지까지 일일히 눈동자에 담아냈던 광 안에서 청연은 부풀어오르는 뺨을 감싼 채 가만 앉아 생각했다. 나는 찬란한 자. 여기서 이럴 순 없어. 뭔가가 잘못 된 거지.


그러니 언젠가는 반드시.

기어이.

기필코.

이곳을 벗어나서.


벗어나서, 무엇을 하려 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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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옛 일, 오래된 기억, 지겹지만 따라붙고 마는 지겨운 것들. 아름답고 수려한 외모만큼이나 부정할 수 없는 파편. 나는 과거에서 미래를 찾아야만 했다. 미래를 찾는 이유는 언제나 과거를 위해서였지. 마물에게 찢겨 죽은 허섭스레기 같은 것들. 그 것 들과 같은 피를 타고 태어나다니, 같은 피가 흐르다니,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건데!  분노는 용암처럼 천천히 흘렀고 모든 길을 삼켰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배꽃을 보며 안도했던 제 자신을 비웃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지. 누이의 발을 부러트려 식모처럼 부리는 버러지들. 제 살길 찾겠다고 줄행랑친 맹랑한 막내 계집. 하지만 가장 화가 나는건, 잘나신 나 또한 그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한낱 사람이란 사실이었고. 그래서 꿈을 꾸었지. 차라리 사람이 아니면 되는 것이다. 내가 겪은 일들을 비웃으면 되지 않겠나. 천륜의 고리를 부숴트리고 마물이 되어, 부정해주면 될 것이다. 찬란한 나에게 걸맞는, 하찮은 과거였노라. 그런데 있잖나, 나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무 것도 용서하질 않는 사람이야. 감히 내 뺨을 후려갈긴 건방진 노인에겐 오체분시를 했어도 시원치 않지. 가능하면 내 손으로 멱을 끊어버리고 싶었네. 어때, 이 정도면 되겠나? 하하, 뭐야 아직 부족해?

제기랄. 아직도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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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당신은 저를 사랑할 건가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잘 모르겠군요. 

하지만 부디 최선을 다해 사랑하시길. 나는 워낙 귀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