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 괜찮지 않더라도
쾅!!!!
처음에는 무언가가 산산히 부서지는 소리. 그 다음에는 유리가 깨지며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비명 소리가 연달아 들렸고, 곧 소란이 일어나며 사람들이 모였다.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시 한복판에서 들릴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오렌지가 데구르르 굴러간다. 플라스틱 통에 담긴 우유가 떨어졌다. 종이팩으로 된 걸 사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랬다면 분명 터졌겠지. 골목 바깥에서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모이는걸 보며 황급히 살기를 갈무리 했다. 뒤, 그 다음에는 양 옆과 머리 위. 떨어진 물건을 줍기보다 먼저 재빨리 주변을 훑는다. 핸드폰은 바지 뒤 호주머니. 나이프는 발목에. 아쉽게도 아일랜드의 건물들은 은폐물이 많지 않다. 도망보다는 차라리 한 낮일 때 버티는 게ㅡ
"ㅡ와, 깜짝이야."
"... ...유환."
유환이었다. 방금 막 마켓에서 산 빵과 고기들이 담긴 가방을 들고 골목 안으로 걸어들어온다. 청연은 무의식적으로 아주 잠깐 유환을 응시하다가, 곧바로 바깥 골목을 살폈다. 훤한 대낮이지만 빨간 점이나 빨간 십자가 모양의 스코프 랜즈의 레이저가 따라 붙을 까봐. 그게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창문이랑 석고상이 떨어졌나봐. 소리 한 번 요란하네."
"아ㅡ... 그래? 사람은 안 다쳤대?"
"응 다친 사람은 없고 그냥 지나가던 사람이 놀라서..."
곧 유환의 시선이 멈췄다. 떨어진 오랜지와 우유가 신경 쓰여서는 아닐텐데. 나는 그걸 알고 있는데.
"...좀 놀라서 주저 앉았대. 청연."
"다행이네 그러면. 누군진 모르겠는데 재난이었겠어..."
"청연."
오렌지는 더이상 굴러가지 않는다. 종이봉투가 찢어 진 것도 아니다. 자신이 떨어트렸을 뿐이다. 유환은 곧장 가방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다가왔다. ㅡ괜찮아. 혼자 둬서 미안해. 그 말을 듣자마자 반박하고 싶었다. 네가 미안 할 건 하나도 없어. 아무것도 없어. 멋대로 놀란 건 내 쪽이다. 따라붙었던 총성을, 쑤셔오는 복부를, 추격자와 피가 튀었던 어느 짙은 밤의 기억을 떨쳐 내지 못한 건 나다. 그 날 부터 너는 나한테 사과 할 거라곤 하나도 없었어. 오히려 내가 했어야 했지. 고맙다는 말을, 미안하다는 말을.
"괜찮아. 여기 헌터는 없어. 아무도 몰라,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거."
모를 수 밖에 없다. 혈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오직 유환과 청연만이 결정한 장소였다. 머릿 속으로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총성과 닮은 파열음 때문이었다. 발치에 떨어트린 종이 봉투도, 무의식적으로 복부를 움켜쥔 자신의 손도. 조용히 흘러내리는 식은 땀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태연한 척 해봤자 헛수고였다. 네가 알아챈 이상 얼버무릴수도 없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혼자 힘으로는ㅡ
"괜찮아 청연."
"...응."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목울대가 움직이고 크게 침을 한 번 삼킨다. 진정해야지. 괜찮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민망함에 네 시선을 피했지만 이번에는 네가 놓아주지 않았다. 곧바로 자신을 안아주는 팔 안에서 오히려 실감했다.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쿵쾅거리는 심장이 도무지 조용해지질 않을 것 처럼 시끄러웠다.
"괜찮아. 안심해."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기억은 당분간 끈질기게 쫓아 올 것이다. 앞으로도 커다란 파열음이 들릴 때 마다 주변을 살필테지. 그게 눈이 멀 것 같은 한낮이라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괜찮지 않더라도, 네가 곁에 있어 준다면.
"잠깐만 이렇게 있자. 그러면 진정 되겠어?"
"ㅡ...미안."
청연은 힘없이 끄덕인 채 유환에게 잠시 기댔다. 복부를 움켜쥔 손을 놓기엔 아직도 불안했다. 눈앞의 아찔함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눈을 질끈 감았다. 조금 더 시간이 걸려도 용서 해 줘. 괜찮지 않더라도 곁에 있어줘.
단단하게 자신을 가둔 팔 안에서, 청연은 한참 숨을 골랐다. 유환은 오랫동안 청연을 안은 채 서 있었고, 청연이 움찔거리며 떨어지려 할 때 마다 놓아주지 않았다.
떨림이 그치는 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